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쯔강의 앞 물결은 뒷물결에 자리를 양보한다?
혁명을 통해 기존의 권력과 체제를 전복했다면, 그 후 세상을 새로 설계하고 공평을 실현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모르긴 해도 혁명을 주도했던 사람들이 그 역할을 맡을 것이다. 순수한 이상의 혁명가들이 욕망으로 얼룩진 현실의 세계로 들어서는 순간이다.
그들도 사람이고 그들도 가족을 가졌다. 모두 성직자가 아닌 바에야 누구나 현실의 삶에 기반을 둔 생활인이다. 성직자들조차 완벽하게 정의롭게 살 수 없는 게 현실 세상이다. 하물며 아무리 굳건한 혁명의 이상을 가진 사람이라 해도 손에 쥔 권력의 매혹을 뿌리치기 어렵다.
혁명가 자신은 그런 유혹을 능히 떨칠 수 있다 해도 그럴 둘러싼 사람들까지 그렇다고 하기 힘들다. 사심을 버리고 오로지 공정함과 정의로움으로 살아가자고 다짐하지만, 가족이나 친지들은 그리 높은 혁명의 도덕심을 견지하기가 사실상 힘들다. 물이 새는 것은 허약한 둑에서 시작되고, 부패가 이는 곳은 권력자 주변의 약한 고리에서 시작된다.
이상적인 제도나 시스템을 갖추고 국가를 경영한다면 해결될까? 설혹 그렇게 한다 해도 결국에는 최종 결정은 언제나 사람의 몫으로 남는다. 제도를 만드는 것도 사람이고 일의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것도 사람이다. 그것이 혁명가 본인이 되었든 아니면 부하가 되었든 결국 그들도 사람이다.
그들의 이상도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빛이 바랜다. 시대가 바뀌고 세상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순간이 온다. 전문성은 떨어지고 정치적 판단력도 흐려진다. 특히 네트워크 기술의 발전은 빠르다 못해 빛의 속도다. 그런 변화를 따라가기에 그들의 실력이 모자란다. 남는 건 오직 권력의 힘으로 누르는 것이다. 후배를 키우지 않고 자기들끼리 권력의 장벽을 높이 쌓는다.
‘장강후랑추천랑 일대신인환구인(長江後浪推前浪, 一代新人煥舊人)’
장강(양츠강)은 뒷물결은 앞 물결을 밀어고, 새 인물이 옛사람을 대신한다.
중국 명나라 말기 격언집 '증광현문(增廣賢問)‘이라는 격언집에 나오는 말이다. 세대교체를 통해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여 사회를 이끈다는 말로 쓰인다. 원뜻은 물 흐르듯 자연스레 새 사람을 키워 사회를 이끌도록 해준다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도 그리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늙은 뱃사공이 물길을 안다‘는 말처럼 그들의 지혜를 젊은 뱃사공이 알려주면 사회는 조화롭게 발전할 것이다. 새 세상을 만들자는 증광현문의 이상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현실은 과연 그러한가? 정치인들은 이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언제라도 새 인물에게 자리를 양보할 것처럼 말한다. ’손해 보고 판다‘는 상인의 말만큼이나 믿기 힘든 게 언제든지 훌륭한 신인이 나타나면 양보하겠다는 정치인의 말이다. 속내는 그런 후배들이 보이면 일찍 싹을 자르고 아예 키우지 않을 셈이다. 그러면서 아직 양보할 신인이 없으니 나 말고 대안이 없다고 천연덕스럽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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