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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의 미학

엘블리의 요리 예술가 2

by 전갈 2022. 4. 6.

2022년 4월 6일(수)

 

요리 연구를 위해 문을 닫다.

사진 출처 : 월간 디자인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11227568&memberNo=34550514

아드리아는 다시 찾아온 손님에게 같은 음식을 맛보게 할 수는 없다는 철학을 가졌다. 그는 새로운 음식 개발에 몰두하기 위해 해마다 레스토랑을 아예 6개월간 닫았다. 이런 그의 요리 철학이 점차 입소문을 타며 손님들의 입맛을 매료시켰다. 엘 불리는 아드리아가 주방장을 맡은 지 10년 만에 무려 1000:1의 경쟁률을 뚫어야만 식사할 수 있는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이 된 것이다. 영업 기간 중에는 최소 1년 전에 예약해야만 맛볼 수 있고, 1997년부터 계속 미슐랭 별 3개를 수여 받았다. 2006년부터 4년 연속 영국 레스토랑 매거진에서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으로 선정되는 등 엘블리의 명성이 하늘을 찌를 기세였다.

 

엘 불리에서 아드리아는 총 1,846가지의 요리를 만들었다. 요리마다 모두 미식가의 미각을 자극했다. 아티초크를 장미꽃처럼 활용한다든가, 올리브 모양을 한 얼린 올리브즙을 만들어 선보였다. 페란 아드리아는 최고의 식재료를 사용해서 요리를 만든다.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기 위해 엄청난 비용을 투자하기로도 소문이 났다. 요리의 창작을 위해 저녁에만 장사를 하고 하루 50명의 손님을 받고 6개월을 문을 다는 것은 엘블리 경영에서 큰 압박이 되었다.

 

엘블리의 음식가격은 다른 미술랭 별 세 개 레스토랑의 음식가격에 비해 오히려 싼 편이다. 말하자면 영업을 해서는 수익을 남기기 힘든 구조였다. 한창 손님이 많이 왔었던 2001년도를 기점으로 엘 불리는 점심 장사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한 달로 따지면 막대한 수익을 포기하였다. 또 엘불리는 수익의 20%를 음식 개발 비용에 투자함으로써 새로운 요리 메뉴 개발과 요리의 창조에 매진할 수 있었다. 엘불리는 2010년 약 40만 유로(6억원)의 수익이 올렸는데, 세계 최고 레스토랑의 수입으로는 초라한 액수이다.

 

이윤극대화라는 경제학적 관점에서 본다면 아드리아의 결정은 선뜻 이해하기 힘들다. 엘불리와 같은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은 강한 독점적 경제지위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독점적 수익을 추구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드리아가 얻은 무형의 수익을 고려한다면 잘못된 경제적 의사결정이라 볼 수 없다. 아드리아의 과감한 투자는 엘 불리를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으로 만들고 아드리아를 요리의 예술가로 만드는 데 기여했음에 분명하다. 그렇다고 해도 엘블리의 경영 압박은 피하기 힘든 구조적인 문제였다. 그래서 2011730일 저녁을 끝으로 아드리아는 새로운 요리연구를 위해 엘불리 레스토랑의 문을 닫았다.

 

1년에 6개월만 운영하던 페란 아드리아의 레스토랑 엘 불리는 재정적 압박을 견디지 못해 2011년 문을 닫았다. 하지만 페란 아드리아는 엘 불리 재단을 설립해 스페인 지로나에 미식 박물관 엘 불리 1846’을 열고 이곳에서 새로운 레시피를 개발할 예정이라 한다. ‘라불리피디아(LaBullipedia)’라는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누구나 서양 미식의 역사에 접근할 수 있게끔 하기도 했다. 레시피 개발 과정에서 아이디어를 시각화한 콘셉트 스케치와 드로잉을 모아 갤러리에서 전시하고, 디즈니와 LVMH 등 글로벌 브랜드와 다양한 협업을 한다. 개념적 확장에 이은 미식의 공간적 확장. 엘 불리의 공간에서 미식의 경계를 넓히던 페란 아드리아는 자신의 혁신적 미식 철학을 레스토랑 밖 세상 전체로 확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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