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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와 부재의 미학

독서, 요리, 노래 뭐 하나 제대로 삼매경에 빠지면...

by 전갈 2022. 8. 17.

2022년 8월 17일(수)

 

삼매경(三昧境)에 빠지다. 

가끔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 “독서삼매경에 빠져 즐겁다”, “요리 삼매경에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노래 삼매경에 빠져 세상 좋다”. 이렇게 뭔가 빠져도 단단히 빠져 즐거움을 느끼는 상태를 삼매경(三昧境)에 빠졌다고 표현한다. 책 읽기나 요리하기 아니면 노래 부르기와 같이 뭔가 한가지에 폭 빠져 아무 생각 없이 그것에 몰입하는 것이 곧 삼매경에 빠진 모습이다. 가끔 이런 상태를 ‘무아지경’(無我之境)이라 하기도 한다. 둘 다 거의 비슷한 정신의 높은 경지를 뜻하는 말이다. 

삼매(三昧)는 정신을 집중하여 어떤 한 가지 일에 몰입하여 아무 생각 없을 때 쓰는 말이다. 원래 이 말은 불교 수행의 이상적인 경지를 말한다. 삼과 매를 합친 삼매라는 단어는 산스크리스터어의 사마디 혹은 삼마디를 한자로 번역했다. 한자로 봐서는 특별한 뜻이 없어 삼매라는 말이 가진 고유한 뜻을 살펴야 한다. 

 

삼매에 빠져 정신을 한곳에 집중해 몰입하면 어느 순간 번뇌가 사라진다. 혼란, 의심, 분노, 흥분과 회한, 심지어 감각적 쾌락을 갈구하는 욕망조차 사라지고 무아지경에 이른다. 이때 마음은 흐트러짐이 없이 평온하고 나의 존재조차 잊어버린다. 무엇이 나인지, 무엇인지 사물인지 분별조차 없는 청정한 마음의 상태가 곧 삼매이자 무아의 경지다. 

 

사실 ‘삼매경’ 혹은 ‘무아지경’은 오직 한 가지 일에만 마음을 집중할 때 도달하는 정신 수양의 매우 높은 경지다. 나와 대상의 구분이 없어지고 어느 순간 나 자신도 생각에서 없어지는 그런 마음을 말한다. 이 말을 중국 청(淸)나라 말기의 대학자 왕국유(王國維)가 말한 유아지경(有我之境)과 대비해서 살피는 것도 좋다. 그는 “유아지경(有我之境)은 내 입장에서 사물을 본다. 그래서 사물이 모두 내 색채로 물든다.”고 말했다. 

 

삼매경에 빠진 고승의 머릿속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고승이 삼매경에 빠지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마음은 지극히 평온하고 자아가 사라진다. 몸의 고통도 사라지고 편안한 상태만 온전히 남는다. 동시에 의식의 연상작용이 폭발적으로 일어나고, 황홀감이 온몸을 감싼다. 이때 전전두엽은 깨어 있어 의식만은 새벽 별처럼 또렷하다. 이러한 절대적 일체 상태에 도달한 순간 평생토록 못 잊을 정도의 강렬한 황홀감을 느낀다.

 

박문호 교수의 『그림으로 읽는 뇌과학의 모든 것』에서 삼매와 몰아의 순간을 이렇게 설명한다. 그는 의지적 몰입상태를 지속하면 우리 뇌에서 과도한 억제가 순간적으로 과도한 흥분으로 바뀐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뇌의 송과체에서 멜라토닌 호르몬이 다량으로 분비된다. 멜라토닌은 잠에 빠지게 하지만, 멜라닌 호르몬이 극한적으로 생성되면 뇌는 완전한 평정심을 얻는다.

 

이러한 절대적 일체 상태가 더 극단적으로 치달으면 멜라토닌에서 일종의 환각 물질이 합성된다. 이 물질은 유체이탈이나 죽음 같은 환상 체험을 가능하게 한다. 시간과 공간을 왜곡하고 통증을 완화한다. 몰입하여 삼매경에 빠진 고승은 청정한 마음을 얻고 모든 번뇌에서 벗어난다. 적어도 그 순간만은 무아지경의 즐거움을 맛본다. 

 

명상 수행자의 몰입이 더 집중되면서, 신경회로에 자극 전달이 가속되면 입력되는 감각 신호가 더 줄어든다. 그러다가 극단에 이르면 이르는 순간 감각 입력이 완전히 차단된다. 이때 신체 감각의 상실과 더불어 신체가 존재하는 공간 지각도 함께 사라진다. 이러한 상태를 ’모든 경계가 사라져 천지가 나와 한몸이 되었다‘라고 박문호는 표현한다.

 

정신을 고도로 집중해 나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경지에 이르면 즐거움과 기쁨이 한정 없다고 말한다. 삼매경에서 얻는 행복감은 남녀의 섹스 쾌감에 비할 바가 아니라고 한다. 또 어떤 환각 물질보다 더 강한 황홀감을 준다. 지고지순의 즐거움과 행복감을 느끼는 것은 삼매의 경지에 이른 사람이 누리는 특권이라 할 수 있다.

 

불교에서 깨달음에 이르기 위해서 반드시 삼매에 빠져야 한다고 충고한다. 산란한 마음을 하나의 생각, 하나의 대상에 집중시켜 흩어지지 않게 해야 한다. 수행자는 오직 하나의 대상에만 정신을 집중하는 삼매의 경지에서 이르러야 바른 지혜를 얻는다. 그러니 얼마나 오랜 시간을 고승은 면벽수도 했을까. 심산에서 속세와 절연하고 깨달음을 얻은 그들을 마땅히 존경해야 할 것이다. 

 

인체가 만드는 지고지순의 쾌락 삼매경

마약이나 헤로인 같은 화학물질은 인간이 쉽게 쾌락을 얻기 위한 도구로 인위적으로 합성한 화학물질이다. 이것들은 머릿속의 쾌감 부위를 강제적으로 흔들어 쾌락을 느끼게 한다. 이들 합성물질은 정상적인 상태에서 사람이 얻는 쾌락의 수백 혹은 수천 배의 쾌락을 순간적으로 느끼게 한다. 그것이 반복되면 머릿속의 신경다발이 통째로 망가지고 심각한 중독 상태에 빠진다. 이들 물질을 끊으면 환각 상태에 빠져 비이성적인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

 

모르핀이나 마약이 망친 사람은 얼마나 많은가? 프랑스 위대한 상징주의 시인 샤를 보들레르의 시집 <악의 꽃>에서 마약의 황홀경을 묘사했다. 그는 아편 중독 때문에 금치산자 선고까지 받았다.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옙스키도 말년에 마약중독에 시달렸다. 장미처럼 화려하고 비수같이 날카로운 감성으로 19세기의 유럽 시단을 사로잡았던 아르투르 랭보와 그의 동성 연인 폴 베를렌은 마약 때문에 파멸했다.

 

고도의 정신집중을 통해 삼매경에 빠져 느끼는 쾌감의 크기는 어떤 환각물질과 비교할 수 없다. 그것은 삼매경에 빠질 때만 느낄 수 있다. 중독성이 있을래야 있을 수 없다. 그러니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삼매경에 빠지는 것은 좋은 일이다. 거기에는 명상 삼매경과 독서 삼매경만 한 것이 어디 있을까. 문제는 명상의 수준이 지극히 높은 고승들이나 경험할 수 있는 것이 삼매의 경지다. 

 

일반인은 감히 이런 경지를 바랄 수는 없다. 그저 자기에 일에 몰입하면서 얻는 소소한 무아의 즐거움도 좋다. 지고지순한 삼매의 경지가 아니래도 잠시나마 마음의 안정을 얻는다면 이 또한 좋은 일이다. 자주자주 몰입하다 보면 기쁨을 느끼는 시간도 늘어난다. 그러다 보면 고승의 지혜까지는 아니라 해도 삶의 작은 지혜를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 여름도 막바지다. 곧 독서의 계절 가을이 돌아온다. 오죽 책을 읽지 않으면 독서의 계절까지 만들었을까 안타깝다. 하긴 일상이 워낙 바쁘다 보니 마음 편히 책 읽을 엄두가 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온종일 일에 시달리다 보면 몸과 마음이 파김치가 된다. 너덜너덜해진 영혼에 글자가 제대로 들어오기 쉽지 않다. 그렇더라도 짬을 내어 짧은 글 한 편 읽고, 가을에 어울리는 시 한 편이라도 읊으면 삼매는 아니라도 작은 기쁨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