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힌 요리와 V 라인
과일과 열매는 고기와 같은 동물성 식재료에 비해 섭취할 수 있는 열량이 훨씬 떨어진다. 식물성 음식을 통해 인간에게 필요한 하루 열량을 얻으려면 그 양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이것은 과일이나 열매를 많이 먹어야 인간의 활동에 필요한 에너지를 충분히 공급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꺼번에 많은 양을 입에 넣고 씹기 때문에 입이 커야 하고, 턱의 관절도 튼튼해야 한다. 침팬지나 오랑우탄의 입이 크고 턱이 발달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많은 양의 음식을 씹어서 삼키다 보면 위의 크기도 만만치 않을 것이고, 대장이나 소장을 통과하는 시간도 길다. 대장과 소장의 길이가 그만큼 길어지고 소화와 관련된 장기가 발달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큰 장기를 담아야 하니 침팬지나 오랑우탄의 몸매가 허리를 중심으로 펑퍼짐하게 되었다.
우리는 식물성 식재료를 날것을 먹는다는 사실이 신체의 모습에 끼친 영향이 상당함을 알 수 있다. 이에 비해 인간은 불로 삶거나 익힌 요리를 먹었기 때문에 한꺼번에 많은 양을 삼킬 필요가 없다. 부드러운 음식을 조금씩 떼어서 맛을 음미하며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꺼번에 삼켜야 하는 음식의 양이 적어지면 자연히 입이 작아져 영장류에서 가장 아담한 입을 가지게 되었다. 음식이 한결 부드러워졌기 때문에 씹는 데 필요한 치아의 크기도 작아지고, 힘도 그만큼 덜 덜기 때문에 턱관절도 부드러워졌다. 불을 사용한 조리법은 음식의 소화력을 크게 개선함으로써 인체 내 소화기관의 크기도 작게 만들었다. 위나 간, 소장이나 대장 등의 크기와 길이가 짧아지고, 그 결과 이것을 담는 복부의 크기도 작아진다. 익히거나 삶은 요리는 인간의 몸매를 허리를 중심으로 잘록한 모양으로 만들었다. 화식이 현대 미인의 기준인 잘록한 허리와 부드러운 얼굴 곡선인 V-라인을 만들었다.
불을 이용한 요리법은 사람들이 먹을 수 있는 재료의 범위를 넓히는 데도 크게 도움을 주었다. 날고기를 먹거나 채소를 데치지 않고 먹을 때는 소화하기도 힘들고 각종 질병에 노출되기 때문에 자연 상태로 먹을 수 있는 식재료는 매우 제한적이다. 그러나 불로 익혀 요리하면 식재료의 질감이 부드러워지고 독성이 사라지는 등 먹을 수 있는 음식의 종류가 많아진다. 또 양념을 가미한 다양한 요리법이 발달하면서 화식은 자연에서 구할 수 있는 웬만한 식재료를 다 먹을 수 있게 된다. 음식의 맛을 더하고 소화력을 개선함으로써 화식은 인간의 식탁을 풍성하게 만든다.
지중해 요리와 밝은 성격
요리법의 발달은 인간의 진화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진다. 불을 이용한 요리법이 도입되면서 인간이 인간다워졌고 완전한 인간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수렵이든 채집이든 자연에서 구한 식재료를 가지고 요리하는 것은 인간만이 유일하다. 날것을 그대로 먹던 유인원에 불과한 인간이 음식을 익히거나 삶아서 먹는 요리법을 개발하면서 원초적 동물의 지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동물과 인간을 구별하는 여러 기준 가운데서도 요리만큼 뚜렷한 것은 없고, 동물적 본능과 인간적 욕망을 가르는 경계선에 불로 익힌 요리가 있음이 분명하다. 나아가서 어떤 요리를 먹느냐에 따라 사람의 성격에도 차이를 보인다. 부드럽고 고급스러운 요리를 먹으면 한결 너그럽고 낙천적인 성격을 가질 수 있는 반면에, 딱딱하고 척박한 요리를 먹으면 성격도 딱딱해진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변변치 않은 요리를 먹는 사람들은 고급 요리를 먹는 사람들보다 몸집이 작고 힘이 약하며 총기도 떨어졌다는 것도 사실이다.
소화하기 쉬운 음식이 생각과 사상, 문화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니체의 말을 들먹일 필요가 없을 정도로 부드러운 음식이 주는 이점이 많다. 지중해의 바람만큼이나 부드러운 음식은 먹기 쉽고 소화도 빠르다. 이태리 남부의 경쾌함과 발랄함도 음식이 부드럽기 때문이다. 소화가 잘되지 않는 감자나 소시지 요리를 먹는 독일 사람들의 위는 항상 묵직하다. 그들의 생각이 철학적이고 사상의 무게가 진중한 까닭도 여기에 있다는 것이 니체의 주장이다. 아처럼 어떤 음식을 먹느냐는 성격의 형성에도 중요하고 그 지방의 특성을 결정짓기도 한다. 각자가 처한 환경에 따라 다른 음식을 먹게 되면 그것이 문화의 차이를 발생시키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 단순히 배고픔을 해결하는 수단으로만 요리를 치부하기에는 그것이 갖는 문화적 함축미가 매우 깊고 넓다.
프로메테우스의 진실
지금부터 약 300만 년 전쯤 아프리카 남부에서 출연한 최초의 인간, 원숭이와 꼭 닮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지구에 발자국을 남겼다. 오랜 세월이 흘러 수십만 년 전에는 자바에 직립원인, 중국에 북경원인(北京猿人), 독일에 하이델베르크인이 나타난다. 이들보다 훨씬 진화한 네안데르탈인이 약 10만 년 전 유럽에 등장하였다. 한때 지구를 주름잡았던 이들은 불을 사용해서 요리하는 법을 몰랐기 때문에 더 이상 진화의 시계가 멈춰버렸다. 그 자리를 불을 이용한 새로운 요리법으로 무장한 호모 사피엔스가 차지하면서 드디어 지구의 주인이 제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들이 서로 다른 시기에 지구의 패권을 노렸지만 결국 호모 사피엔스로 결정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 가운데서 불을 이용한 요리법이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인류가 불을 발견한 것이 언어의 발견만큼이나 중요하다는 다윈의 말을 빌지 않더라도 불은 인류의 발전에 너무나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에게 불을 전해주자 인간은 불로 요리를 시작하였고 어둠을 밝히고 깊은 어둠에서 깨어날 수 있었다. 불로 무기를 만들고 농기를 만들고 집에 불을 사용했다. 불은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인간의 삶의 보고가 되었다. 불이 인류에게 가져다준 많은 업적 가운데서 불로 요리를 하는 일은 직접적으로 인간의 신체와 두뇌의 발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오늘날 인류가 지금과 같은 뛰어난 문명을 발전시킬 수 있었던 것은 익힌 요리의 질적 우수성과 풍부한 영양분 때문이라는 것도 사실이다.
불을 사용한 새로운 조리법의 발견은 인간의 인지능력을 크게 향상시켰다. 소화의 효율을 돕는 새로운 조리법의 발견은 특히 성장기 어린이의 두뇌 발전에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그 결과 역사의 어느 시점부터 인간의 인지능력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하였고, 지능의 발전은 도구와 언어를 발명하는 힘이 되었을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오늘날과 같이 인간이 날렵한 몸매와 아름다운 외모를 가지게 된 것도 불에 의한 요리법의 발견이라는 사실에도 주목해야 한다. 불을 이용한 요리법의 발견은 인간의 지성과 외모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역사적 사건이다.
프로메테우스의 불을 손에 넣게 되자 원초적 식욕에서 헤어나지못하던 유인원에서 고급스러운 욕망을 소비하는 인간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인간은 한시도 음식을 먹지 않고는 활동할 수 없다. 경제 활동과 예술 활동, 창작 활동 등 모든 활동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에너지가 제대로 공급되어야 한다. 인류의 문명이 진화하는 첫 동력은 먹을거리를 찾기 위한 활동에서 시작되었다. 수렵과 채집을 통해 얻은 동물과 식물을 요리하는 방법의 발전이 영양분 섭취를 가능하게 했다. 그 과정에서 불로 요리하는 방법을 찾은 인간은 문명의 발전에 위대한 업적을 남기는 첫발을 내디딜 수 있었다. 인류 문명 발전의 긴 여정에는 항상 요리가 동반될 수밖에 없는 것은 삼시 세끼를 먹어야 하는 인간의 습관 때문이기도 하다.
'요리의 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엘블리의 요리 예술가 2 (0) | 2022.04.06 |
---|---|
엘블리의 요리 예술가 1 (0) | 2022.04.06 |
익힌 요리와 인지 혁명 (0) | 2022.03.25 |
요리의 짧은 시간 여행 (2) | 2022.03.25 |
본능의 생산과 욕망의 소비 (0) | 2022.03.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