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급은 하나인데 수요는 무한대
레도나르도 다 빈치의 '살바도르 문디’의 몸값은 어떻게 결정될까? 그림이든 조각이든 모든 상품의 가격을 결정하는 데에는 수요와 공급의 원리가 작용한다. 사려고 하는 사람의 양과 팔려고 하는 사람의 양이 일치하는 지점에서 자연스레 가격이 결정된다. 우리는 이런 시장을 경쟁적 시장이라 부른다. 여기서는 수요자와 공급자가 다수 참여하기에 어느 한 사람이 가격을 좌지우지할 수 없다. ‘살바도르 문디’라는 상품이 다수 공급된다면 사려고 하는 사람과 팔려고 하는 사람의 숫자가 균형을 이루는 지점에서 가격이 결정된다는 말이다.
그러나 미술 시장의 현실은 어떤가? 미술품 시장은 경쟁적 시장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작품은 오직 하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반면에 사려는 사람은 줄을 섰다. 한마디로 공급은 하나고 수요는 다수라는 공급 독점적 시장이 된다. 이런 시장에서는 어차피 공급량과 수요량을 일치시키는 것은 애초부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서로 사려고 하는 수요자의 열망을 잠재우려면 다른 방식을 택해야 한다. 그래서 탄생한 방법이 경매방식이고 이것을 주선하는 경매회사가 등장한 것이다.
경쟁적 시장에서 대량으로 공급되는 물건의 가격은 그것을 구매하는 사람이 실제 지불할 의사가 있는 가격보다 낮게 결정된다. 비슷한 상품을 판매하는 사람이 많아 굳이 최고의 가격을 지불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지불할 생각이 있는 가격보다 낮은 가격에 물건을 구매함으로써 기대 이상의 만족감을 얻을 수 있다. 경쟁적 시장의 가격은 다수의 공급과 다수의 수요가 만나는 지점에서 결정되는 가격이라 경매시장의 최고 가격보다 낮다.
그러나 미술품 경매시장에서는 사려는 사람은 많은데 공급자 혹은 공급 상품은 하나뿐이다. 한마디로 공급독점 시장이라 공급자는 최고의 가격을 지불하는 사람에게 팔면 된다. 수요자가 많을수록 가격은 경쟁적으로 올라가게 마련이다. 그림값은 얼마나 수요자가 경쟁적으로 입찰에 응하느냐에 달렸다. 그것에 영향을 주는 것이 그림의 현재 가치에다 예상되는 미래 가치를 현재 시점으로 환산한 가치를 더한 값이다.
현재의 만족감과 미래 가격이 주는 만족감의 현재화
그렇다면 왜 수요자는 경쟁적으로 그림 입찰에 참여할까? 거기에는 많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작품의 우수성인 그림의 미학적 측면도 중요하고 비평가의 평론도 중요하다. 그리고 그림값이 앞으로 오를 것이라는 구매자의 전망도 한몫한다. 현대 자본주의에서 작품 자체의 우수성 못지않게 그림 가격 전망도 그림 가격을 결정하는 데 매우 중요한 요인이 된 것이다.
그렇다면 그 전망을 누가 분석하고 누가 예측하는가? 구매자 본인인가? 아닐 것이다. 구매자가 단독으로 전망하기에는 미술 시장의 작품 주제가 너무 다양하고 작품 수가 많다. 누군가의 조력이 반드시 있어야 제대로 전망할 수 있다.
상품의 가격은 수요자와 공급자의 욕구가 만나는 지점에서 결정된다. 흔히 그 재화의 소비를 통해 수요자가 느끼는 만족감이 크면 클수록 가격은 올라갈 것이다. 만족감의 크기는 현재 그 작품의 인기도가 반영된다. 그러나 이에 못지않게 미래의 전망도 중요하다. 흔히 투자라는 이름으로 미래의 만족도를 현재 가치화하는 작업도 뒤따른다. 현재의 수요와 장래 가격이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주는 예상 가격이 그림의 가격을 상승적으로 끌어올린다.
수요자의 재력이 어느 정도인가?
여기서 한 가지 더 중요하게 고려할 사항이 있다. 구매자가 동원할 수 있는 자금의 규모다. 경제 이론에서 말하는 예산 제약의 정도도 구매에서 매우 중요한 변수가 된다. 주어진 예산 제약 아래서 최고의 만족감을 얻고자 하는 행동을 합리적인 소비라 말한다. 하긴 모든 사람이 과연 이렇게 합리적으로 행동하느냐는 것은 단언하기 힘들다. 그러나 우리가 물건을 구매할 때 요모조모 따지고, 여러 군데의 가격을 비교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 까닭은 바로 자신의 한정된 예산을 고려해서 최상의 선택을 하려는 합리적 소비 행동에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거금을 주고 ‘살바도루 문디’를 구매한 것으로 알려진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의 경우는 어떨까? 그의 재산은 약 1,000조 원 혹은 그 이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정도 재력이면 그림 가격으로 5,000억 원을 지불하는 데 큰 제약이 따르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이 좋아하는 그림을 소유한다는 현재의 만족감과 그림 가격이 상승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주는 예상 만족감을 합하면 그 이상의 가치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한마디로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로 봐서는 크게 남는 장사인 셈이다. 1,000조 재산을 가진 사람에게 5,000억 원의 돈은 그리 크지 않다. 굳이 비유하자면 1,000억 원 재산가에게 5,000만 원짜리 자동차 구매는 큰 부담이 되지 않는 것과 같다. 이처럼 예산 제약의 범위가 없는 엄청난 재력가는 언제든지 경매시장에 참가해 최고 가격을 지불할 용의가 있다. 어쩌면 미래 가치와는 상관없이 그림을 소유했다는 현재 만족감만으로도 그 정도 가격을 지불할 것이다.
(추후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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