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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by 전갈 2022. 7. 7.

2022년 7월 7일(목)

나는 정말 좋은 상사가 될 것이다.

우리는 독재적이고 강압적인 상사를 만나면 그를 비난한다. 아랫사람의 의견을 무시하고 윽박지르는 상사 밑에서 일하는 사람은 스트레스를 받기 마련이다. 왜 저렇게 사람을 무시하면서 일을 시킬까? 얼마든지 민주적인 방식으로 지시할 수도 있지 않을까? 직원들은 소통하면서 일하면 사기가 올라가서 업무 성과도 높아질 것으로 생각한다.

때론 무능한 상사를 만나도 우리는 그를 욕한다. 조직은 느슨하고 관리가 엉망이다. 부서 직원들의 사기는 땅에 떨어지고, 하루가 멀다 않고 직원은 떠난다. 새로 온 직원은 며칠 버티지 못하니 업무는 쌓여만 간다. 이렇게 만든 무능한 상사를 맹비난하며 내가 저 자리에 있으면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퇴근 후 직원들이 모여 술이라도 한 잔 할라치면 이런 상사를 비난한다. 마른 오징어 씹듯 잘근잘근 씹는다. 내일이라도 당장 회사를 때려치울 것처럼 말한다. 하루에도 열두 번이나 사표 내려는 것을 참고 있다는 말도 덧붙인다. 그렇게 상사를 욕하면서 스스로 위로한다. 그리고는 나는 상사가 되면 절대 그렇게 하지 않으리라 다짐한다. 부하들을 위하고 아껴주는 상사가 되리라 말한다.

과연 그렇게 될까? ‘욕하면서 배운다.’는 말이 있다. 옛날 무서운 시어머니 밑에서 혹독하게 시집살이를 한 며느리는 늘 그렇게 다짐한다. 내가 시어머니가 되면 절대 며느리를 고생시키지 않을 거라 맹세한다. 그러나 정작 본인이 시어머니가 되고 며느리를 맞으면 더 엄한 시어머니가 된다. 절대 그런 상사가 되지 않으리라 다짐한 부하가 정작 상사가 되면 더 엄한 상사가 되는 이치다.

내가 어떻게 해서 이 자리까지 왔는데 그 시절과 비교하면 지금 고생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논리에 빠진다. 흔히 말하는 ‘라떼’ 논리가 나오면서 자연스레 ‘꼰대’가 된다. 개구리 올챙이 시절 모른다는 말이 맞아떨어진다. 그 옛날 자기가 모시던 상사가 보여준 일방적인 태도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욕하면서 배웠기에 행동은 진화하기 마련이다.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니체가 저서 『선악을 넘어서』에서 한 말이 가슴에 와닿는다. 그는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중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네가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본다면, 그 심연 또한 너를 들여다볼 것이기 때문이다."

이 얼마나 뛰어난 통찰인가? 괴물과 싸우는 사람이 괴물을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괴물이 되는 이 역설적인 상황을 이보다 더 명쾌하게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현재 받는 고통을 상사의 탓으로만 생각한다. 물론 맞다. 상사의 잘못된 지도력과 독재적 성향이 직장을 지옥으로 만드는 데 일조한다. 그렇지만 그것만을 문제의 근원으로 생각한다면 결국 우리도 그 상사와 닮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애덤 모턴은 저서 『잔혹함에 대하여: 악에 대한 성찰』에서 끔찍하고 잔혹한 일이 일어났을 때, 그 배후에 악한 사람이 있다는 생각은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게 만든다고 지적한다. 이런 일이 왜 일어나는지를 먼저 이해하지 않고, 단지 악한 사람이 누구냐 만 따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주장한다. 물론 악인은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그 잔혹한 행동이 왜 일어났는지 동기를 설명하고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악에 대한 맹목적인 분노와 증오, 비난 역시 위험하다고 말한다. 맹목적인 비난의 배후에는 나는 그렇게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깔렸다. 그것보다 먼저 그 사람이 왜 그런 악을 저질렀는지, 동기를 이해해야 악행의 본질을 알 수 있다. 우리가 그런 동기와 배후를 알고, 더는 그것을 외면하지 않는 것이 악의 근원을 없애는 데 도움이 된다. 악행이 만들어질 수 있는 상황을 모른 척 외면하는 것은 결국 그런 악행이 발생하는 데 우리도 묵시적으로 동참한 것과 다를 바가 없지 않을까? 악행과 악인이 나타나지 않도록 하려면 악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 애덤 모턴의 생각일 것이다.

성찰하지 않으면 더 나쁜 상사가 된다.

직장 상사가 보여주는 억압적인 행동을 악행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그로 인해 과도하게 스트레스를 받고 정신적인 이상을 보이는 부하에게는 악당일 것이다. 우리가 받는 억압의 근원이 상사 한 사람의 문제라면 그 사람만 없으면 해결될 수 있다. 그러나 문제의 본질이 이윤 향상을 최고의 선으로 여기는 직장 자체에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 속에서 어떻게 현명하게 대처해야 할지를 모른다면 누구라도 상사가 되면 옛날 자신을 괴롭힌 상사가 될 수밖에 없다. 욕하면서 배운 것보다 더 심하게 할지도 모른다.

니체가 말한 괴물이 되지 않으려면 본질을 꿰뚫어 보아야 할 것이다.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과 스탠리 밀그램의 ‘권위에 의한 복종 실험’에서도 말했듯이, 조직이나 문화가 지시하면 사람은 그렇게 따르게 된다. 애덤 모턴의 ‘악에 대한 성찰’도 같은 이야기다. 우리가 맞닥뜨리는 문제의 본질을 이해하지 않고서 단지 한 사람만 비난하고 그에게 책임을 씌운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자신이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왜 그런 문제가 생기는지 배후와 동기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사람만이 그리되지 않을 것이다. 늘 자신을 돌아보면 공부하고 성찰해야 한다. 나는 그렇지 않은가? 끊임없이 자신을 살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