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절멸의 계절이 끝나지 가지 않고 매섭게 역습한다. 찬바람이 겨우 눈뜰 채비를 하는 어린 눈을 쑥 화들짝 놀라게 만든다. 봄의 전령들이 바삐 달려오다 잠시 몸을 움츠린다. 긴 시간 얼음 언 휘장을 휘날린 동장군이 마지막 힘을 발휘한다. 기지개를 켜던 개구리, 개나리의 어린 꽃순, 남쪽 지방에 일찍 만개한 벚꽃들도 찬바람에 몸을 떤다. 금새 봄 밖으로 뛰쳐나가려던 만물들이 다시 제집으로 쑥 들어간다.
아무리 그래도 봄은 얼음 밑에서 용트림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겨우내 숨죽이던 훈풍도 서서히 자신의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사라진 새들도 돌아와 노래하는 것이 봄의 축복이다. 자연은 세상에 화사한 꽃의 색깔을 뿌려 더없이 아름답게 채색할 것이다. 온 산 진달래 붉게 피고 산기슭의 복숭아꽃은 무릉도원을 펼칠 것이다. 봄날은 더없이 좋은 그램의 소재다. 수채화 맑은 물감이 유달리 잘 먹히는 풍경화가 된다. 신의 섬세한 붓질을 감히 사람이 따라갈 수 없다 해도 흉내라도 내고 싶다.
걸음마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초보자가 천재의 그림을 부러워하는 것은 언감생심이다. 한발 한발 떼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야 할 처지에 감히 대가의 그림을 보고 좌절하는 것은 너무 시건방진 행동이다. 당연히 좌절하고 솜씨 없음을 인정해야 하는 법이다. 그저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한 마음이다. 그래도 색감을 익히고 물감을 좋아하게 된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 마음을 비워야 사물을 제대로 보고 자신의 처지를 이해할 수 있다. 부러워만 하지 말고 내 실력에 맞는 그림을 그리면 된다. 나만의 방식을 찾고 그 수준에 합당한 색감을 발휘하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다. 맹목적으로 남을 따라 하지 말고 자신만의 길을 찾아가는 것이 행복으로 가는 첩경이다.
1만 시간의 법칙을 머리로 알면서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다면 앎이 다 무슨 소용이 있을까. 행하지 않는 지식은 그저 현학적인 태도를 자랑하는 것에 불과하다. 더욱이 스스로 할 수 있는데도 게을러서 하지 못한다면 그럴 바에야 차라리 지식이 없는 게 더 낫다. 그저 자신이 많이 알고 있다는 자랑에 불과하다면 뭘 그리 시간을 바쳐 그걸 알려고 노력할까. 하긴 머기에 가득 채우는 것만으로도 기쁘긴 하다면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안다고 해서 다 실천할 수 없음은 환경과 여건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건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 생활 속에서 행하는 일은 환경과 여건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다. 그런 일조차 하지 않는다면 훌륭한 지식을 많이 알고 있어도 소용이 없다.
재주가 모자란 사람이 살아가는 방법은 연습과 노력이다. 수천 번을 그리고 또 그린다면 최소한 남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솜씨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노력 없이 편하고 쉽게 잘 그린 그림을 바란다면 방금 심은 사과나무에 잘 익은 사과를 구하는 일이나 다름이 없다. 잘익은 사과가 열리려면 몇 년을 기다려야 하는데 그런 인내의 시간을 보내지 않고 단번에 그걸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좋은 그림도 마찬가지다. 향기로운 사과를 얻기 위해 자주 돌보고 거름도 주고 물도 주고 하는 인내와 노력이 필요하듯이 좋은 그림을 그리려면 노력 말고는 별다른 대책이 없다. 노력과 인내의 시간 없는 성공은 없다. 평범하지만 당연한 말이다.
재능 없이 제대로 할 수 있는 일이 그리 많지 않다. 그림 그리는 일에서 초보자에게는 재주가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한다. 무슨 일을 해도 재주가 많으면 남보다 쉽게 더 잘 할 수 있다. 그림 그리는 일은 색채, 원근감, 입체감, 스케치 등 여러 가지 작업에서 섬세한 손길과 날카로운 관찰력이 필요하다. 남들보다 이런 방면에 뛰어난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쉽게 뚝딱뚝딱 훌륭한 그림을 그려낸다. 아름다운 풍경을 척척 그리기도 하고, 사람의 얼굴을 쉽게 스케치하기도 한다. 흐르는 강물, 잎새에 스치는 바람, 봄날의 노란 후레지아 한 단발, 한여름의 거센 폭풍우, 가을 낙엽을 밟는 외투가 잘 어울리는 여인, 하얀 눈이 덮인 촌락의 저녁, 이 모든 것을 그릴 수 있는 재주가 부럽다.
문외한이나 초보자들 눈엔 쉽게 그리는 것처럼 비친다. 재주 많은 사람도 훌륭한 그림을 그리기 위해 얼마나 많이 노력했는지 말 안 해도 알만하다. 그들이 얼마나 많은 시간을 흰 도화에 붓질했는지 짐작하기 힘들다. 1만 시간을 족히 넘겨야 겨우 마음 가는 대로 붓질하는 경지에 도달했을 것이다. 수많은 번민과 좌절의 순간들을 넘겼을 테고, 몇 번이나 포기하려는 마음을 다잡고 오늘에 이렀을 것이다. 그런 그들의 노력을 외면하고 오직 재주만 바라보는 건 정작 핵심을 보지 않고 곁가지에만 눈길을 주는 꼴이다.
감탄을 절로 자아내는 재주를 타고났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세상에는 그런 재능을 가진 사람보다 그렇지 못한 사람이 더 많다. 설혹 넘치는 재주를 가진 사람들이라도 수많은 시간을 이젤 앞에서 서성였을 것이다. 재주를 타고난 이들에게도 노력을 이야기지 않고 성공을 말할 수 없다. 하물며 재주 없는 사람들에게 노력을 아무리 강조해도 절대적으로 부족할 것이다. 그리고, 고치고, 또 그리고 그런 시련을 시간을 보내지도 않고 좋은 그림 그림을 그리기를 바라는 것은 힘들게 일하지 않고 남의 것을 탐하는 도독놈 심보나 다를 바 없다.
내가 꿈꾸는 세상을 화폭에 담을 수 있다면 얼마나 멋질까. 오늘도 나는 그럼 바람을 갖고 화실에 갔다. 그렇지만 붓질조차 셈하지 못하고 색감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자신을 보며 비애에 잠긴다. 재주 없음이 당연하기에 남보다 수만 배 노력해야 함에도 그저 아름다운 그림만 바라는 나를 반성한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그림을 그릴 있을까 그것을 고민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