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는 건 숙명적으로 버리지 않고 무언가를 쌓아가는 과정이다. 나이가 들고 살아온 시간이 늘면 함께하는 물건들도 늘어난다. 생활에 필요한 자잘한 것들을 모으다 보면 집안은 어느새 그것들로 한가득하다. 그때는 분명 필요해서 장만했는데 지금은 필요치 않은 것도 많다. 이렇게 물건들을 차곡차곡 놓다 보면, 집안은 더 채울 틈이 없게 된다. 버리자니 아깝고 그냥 두자니 귀찮기만 한 것들이 가득하다. 하나하나 손때가 묻고 추억이 담긴 것들이라 쉬 버리지 못한다. 그걸 버리면 마치 지난날의 추억을 함께 버리는 것 같은 아쉬움이 남기 때문이다.
시골에 사는 사람들이야 집안이 넓어 이곳저곳 물건을 둘 수 있다. 하다못해 창고라도 지어 그곳에 물건을 넣어두었다가 생각날 때 꺼내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도시 생활은 그렇지 못한 형편이라 처치 곤란한 물건으로 난감할 때가 많다. 기껏해야 30평이나 40평 남짓한 아파트 공간에 물건을 두면 금방 꼭 찬다. 버리지 않고 쌓기만 하면 몇 년 지나지 않아 발 디딜 틈조차 사라지는 게 현실이다.
한 평 가격이 금싸라기보다 더 비싼 아파트 시세를 생각하면 쓸데없는 물건이 차지하는 공간의 가격이 만만하지 않다. 수십억 원이나 하는 아파트 시세를 따져보면 한 뼘의 땅값이 수천만 원씩이 되니 그 비싼 곳에 쓰지 않는 물건을 쌓아두는 건 엄청난 돈 낭비다. 그럴 바엔 두 번 다시 쓸 일 없는 물건들을 과감히 버리고 평수를 줄여 작은 집으로 이사하는 게 현명하다. 남는 돈으로 여행을 다니며 즐겁게 사는 것이 더 행복한 삶이 아닐까?
우리의 마음도 쓸데없는 물건으로 가득 찬 집과 다를 바 없다. 두뇌에 저장된 기억 저장소에 온갖 잡동사니로 채워두면 얼마나 낭비인가. 두뇌의 크기가 1.3~1.4kg이라는 걸 고려하면, 성인들의 몸에 비해 얼마나 작은 규모인지 짐작할 수 있다. 덩치에 비하면 턱없이 크기가 작은 두뇌는 우리 몸이 사용하는 열량의 20% 이상을 사용하는 에너지 연소 공장이다. 두뇌가 생산적으로 사용해도 모자랄 에너지를 불필요한 곳에 사용해서는 안 될 일이다. 미운 감정, 증오, 배신, 원통함 등 각종 나쁜 감정들을 두뇌의 기억 저장소에 남겨둬서 좋을 것 하나 없다. 비싸디 비싼 두뇌의 공간을 각종 폐기물로 채우면 이 얼마나 어리석은가?
우리가 사는 집도 그렇고, 우리의 두뇌도 그렇고 비우면 비울수록 그곳의 값어치는 올라간다. 당장 사용하지 않고 앞으로 쓸 일 없는 것들을 과감히 비워야 한다. 비어 있는 자리에 꽃 화분을 두거나 벽에도 고흐의 ‘해바라기’를 둔다면 얼마나 멋진 풍경이 될까. 이쁜 꽃을 보고 그림을 보면서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다.
그렇듯이 우리의 두뇌도 가끔은 청소가 필요하다. 나쁜 기억과 감정을 깨끗이 쓸어내고 텅 빈 자리로 만들 필요가 있다. 좋은 생각과 좋은 기억들이 이사해 올 자리를 준비해야 한다. 늘 신선하고 좋은 기운들이 가득 찰 수 있도록 기억 저장소를 비워야 두는 것이 좋다. 꽃과 그림, 그리고 좋은 생각들이 오래 머무를 수 있도록 집도 두뇌도 자주 청소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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