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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대학은 교육 자판기인가?

by 전갈 2022. 7. 29.

2022년 7월 29일(금)

 

교육 자판기가 된 대학

자판기의 역사는 생각보다 꽤 오래됐다. 약 2,000년 전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사원의 주화를 넣으면 성수(聖水)가 나오는 장치가 세계 최초의 자판기라 한다. 그러나 최초 상업용 자판기는 18세기 영국에서 담배를 판매하는 자판기다. 그 후 껌 자판기, 사탕 자판기 등을 거쳐 1930년대에는 청량음료를 파는 자판기가 등장했다. 1935년 코카콜라 자판기가 등장하여 자판기의 대중화를 이끌었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자판기의 전성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지금은 한풀 꺾였지만, 한때 자판기의 성장 속도는 무척 빨랐다. 동전이나 지폐만 있으면 언제든지 필요한 물건을 살 수 있다. 그 편리함과 신속성으로 지금도 사람들이 많이 이용한다. 특히 사무실 복도 입구에 서 있는 커피 자판기의 주인은 돈을 거둬가느라 정신없던 시절도 있었다. 최근 사람들의 소비 추세가 고급화하면서 자판기 커피를 이용하는 사람이 줄어들면서 인기가 시들해졌다.

 

정부가 대학에 지원하는 목적성 국고 지원금은 사용처를 미리 지정한 문제뿐만 아니라 지원의 성과물을 바로 내라는 부담을 지운다. 1년 단위의 계획서를 받고 매년 성과 지표를 달성하도록 종용한다. 최초 사업계획서를 제출할 때 3년 혹은 5년까지의 목표를 연 단위로 작성하도록 지침이 정해졌다. 대학은 매년 제시한 성과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조급하게 사업을 추진하고 양적 지표를 채우기에 급급하다. 그러다 보니 대학으로서도 매년 성과 지표를 달성하기 좋도록 프로그램의 종류와 수를 많게는 100개 가까이 늘린다.

 

고등교육은 국가의 미래 인재를 양성하는 최종 단계의 교육이다. 지적이고 창의적인 인재를 육성하고자 하는 것이 고등교육의 최종 목표다. 그런 고등교육을 시행하는 대학으로 하여금 1년 단위의 프로그램을 제시하고 성과를 보이라는 것은 우물가에서 숭늉을 찾는 일과 같다. 아니 국고 지원금을 투입하고 바로 원하는 상품을 달라는 자판기와 뭐가 다른가.

 

6개월 안에 성과를 내는 자판기 코인

또 한 가지 심각한 문제는 국고 지원금을 실제 사용할 수 있는 기간이 겨우 6개월 남짓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매년 교육부는 기획재정부와 협의하여 다음 해 국고 사업 예산을 확보한다. 교육부는 실제 사업을 실행해야 하는 다음 해 2월이나 3월 중 기획재정부로부터 최종 예산을 확보한다. 그렇게 자금을 확보한 후 교육부는 각 대학에 국고지원을 받기 위한 사업계획서를 제출할 것을 공고한다. 이때가 빠르면 4월 초 늦으면 4월 말이다.

 

이때부터 전국 대학은 부산하다. 신입생을 맞이한 지 채 한 달 지나지 않아 국고지원을 위한 사업계획서 작성에 정신을 뺏긴다. 13년째 동결된 등록금으로 대학 재정이 거덜 날 상황에서 국고지원금을 못 받으면 난리가 난다. 특히 학생 모집이 어려운 대학으로서는 그야말로 국고지원금에 목을 맬 수밖에 없다. 규모가 작은 대학은 대부분 교수가 계획서 작성에 참여해야 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진다.

 

어렵사리 시간에 맞춰 계획서를 제출하면 5월에 평가를 받아야 한다. 한정된 예산을 나눠야 하니 지원에서 탈락하는 대학이 나온다.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대학은 평가 준비에 몰입합니다. 대개 5월 말이면 평가 결과가 나오고 대학마다 희비가 엇갈린다. 국고지원에서 탈락한 대학은 초상집을 방불케 한다. 당첨된 대학은 6월경에 지원금을 청구하기 위한 실행사업계획서를 작성하느라 분주하다.

 

이렇게 숨 가쁘게 한 학기를 마칠 때쯤 7월이면 겨우 국고 지원금이 내려온다. 이제 방학은 시작되고 학생들은 오지 않는다. 전체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은 2학기 시작하면서 시작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12월 말이면 회계 결산을 위해 사업을 마무리해야 한다. 특별한 사정이 있으면 다음 해 1월까지 집행하지만 대개 연말을 목표로 사업을 정리한다. 그렇게 하지 않고 다음 해까지 예산 집행을 계획했다가 지원금을 다 소진하지 못하면 결과 평가에서 벌점을 맞게 된다.

 

이쯤 되면 선정된 대학도 기진맥진한다. 교육의 본질은 어디 가고 국고지원금을 타기 위해, 쓰기 위해, 보고하기 위해 대학 행정이 존재한다는 착각마저 든다. 왜 이런 일을 주기적으로 반복해야 하는지 심한 회의감에 빠진다. 그렇다고 평가받은 그 해에 한해서만 계획서를 작성하는 것이 아니라 매년 계획서를 작성해야 한다. 말이 좋아 국민 세금으로 마련한 예산을 허투루 낭비하지 않게 함이라 하지만, 정작 형식과 목적이 완전히 뒤바뀐 상황이 된다.

 

상황이 이 정도면, 대학은 국고지원금이 투입하면 결과를 토해내는 자판기가 아닌가? 겨우 3~4개월 남짓 안에 각종 프로그램의 성과를 보여야 한다. 그것도 대학마다 100개에 가까운 크고 작은 프로그램을 운영하여 그 성과를 보이려면 바쁘기 한정 없다. 과연 이렇게 하고도 우리 대학의 체질이 강화될 거라 기대할 수 있는가?

물론 대학 스스로 재원을 마련해서 하라는 볼 멘 소리를 할 수 있다. 발목을 묶은 전족처럼 등록금을 동결시킨 상황에서 대학으로 하여금 재정적 자구책을 마련하라는 것은 탁상공론에 불과하다. 기업과 대학에 여러 가지 규제를 둔 상황에서 대학 재정을 다양화하라는 주문은 전족한 여인에게 제대로 뛰지 못한다고 채근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제 교육의 ‘양질전화(量質轉化)’이 필요한 시간이다.

독일의 철학자 헤겔은 같은 일을 반복하고 양이 많아지면 그것들이 누적되어 어느 순간에 질적인 변화를 가져온다고 말했다. 이것은 ‘양질전화(量質轉化)’의 개념인데 ‘양질전환(量質轉換)’이라 부르기도 한다. 어떤 일을 지속하고 꾸준히 반복해서 노력하면 질적으로 변화하는 임계점에 도달한다. 이 말은 임계점을 넘어서는 순간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 조직이나 단체는 더 나은 질적 단계로 도약하는 것을 말한다.

 

서울대 공대 교수 26인이 쓴 『축적의 시간』에서도 비슷한 개념을 제시한다. 이 책에서는 우리 산업이 처한 핵심적인 경쟁력의 위기는 고부가가치 핵심기술, 창의적 개념설계 역량의 부재라고 진단한다. 이런 역량들은 마음먹는다고 금방 확보되거나 돈이 있다고 쉽게 구매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랜 시행착오를 거치며 시간을 들여 경험과 지식을 축적하고, 숙성시킬 수 있을 때 비로소 확보되는 역량이다. 더 끈기 있게, 더 꾸준히, 더 오랜 시간 공들여 노력하는 축적의 시간이 있어야 창의성이나 역량이 도약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물은 낮은 온도에서부터 열로 가열하지만 99도에서도 끓지 않는다. 아직은 양이 조금 부족해서 끓지 않는다. 더 가열해서 임계점인 100도가 되는 순간 끓기 시작한다. 많은 양의 열로 가열한 물은 액체에서 수증기인 기체로 질적인 전환을 달성했다. 100도가 될 때까지 열을 계속 가해 물이 펄펄 끓도록 충분히 많은 양의 열을 가했기에 가능했다. 중간에 열 공급을 중단하면 물은 뜨거울 뿐 끓지 않는다. 여전히 물은 액체 상태에 머무르고 기체로 질적인 도약을 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대학의 학사 제도의 경직성은 세계에 내로라할 정도다. 대학이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영역이 그리 많지 않다. 대부분 교육부의 승인을 받거나 지시를 받아야 한다. 정부가 대학을 획일적이고 경직적으로 관리하는 것을 탈피해야 한다. 특히 사업성 예산을 정부에서 지정해서 관리하는 것은 예산 집행의 비효율성을 극대화하는 우를 범한다.

 

우리나라 대학의 국제 경쟁력이 국가 경쟁력보다 항상 뒷처진다는 비판이 많다. 대학이 발전하려면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는 자율이 전제되어야 한다. 더 이상 정부에서 대학을 불신하는 관료적인 규제의 관행을 거둘 때가 한참이나 지났다. 입학자원이 극감한 현실에서 대학은 스스로 존립을 위해 학생의 선택권을 존중해야 하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낀다. 정부가 규제하는 것보다 학생과 학부모의 선택이 훨씬 강력한 감시 장치가 된 지 오래다.

 

우리 대학이 국제 경쟁력을 갖추고 해외 대학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해서는 대학의 자율성을 한시바삐 허용해야 한다. 아울러 당장에 국고지원금에 씌워진 각종 규제라도 철폐해야 한다. 이를 통해 대학이 최고의 교육성과를 올릴 수 있도록 예산 집행 자율권을 보장해야 한다. 더는 '눈 가리고 아웅’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벌써 수십 년째 반복되어온 실수를 이참에 바로잡는 것이 마땅하다. 그래야 우리 교육의 ‘양질전환’과 축적의 시간을 통한 창조적 도약이 가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