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4월 5일(화)
있어도 없고 없어도 있다. 존재와 부재의 동시공존. 반야심경의 공즉시색(空卽是色)도, 슈뢰딩거의 양자실험도 그렇다. 고양이는 살아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죽은 상태도 아니다. 살아 있으면서도 죽은 것이다. 세상의 이치도 그런 게 아닐까? 절대 진리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것. 세상은 절대 진리의 상태이면서도 아닌 상태. 그런 게 아닐까.
양자의 세계는 늘 존재와 부재가 동시에 존재한다. 존재와 부재 가운데 하나만 남으면 만물은 사라진다. 실체는 없어지고 껍데기만 남는다. 핵 내부에서 불연속적으로 움직이는 전자가 한 곳에 고정하면 어떻게 될까? 핵 내부의 넓은 공간은 텅 빈 상태가 된다. 물론 핵의 내부가 넓다는 의미는 전자의 크기와 비교해 말하는 것이고 현미경으로도 관찰되지 않는 미시의 세계다. 그 공간에서 아주 작은 전자가 멈춰있다면 그건 물리적으로 어떤 의미일까?
전자기력과 약력 그리고 강력은 원자와 원자핵 내부에서 작용하기 때문에 거시세계에서 작동하는 중력과 비교하면 비교 불가능할 정도로 짧은 거리에 미치는 미시세계를 지배하는 힘이다. 이들 힘이 없다면 저 깜깜하고 눈으로 볼 수 없고, 어떤 첨단 기기로도 볼 수 없는 암흑의 미시세계를 지탱할 수 없다. 모든 것이 한순간 무너지고 허공 속으로 사라진다. 이들 힘이 없다면, 너도 없고 나도 없고 지구도 없고 우주도 없어진다.
중력은 상상 이상의 질량을 가진 물체 사이에 서로 끌어당기는 힘, 즉 거시 세계를 지배하는 힘이다. 중력이 있기에 우리는 땅에 발을 딛고 살아갈 수 있다. 만일 지구의 중력이 없다면 우리는 땅 위에서도 마치 우주정거장의 우주인들이 공중을 둥둥 떠다니는 것과 같이 행동할 것이다. 만일 중력이 없다면 별들은 저 먼 우주의 끝을 향해 끝없이 달려간다. 자고 나면 자라는 우주의 끝, 그 무한의 경계로 별들은 달아날 것이다. 태양도 지금의 위치에서 더 바깥으로 움직일 것이고 싸늘하게 식은 태양 빛은 지구를 꽁꽁 얼어붙게 만든다. 그렇게 지구는 종말을 맞고 인간도 어떤 생명체도 살 수 없는 죽음의 별로 바뀔 것이다.
이 얼마나 신기한 일인가. 우리가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는 미시의 세계와 저 광대한 우주에서 이런 힘들이 작용하고 있다니? 그 힘들이 태양이 더 멀어지지 않게 만들고, 99.999%의 허공을 단단히 붙들어 맨다. 우리가 지금처럼 안전하게 게 모습을 유지하는 것은 그들 사이를 밀고 당기는 힘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누가 그렇게 만든 것이 아니라 자연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존재와 부재의 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모한 생각(돈도 중력을 가질까? 1 - 당기는 힘) (0) | 2022.04.27 |
---|---|
알고보면 우리는 별의 자손이다. (0) | 2022.04.07 |
사랑보다 먼 그러나 우정보다는 가까운 핵과 전자 (0) | 2022.04.05 |
물질, 침묵과 어둠의 세계 (0) | 2022.04.05 |
진실은 있는가? (0) | 2022.04.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