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요리의 미학

호모쿡피엔스(요리하는 인간)

by 전갈 2022. 4. 21.

20022년 4월 21일(목)

요리하는 인간 호모쿡피엔스의 탄생

미국의 인류학자 칼턴 쿤(음식의 역사)은 “요리법의 도입은 원초적 동물 상태의 사람을 보다 완전한 인간으로 만드는데 결정적 요인이 되었다.”고 말한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명체 가운데서 자연에서 나는 음식 재료를 가지고 요리하는 것은 인간만이 유일하다.

날것을 먹던 유인원은 음식을 익히거나 삶아서 먹는 요리법을 개발하면서 인간이 되었다. 원초적 동물의 지위에서 벗어난 요리하는 인간, 즉 호포쿡피언스가 된 것이다. 새로운 요리법의 발전은 살기 위해 먹던 본능적 인간을 먹기 위해 사는 소비적 인간으로 탈바꿈시켰다. 쿤의 말처럼 요리법의 개발은 인간을 보다 유인원과는 다른 인간다운 존재로 만드는 동력이 되었다.

 

칼턴 쿤의 말에 따르면,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 중요한 차이 가운데 하나가 요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자신을 요리하는 인간, 즉 호모쿡피엔스라 불러도 되지 않을가? 그런 생각으로 글의 제목을 '호모쿡피엔스'라 붙였다.

 

젊은 바쿠스(1598) - 미켈란제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

 

 

“나에게 인간을 정의하라면 ‘불로 요리하는 동물’이라 하겠다.”

 

스코틀랜드 작가 제임스 보스웰의 말은 인간만이 유일하게 불을 다룰 수 있고, 이것을 사용해서 요리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라고 말한다. “요리하는 짐승은 없다.”는 그의 말에서 날것을 그대로 먹지 않고 불로 요리하는 것은 새로운 문화의 시발점이다. 불을 통한 요리법으로 인간은 지구에서 유일하게 인지혁명에 성공하는 존재가 된 것이다.

 

요리는“동물과 인간의 차이를 입증하는‘ 상징적인 활동”이라는 문화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Claude Levi-Strauss)의 주장을 곱씹어 보자. 이 말은 동물과 인간을 구별하는 여러 기준 가운데서도 요리만큼 뚜렷한 것은 없다는 뜻이다. 동물적 본능과 인간적 욕망을 가르는 경계선에 요리가 있다.

"나는 요리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요리 역사가 마이클 시먼스(Michael Symons)는 “‘불로 요리하기’는 인간의 핵심을 규정하고, 인간성의 책임을 요리사에게 지운다.”는 보다 강한 주장을 펼친다. 역사학자인 펠리페 페르난데스아르메스토(Felipe Fernandez-Armesto)는“불로 요리하는 것은 인류의 인간다움의 지표다.”라고 말한다.

 

이들이 말하는 핵심은 어떤 요리를 먹는가에 따라 사람의 성격 이 달라질 뿐만 아니라 사람의 인격도 달라진다는 것이다. 부드럽고 고급스러운 요리를 먹으면 한결 너그럽고 낙천적인 성격을 가질 수 있는 반면에, 딱딱하고 척박한 요리를 먹으면 성격도 딱딱해진다는 것이다.

레이철 로던은 요리의 역사적 관점에서 볼 때 “변변치 않은 요리를 먹는 사람들은 고급 요리를 먹는 사람들보다 몸집이 작고 힘이 약하며 총기도 떨어졌다.”고 주장한다. 요리가 단순히 먹는다는 본능적 행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인간의 관념과 사상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행위임을 뜻한다.

"나는 요리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호모쿡피엔스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