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3-22) 스케치
꽃샘추위라는 말이 맞겠다. 3월도 말인데 아침 기온이 영하로 떨어졌다. 가벼운 옷차림 사이로 찬바람이 살을 후빈다. 두꺼운 옷을 입지 않은 걸 살짝 후회한다. 집을 나서면 되돌아가 옷을 갈아입기 귀찮다. 내처 발걸음을 앞으로 옮긴다. 사람들은 한겨울 외투로 중무장하다시피 몸을 감았다. 뭐 그리 추운 날씨라고 저리 호들갑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침과 낮의 기온 차이가 심하다 했으니 낮에는 기온이 올라갈 것이다. 기온이 조금 떨어졌다고 한겨울이나 온 것처럼 요란스런 풍경이다.
아무리 그래도 봄은 봄이다. 대세는 바뀌었고 겨울은 갔다. 겨울의 마지막 잔당들이 봄의 진지에 남아 심통을 부린다. 봄바람이 불고 하늘은 맑은 얼굴을 내보일 것이다. 나뭇가지에 꽃눈이 돋아나고 곧 망울이 터질 것이다. 자연이 가장 신비로운 시간이 바로 이때다. 앙상하고 비쩍 마른 가지에서 저리도 소담스러운 생명이 생가지를 찢고 나올 줄 누가 알았겠는가. 연약한 초록 새싹이 산전수전 다 겪고 긴 시간 한겨울 찬바람까지 이겨낸 생나무 가지를 뚫고 나온다. 세상에서 가장 어린 것이 저리도 강인한 힘을 보이다니 새삼 자연의 신비함을 느낀다.
어제 연구실에서 자목련 꽃잎을 스케치했다. 손가락과 손목의 부드럽고 힘이 잘 빠졌다. 한결 선이 곱고 세게 힘을 주지 않고도 얼마든지 예쁘게 소묘할 수 있다. 오히려 힘이 빠질수록 곡선은 제대로 둥글고 직선은 곧은 모습이다. 세상 모든 이치가 다 그렇듯 억지로 힘쓰지 않고 부러움 속에 강인함을 드러내는 것이 좋다. 그림을 그릴 때도 힘을 뺄수록 부드럽고 운동을 할 때도 힘을 빼고 몸의 반동을 이용하는 것이 정확하고 강하다.
사람과 관계하는 일도 강함보다 부드러움이 더 친밀감을 느끼게 하고 단단하게 만든다. 외유내강이라는 말이 그래서 의미가 있다. 부드러움과 약함이 결코 같은 말이 아니다. 부드러움 속에서 강함을 숨길 수 있다. 장미 꽃잎은 얼마나 부드럽고 향기까지 그윽한가. 빨간 꽃잎을 손으로 문지르면 장미의 얕은 떨림이 느껴진다. 그 위로 더해지는 향기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장미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장미는 억세고 단단한 줄기와 단단한 가시를 가졌다. 웬만한 힘으로는 쉽게 꺾을 수 없는 단단하고 억센 줄기와 마치 철사로 만든 가시마냥 뾰쪽하고 날카로운 가시는 장미를 수호하는 갑옷이다. 장미의 날카로운 가시와 억센 줄기는 아름답고 연약하게만 보이는 장미를 더욱 빛나게 만든다.
그렇다. 우리는 장미를 닮아야 한다. 굳이 위를 해할 마음이 없는 사람에게는 친절하고 부드럽고 아름다운 얼굴로 그들을 대할 것이다. 그러나 착한 마음을 해치려는 사람에게는 단호하고 결연한 의지를 보임으로써 함부로 범접하지 못하게 하는 만들 것이다.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고 이기는 것이 지는 것이다. 역설의 아름다움이 많은 것이 인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