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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능과 인공지능

기억을 습관으로

by 전갈 2022. 3. 31.

 

기억의 생물학적 근원은 우리 뇌의 해마(海馬). 해마는 저장한 기억을 얼마 지나지 않아, 짧게는 몇 초에서 길어야 이삼일 저장했다가 장기기억 저장소로 옮긴다. 우리가 겪는 모든 일을 모두 장기기억 장소로 옮기고, 그것을 기억하려면 우리 뇌의 용량이 지금보다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커야 한다. 두개골의 크기도 지금보다 최소한 몇 배나 더 커져야 한다는 사실을 뜻한다. 먹는 음식의 양도 몇 배나 많아지지 않으면 그 큰 두뇌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뇌는 우리가 경험하고 관찰하고 이해하는 일상들 가운데서 중요한 것만 추려 장기기억 저장소로 이동시킨다. 각별하게 의미를 띠는 일이나 추억이 듬뿍 담긴 장소들이 우리 뇌리에 오래 남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뇌가 에너지 경제성 원칙을 고수하지 않았다면 인간의 왜소한 체격으로 진화의 엄혹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힘들었을 것이다. 인간은 살아남기 위해서 장기기억과 단기기억을 구분하고, 단기기억들을 레테의 강물 위로 흘려보냈다.

 

기억 저장소에 기록된 일을 계속 되새기거나 같은 행동을 반복하면 오랫동안 기억한다. 반복해서 암기하거나 공부한 내용은 장기기억 저장소에 저장된다. 공부를 잘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배운 내용을 장기기억 저장소에 차곡차곡 쌓아두는 일이다. 또 그렇게 반복하는 일이나 행동은 몸이 기억하여 습관으로 변한다. 처음에는 싫고 힘든 일도 계속하다 보면 몸에 익고 즐거움이 생기는 것이 뇌에서 일어나는 신기한 일이다. 도파민은 즐거움 마음으로 공부를 계속하다 보면 어느 순간 쾌락의 물질인 도파민이 샘솟는다. 그것은 공부나 독서를 습관으로 이끄는 열쇠가 된다.

 

공부나 독서가 뒤따르지 않으면 기왕에 알고 있는 기억은 화석으로 변하기 쉽다. 한 해 한 해 나이가 들면서 반복하는 행동이나 되새기는 사건들은 우리 뇌의 장기 저장소에서 화석처럼 굳어진다. 수십 년에 걸쳐 반복된 생각은 돌보다 더 단단하고, 시간의 징으로 굵은 글씨를 새긴 것이다. 쉽게 지울 수 없고 없앨 수 없는 신념이라 부르는 고집이 된다. 너무 단단해 어떤 새로운 정보나 지식이 스며들 틈이 없다. 가치관이나 철학의 범주에 속하는 일들은 옳고 그름이 명확하지 않고 개인의 소신에 많이 좌우된다. 이런 것들이 오랜 세월 켜켜이 쌓여 딱딱하게 굳어지면 새로 고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머리 좋은 사람의 뇌는 뇌 신경세포가 활발하게 움직이며 외부의 정보를 잘 받아들인다. 화석처럼 굳어 있지 않고 젤리처럼 부드럽고 말랑말랑하다. 또 스펀지처럼 다른 사람의 이야기나 새로운 지식을 잘 흡수한다. 머리가 진짜 좋은 사람이 오히려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더 잘 귀 기울인다. 자신이 잘났다고 티 내지 않고 평범한 사람들의 말에서도 옳음을 찾고자 노력한다. 단순히 지능지수만 높은 것이 아니라 공감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진짜 머리 좋은 사람이다.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타인과 교감하려는 그들은 다중지능에서 뛰어난 역량을 보이며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부족함을 인식한다. 진실로 머리 좋은 그들은 아이큐가 높은 사람이 아니라 이해력과 판단력이 뛰어난 지혜로운 사람이다.

 

고집으로 뭉쳐진 사람의 뇌 신경세포의 연결 부위가 뭉텅뭉텅 잘려 나간다. 마치 가을 나무처럼 풍성한 가지들이 다 사라지고 몸통과 잔가지 줄기에 나뭇잎 몇 개가 대롱대롱 달려있다. 풍성한 기억과 지식 가득한 잎들이 자랄 수 없는 마른 나무에는 새도 찾지 않는다. 오직 남은 몇 가지만 붙들고 놓지 않는다. 새로운 바람이나 햇살을 담을 능력이 없기에 더욱 남은 잔가지에만 온 정성을 쏟는다. 고집과 아집으로 뭉쳐진 사람들은 앙상한 가을 나무와 닮았다. 그리 깊지 않은 지식과 짧은 정보만 가지고 그것이 전부인 양 자기 주장을 굽히지 않는 것이다.

 

기억과 습관에는 좋은 것도 있고 버려야 할 것도 있다. 좋은 것들은 언제나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 있다. 유연하고 탄력적이면서 타인과 함께하려고 한다. 반면에 나쁜 것들은 아집과 고집으로 변한 것들이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 생각만 강요한다. 그들의 두뇌에는 뇌 가소성이 사라진 지 오래다. 몇 가닥 남지 않는 뇌 신경세포의 시냅스만 덩그러니 놓여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