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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채의 미학

빛의 화가 4, 생레미와 아를의 별빛을 사랑한 고흐

by 전갈 2023. 1. 9.

별빛이 빛나는 밤

<별이 빛나는 밤(1899)>  고흐, 74cm x 92cm 유성페인트, 뉴욕현대미술관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윤동주 시인과 고흐, 그리고 생택쥐페리를 떠올린다. 나이도, 국적도, 직업도 달라도 이들은 별과 바람과 구름을 좋아했다. 44살의 어느 날 밤 홀연히 <어린 왕자>의 별로 떠난 생 택쥐페리(Antoine de Saint-Exupéry, 1900~1944),  37살의 나이로 고통으로 얼룩진 삶을 스스로 마감한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 28살의 젊은 나이에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외롭게 죽어간 윤동주(1917~1945). 이들은 우리에게 별이 빛나는 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말해 주었다. 이들은 별빛이 유난히 아름다운 날 홀연히 별들의 고향으로 떠났다.   

 

이번 글에서는 빛의 화가 시리즈의 마지막으로 고흐를 소개한다. 고흐는 너무나 유명하기 때문에 따로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다. 우울, 고독, 쓸쓸함 같은 단어를 만나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얼굴이 고흐의 자화상이다. 몇 번의 구애에 실패했고, 목사인 아버지와의 절연에 가까울 정도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 고흐의 집안에는 대대로 정신분열증을 앓은 사람이 많았다. 사람과 어울리지 않고 오직 동생 테오에게 의지한 고흐의 정신이 온전하길 바라는 건 애초 무리였는지 모르겠다.

 

결핍과 외로움, 정신 분열의 불안과 심적 고통은 고흐의 짧은 생을 짓이겨놓았다. 고흐는 끊임없는 불안감에 시달렸고 현실에 적응하지 못했다. 주위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우울함에 괴로워했다. 고갱과의 결별에서 면도칼로 자기 귀를 자르는 비극은 고흐의 고단한 삶을 극적으로 표현한 사건이다. 끝내 정신이 혼미해져 고흐는 37살의 나이로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고흐는 한때 프랑스 남부 아를에서 폴 고갱과 살았다. 그들은 ‘남부 인상파 화가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의기투합한 것이다. 처음에는 호감을 느낀 그들은 달라도 너무 다른 성격으로 이내 갈등하고 헤어진다. 어느 날 둘이 심하게 다툰 후 고갱은 고흐와 결별한다. 고갱과의 결별이 주는 불안감과 상실감에 고흐는 스스로 자신의 왼쪽 귀를 잘랐다. 끝내 고갱이 고흐를 떠나자 고흐는 스스로 생레미(Saint-Rémy) 정신병원에 입원한다. 정신이 더 혼미해지면 그의 유일한 즐거움인 그림을 그리지 못할 것을 두려워했다.

 

생레미 정신병원에 탄생한 그림이 바로 ‘별이 빛나는 밤(the starry night)’이다. 곧게 뻗은 사이프러스 나무 뒤의 마을과 교회의 첨탑은 깊은 침묵에 싸였다. 그의 ‘별밤’ 속 구름은 격렬하게 소용돌이치고 별빛은 거칠게 반짝인다. 밤하늘에는 두꺼운 물감과 거친 붓 흔적이 고스란히 남았다. 하얀 캔버스 위에는 수억 광년을 달려온 별들이 거친 숨소리를 내며 별빛을 쏟아낸다. 종이가 찢어질 듯한 강렬한 붓 터치는 터질듯한 고흐 내면의 혼돈을 보여준다.   

           

밤하늘의 별빛과 구름은 격렬하게 소용돌이쳤다. 저 멀리 마을의 불빛도 하나둘 꺼져 어둠에 묻힌 밤과 소용돌이치는 별빛을 강렬한 색채로 표현하였다. 두꺼운 붓놀림과 역동적인 터치로 그린 밤하늘은 물결처럼 굽이치고 있다. 아득히 멀게 느껴지는 마을은 오히려 평온하고 고요하다. 슬픔과 우울함에 망가질 대로 망가진 천재 화가의 눈에 비친 별빛과 밤의 풍경이다. 고흐의 삶을 알기에 이 그림이 사람에게 깊은 감동을 준다. 고통으로 얼룩진 그의 삶 때문에 우리는 더욱 그를 사랑한다.

 

론(Rhône)강의 별빛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1888)> 72cm x 92cm 유성페인트 오르세미술관

고흐의 눈에 비친 별빛은 보통 사람의 그것과 너무도 달랐다. 하늘은 늘 짙은 코발트색이다. 그 사이로 별빛은 마치 노란색의 꽃봉오리처럼 피어있다. 코발트블루의 밤하늘은 고흐의 불안한 심리상태를 나타낸다. 이렇게 프랑스 남부 지방 아를의 론강에서 그는 또 하나의 걸작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을 남겼다.

 

고흐에게 있어 찬란하게 빛나는 별들은 동경의 대상이자 꿈의 나라였다. 그는 단지 론강에 비치는 아름다운 별빛을 화폭에 담기 위해 매일 밤 강가로 나갔다.  강둑에 서서 노란색 별빛이 긴 그림자를 그리며 물속에 빛나는 풍경을 봤다.  밤하늘은 캄캄한 어둠이지만 그것을 짙은 코발트색으로 대체했다.  그는 검은색을 사용하지 않고도 강렬한 밤하늘과 론강의 깊은 어둠을 기가 막히게 표현했다.

  

아를의 밤하늘에는 별빛이 꽃송이처럼 만개했다. 강의 물결은 단단하고 두꺼운 물감의 질감으로 덧칠했다. 코발트색은 밤의 론강을 강렬하게 만든다. 고흐는 색을 단순히 그림을 표현하는 형태나 구성으로만 여기지 않았다. 색을 통해 사람의 감정을 표현하고 대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표현하려 했다.

 

"인물화건 풍경화건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은 감정적인 우수가 아니라 깊은 슬픔과 고통이야. 한마디로, 사람들이 내 그림에 대해 ‘이 사람은 깊게 느끼는구나!’라고 말할 정도의 경지에 이르고 싶다"라고 고흐는 동생 테오에게 말했다. 고흐는 눈앞에 보이는 풍경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려 하지 않고, 색과 두꺼운 붓질을 통해 자기가 느낀 감정으로 바꿔 표현했다.

 

고흐의 그림에서 색은 그림을 보조하는 수단이 아니라 마음을 드러내는 직접적 수단이라 할 수 있다. <밤의 카페테라스(1888)>, <밀밭(1899)> 등 고흐의 수많은 작품 속의 색은 단순히 색이 아니다.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강렬한 색채는 고흐 자신이 보는 세상이고 그의 마음이다. 그의 작품에는 파란만장했던 그의 삶과 아픈 내면이 투영된 것을 사람들은 안다.  그러니 사람들이 그의 그림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생레미 정신병원을 나온 고흐는 다시 심각한 정신적 방황을 겪는다. 평생을 우울과 외로움으로 고통을 받았지만 죽기 직전에는 더 극심한 고통에 시달린다. 예술적 재능이 찬란하게 꽃을 피웠지만 작품 활동을 할 수 없을 정도로 극한의 정신적 고통으로 괴로워했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던 그는 1890년 7월 27일 권총으로 자기 가슴을 쏘았다. 이틀 후 그는 평생의 동지이자 친구였던 동생 테오가 지켜보는 가운데서 37세의 나이로 숨을 거둔다.  

 

<붉은 포토밭(1888)> 캔버스 유화 75cm x 93cm 러시아 푸시킨 미술관

고흐는 27세의 늦은 나이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는 10년 동안 영혼을 태워 그림과 소묘 등 1,500점 이 넘는 작품을 남겼다. 안타깝게도 그 많은 작품 중에서 그가 죽기 전 ‘붉은 포도밭’, 단 한 점이 팔렸다. 그 당시 금액이 400프랑 정도로 알려졌다. 물가를 감안해 지금 시세로 환산하면 몇 백만 원이 채 안 된다. 이 그림의 현재 가격은 약 1,000억 원을 넘을 거라고 한다. 돈이 다가 아니라 해도 고흐의 궁핍한 삶을 생각하면 참 안타까운 일이다.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 까미유 피사로(Camille Pissarro, 1830~1903)는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는 "이 남자는 미치게 되거나, 아니면 시대를 앞서가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보다 더 고흐를 잘 표현 말을 찾기 힘들다. 우리는 열망과 꿈을 거친 붓질과 강렬한 색채로 토해낸 그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