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4월 6일(수)
분자 요리의 예술가
스페인 카탈로니아 지방의 코스타브라바(Cost Brava)는 바르셀로나에서 북쪽으로 한 시간 남짓 가면 닿는 작은 해안 마을이다. 푸르고 깊은 지중해의 마을이라 스페인 부자들의 별장이 즐비하다. 남유럽의 태양 아래 하얗게 빛나는 달걀을 지붕을 인 살바도르 달 리가 살던 집도 여기에 있다. 스페인 사람들이 사랑하는 해변 마을이다.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이자 21세기 최고의 요리사로 평가받는 페란 아드리아(Ferran Adria)의 운영하던 미슐랭 별 세 개의 레스토랑인 <엘불리>가 있어 유명세를 더했다. 화가 중에서도 음식에 대해 유별난 애정를 가진 달리의 해변 마을에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이 있다니 묘한 우연이다. 이는 그만큼 카탈루냐 지방의 음식문화가 발달했다는 것을 뜻한다.
요리의 철학자이자 예술가로 불리는 아드리아의 요리를 맛보는 것은 미식가들의 로망이다. 엘불리는 하루 50명 만 예약을 받고 메뉴판도 주지 않는다. 왜냐하면, 모든 손님에게 같은 메뉴만 제공하기에 메뉴판이 소용 없기 때문이다. 1년에 6개월 영업하고 나머지 6개월은 요리 연구하느라 문을 닫는다. 영업하는 동안 매주 새로운 요리를 제공하였고, 요리를 예술의 반열에 올렸다. 그마저도 2001년부터 엘블리는 점심 영업을 하지 않고 저녁에만 문을 열었다. 덕분에 엘블리의 셰프들은 매일 창조적인 요리를 했고, 수백 개의 명작을 내놓았다. 화가가 자신의 예술적 본능에 따라 그림을 그리듯, 아드리아도 자신의 조리 철학에 따라 요리를 만들었다.
엘불리는 분자요리를 통해 겉모습과 전혀 다른 새로운 스타일의 요리를 선보였다. 사람들은 예상과 다른 맛과 질감을 통해 감동과 경이를 느꼈다. 아드리아는 단순히 입을 즐겁게 하는 요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음식의 근원적인 혁신과 변화를 탐구하였다. 주아리에 따르면(엘블리의 철학자 114쪽), 아드리아의 요리는 조화, 창조, 행복, 아름다움, 시, 혼돈, 마술, 유머, 도발, 문화 등을 매개하는 언어이다. 또 그는 아드리아 스타일의 확산은 곧 인류의 문화예술 속에서 근본적인 것이 내면화되는 동시에 지역 문화에 충실함으로써 보편성을 획득하는 과정을 보여준다고 극찬했다.
작곡가 브루보 만토바니는 엘불리의 요리를 소재로 전통적인 오세크트라와 전자 현악기를 혼합하여 마치 우주 공간에서 오케스트라 연주가 펼쳐지는 듯한 환상을 창조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그는 엘불리에서 맛본 서른다섯 가지의 요리를 기억하면서 그 순서에 맞춰 곡을 쓰기 시작했다. 만토바니의 『환상의 책』이라는 곡은 이렇게 해서 탄생했다고 밝혔다. 페란 아드리아의 요리에 대한 찬사로서는 더할 나위가 없다. 음악과 조리의 서로 다른 영역의 창조적 활동이 만나서 빚어낸 절묘한 아름다움이라 할 수 있다.
페란 아드라아는 새로운 작품이 창조되는 과정을 모두 기록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새로운 실험과 관련된 노트, 자료 파일, 문서와 요리 정보를 담은 카탈로그, 사진, 비디오, 관련 서적들을 모두 보존한다. 그는 창조적 작업의 전 과정을 기록함으로써 요리예술의 즉흥성과 일회성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림과 음악은 악보로 남아 있고 최근에는 디지털 음원으로 기록되어 반복해서 볼 수 있다. 아드리아는 기록을 남겨 먹고 나면 사라질 요리의 시간성의 한계를 극복하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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