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좋은 어느 날 아침 도서관에서 갔다. 의자에 앉는다. 책들의 조용한 속삭임만 신선한 아침 공기에 젖어있다. 마음은 더없이 고요하고 청정하다. 마치 세상이 정지된 것 같은 깊은 침묵만 가득하다. 아무런 생각도 없고 의식조차 없는 말 그래도 텅빈 마음이다. 이런 상태를 ‘공(空)’이라 하자.
그때 갑자기 누가 큰소리를 친다. 도서관의 깊은 고요를 단번에 산산조각낸다. 아무것도 없는 평정한 마음의 상태인 ‘공’에서 큰 소리라는 ‘인(因)’인이 뿌려졌다. 큰 소리는 좋든 싫든 감정이라는 ‘연(緣)’을 맺는다. 어떤 형태가 되었든 감정이 생겨났다. 문제는 감정의 내용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대개 사람들은 언짢은 감정, 즉 짜증을 낸다. 누군가 내지른 큰 소리는 짜증이라는 색(色)을 만들었다.
이렇게 생겨난 짜증과 화라는 색의 본질은 무엇인가? 실체가 없다. 물론 추상적 개념이라 실체가 없다는 말이 아니다. 그 자체가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처음부터 짜증이라는 색이 없는 원래의 색즉시공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옆 사람이 큰 소리를 내도 뭐 그럴 만한 사정이 있겠거니 하면 짜증이 생기지 않는다. 마음은 변함없이 조용히 공(空)의 상태를 유지한다.
이처럼 짜증이라는 색은 원래부터 존재하거나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반응해서 만들어 낸 것이다. 화를 내거나 기분 나쁜 감정을 계속 갖는다면 나는 색에 붙들린 것이다. 공의 상태를 유지하지 못하고 색에 집착함으로써 자신을 괴롭힌다. 짜증과 화 그리고 욕망이라는 허상에 사로잡혀 스스로 옥죄며 사는 것이다. 이것을 버리면 평정한 마음의 상태로 돌아간다. 따라서 색즉시공을 깨닫고 실천하면 세상에 대한 편견과 욕망을 내려놓을 수 있을 것이다.
처음부터 짜증(색)이 생겨나지 않았거나 생겼다 해도 이내 짜증이 사라지는 원래의 상태인 공으로 돌아가는 색즉시공이다. 이렇게 말해도 일반인이 색즉시공의 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다. 머리로는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 생활에서 이렇게 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누가 내게 해를 끼치거나 염장지르면 참기 힘들다. 옆에서 화를 돋구거나 간쪽거리는 것을 당해낼 재간이 없다. 나도 버럭 화를 내고 쉬 가라앉히기 힘들다. 이처럼 보통 사람은 색을 공으로 되돌리는 일이 쉽지 않다. 깨달음을 얻은 사람만이 ‘공(空)’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색즉시공을 이해한다는 것과 실천한다는 것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이해하는 것조차 지혜로운 사람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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