우리는 눈으로 수요일 비에 젖은 아름다운 빨간 장미를 본다. 입으로 달콤하고 부드러운 요거트를 맛본다. 손으로 부드러운 양털을 만진다. 우리는 빨간 장미를 보는 것은 눈이고, 요거트의 달콤한 맛을 느끼는 것은 입이고, 양털의 부드러움을 느끼는 손이라 생각한다. 이런 우리의 생각은 틀렸다. 눈은 그저 보는 것을 뇌로 전달하고, 입은 맛보는 것을 뇌로 전달하고, 손은 만지는 것을 뇌로 전달한다. 빨갛고 아름답고, 맛있고, 부드럽다는 것을 판단은 전적으로 뇌가 담당하는 역할이다. 뇌는 신체 모든 부위가 전달하는 정보를 분별하고 판단한다. 우리의 몸은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정보를 부지런히 뇌로 전달한다. 뇌가 그런 정보를 분석한 후 대처 명령을 내리면 충실하게 실행하는 것이 우리의 몸이다. 생각하고 맛보고 느끼고 보는 모든 것들은 뇌가 하는 행동이다.
인류가 원시생명체에서 출발하여 수십억 년을 거쳐 영장류로 진화하는 동안 뇌는 지금과 같은 형태로 자리 잡았다. 영장류에서 다시 우리의 직접 조상인 사피엔스가 지구에 출현하기까지 수백만 년이 흐르는 동안 뇌는 오늘날과 같은 크기와 부피를 지닌 하드웨어를 갖췄다. 아득한 옛날 원시생명체가 진화를 거듭한 끝에 사피엔스로 출현하는 기간은 우리의 뇌가 성장하고 자리잡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뇌는 외부 환경을 분석하고 거기에 적응하도록 신체 각 부위에 명령을 내렸을 것이다. 긴 시간 신체가 명령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획득한 정보들은 뇌로 전달되었고, 뇌는 이 가운데 중요한 것들을 모아 여러 곳에 저장하였다. 이 과정에서 우리 유전자는 수많은 변화와 변이를 겪었고, 그 생생한 진화의 경험과 흔적들이 우리 몸 구석구석에 기록되었다.
나무에서 내려온 영장류가 인간이 되기까지 걸린 약 5백~6백만 년의 긴 시간 동안 그들의 두뇌는 엄청나게 발전했다. 여러 종의 영장류 가운데서 분화한 다양한 종들 가운데서 두뇌가 더 나은 종이 다음 종으로 우월한 유전자를 전달하였다. 그것을 물려받은 여러 종의 자손들 가운데서 또 한 종의 두뇌가 발달하고 유전적 변이를 일으키면서 점점 두뇌가 성장하고 발전하였다.
사피엔스가 지구상에 출현한 약 20만 년 전쯤에는 두뇌의 외형은 어느 정도 모양이 갖춰졌다. 그 후로도 시간이 흘러 약 7만 년 전이되면 인지혁명이 시작되고, 4만 전쯤 인지혁명이 완성된다. 추론과 생각, 가치, 추상적 개념 등을 말하는 인지적 언어의 사용이야 말로 사피엔스가 유인원의 신분에서 완전히 탈피하고 인간의 길로 들어서게 만들었다. 인간의 두뇌는 부피와 크기 같은 하드웨어의 성정이 완결되었고 다시 지능과 인지능력 같은 소프트웨어의 성장이 완료된 것이다.
진화의 긴 과정은 인간의 두뇌와 인지능력을 갖춘 사피엔스가 출현하기 까지의 역사라고 볼 수 있다. 스티브 올슨(『우리 조상은 아프리카인다』)의 주장에 따르면, 현생 인류가 등장하고 인류의 대규모 진화는 사실상 멈췄다. 이후 인류는 잘 섞인 하나의 집단으로 팽창해 왔다. 우리의 신체적인 특징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고, 우리 몸의 기본적인 형태는 10만 년 넘게 변하지 않았다.. 현생 인류가 출현 이후 인류는 자연에 적응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변형하고 자연이 인간에 적응하도록 만들었다. 그 결과로 인지혁명 이후 지금까지 우리의 몸이 자연에 진화할 필요가 없는 진화의 정체기에 있는 셈이다.
우리의 뇌는 몸 밖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한 정보를 듣고 분석하고 판단하고 정리하고 대처한다. 손과 발, 눈과 입, 코 등 우리 신체에서 오감을 느낄 수 있는 모든 기관들은 실시간으로 정보를 수집해서 부지런히 또 빠른 속도로 뇌에게 전달한다. 우리가 판단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들은 뇌의 명령에 따른 것이다. 우리 몸은 뇌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중앙처리장치(CPU, Central Processing Unit)가 빠진 먹통 컴퓨터와 같다. 키보드나 마우스 같은 장치를 통해 입력한 정보를 중앙처리장치가 분석해서 프린터로 출력하면 결과를 알 수 있다. 우리의 두뇌는 컴퓨터의 중앙처리장치와 같은 역할을 하며 모든 것을 결정하는 신체의 중심 명령기관이다. 중앙처리의 발전이 컴퓨터의 역사를 새로 써왔듯이 우리 두뇌의 발전도 인류의 역사를 이끌었다.
이처럼 인간의 두뇌는 진화의 역사가 새겨진 살아 있는 화석이다. 두뇌의 발달 과정을 보면 인류가 발달해온 궤적을 살필 수 있다. 최초의 생명체인 원시생물은 유전적 돌연변이를 일으키면서 수많은 종류의 생명체로 분화하였다. 하등동물에서 가장 고등생물인 인간으로 진화하는 과정에서 두뇌도 많은 변화를 거치면서 인류 진화의 역사를 보여준다. 두뇌가 발전하는 과정을 파악하면 현대인들의 경제적 행동, 남녀의 차이, 투자 성향 등 많은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다. 두뇌도 한정된 에너지자원을 활용하여 판단력과 인지능력을 최상으로 유지하려는 최소비용과 최대효과라는 에너지의 경제성 법칙을 따른다. 이런 점에서 보면 인간의 진화도 척박한 자연에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의 에너지를 얻고자 하는 경제적 동인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이 여전히 동물이며 인간의 신체적, 정서적, 인지적 능력이 DNA에 의해 결정되지만, 사회를 이루고 발전하는 것은 인간과 인간의 사회적 관계를 통해서이다. 인간은 혼자서 독립적인 생물적 존재로서 생존하는 것이 아니라 허구를 믿고 신화를 믿고 국가를 만들면서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가 된 것이다. 이것이 가능 하려면 소통이 가능한 두뇌의 비약적 발전과 언어의 발달이 결정적이다. 이처럼 인간 두뇌의 비약적 발전과 소통하는 언어인 인지적 언어(cognitive language)의 발전을 인지혁명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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