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6월 21일(화)
우리 아이는 커서 뭐가 될까?
"너 커서 뭐가 되려고 이러니?"하고 엄마가 목소리를 높인다.
이 말을 듣는 아이는 무척 당황스럽니다. '내가 커서 뭐가 될지 어떻게 알아?'하고속으로 생각한다.
어릴 때 이 말을 들으면 정확하게 그 뜻을 알 수 없어 그저 한쪽 귀로 흘려듣는다. 대답이 궁한 아이는 대답 대신 눈만 껌뻑일 거다. 개중에서 제법 용기 있는 아이는 뭐라도 될 것이라 대답한다.
사실 엄마나 아빠가 아이에게 이런 말을 한다면 아이의 장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하는 말일 가능성이 높다. 아이가 기대대로 잘 자라준다면 부모가 걱정할 일이 없다. 부모가 바라는 기대치와 아이의 현재 상황이 엇나가는 일이 벌어지면 부모는 흔히 그렇게 말한다. 그것도 화난 목소리로 말이다.
아이가 자라서 뭐가 될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이가 대학교를 마치고 사회에 나가기까지 최소 15년이나 20년의 세월을 앞에 두고 뭐가 될 것인가를 묻는 것은 의미가 없다. 아이가 자라서 뭐가 될지 누가 알겠는가? 흔히 말하는 좋은 직장에 입사하거나 판검사 혹은 공무원이 된다면 부모가 꿈꾸는 아이의 장래 모습일 것이다. 현재 아이의 상황만 놓고 미래를 예측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아이가 일찍 글을 깨치고 공부를 잘한다고 해도 그것이 쭉 이어질지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 지금 아이의 머리가 좋다고 해서 성인이 될 때까지 그 머리를 유지한다는 보장도 없다. 아이가 자라 대학을 마칠 때까지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고 위기의 순간에 부딪힌다. 그것을 슬기롭게 극복하고 자신의 길을 향해 매진하는 아이는 자라서 뭐라도 될 것이다.
커서 뭐가 될지는 지금부터 어떻게 관리하고 노력하느냐에 달렸다. 어릴 때 천재라고 칭송받던 아이가 평범한 사람으로 자라는 경우가 흔하다. 그 많은 머리 좋고 똑똑하다는 아이들이 20년 후 혹은 30년 후에는 사라지고 없다. 영리하고 머리 좋은 아이들이 다 어디로 사라지는가? 분명 성인이 된 그들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음에도 그들의 존재감은 사라진 지 오래다. 머리 좋고 똑똑하다는 사실이 잘 못 알려진 것일까? 아니면 그 시절에는 조금만 잘하면 그렇게 보이는 것일까?
존재감 없던 아이들의 성공 이야기
어릴 적 존재가 희미하던 아이가 뛰어난 업적을 남기는 놀라는 일도 많이 벌어진다. 공부도 신통치 않고 특출한 재주도 없던 아이가 훌륭한 인물이 되는 경우도 많다. 일찍부터 똑똑하고 영리한 싹을 보이긴 하지만 그것이 성인이 될 때까지 유지되기 어렵다. 반대로 처음에는 싹이 보이지 않았지만, 성인이 되어 큰 나무로 자라는 예도 많다. 이런 경우를 생각해 보면, 머리가 좋다는 어릴 적 기준이 아이의 미래를 보장하는 절대적 기준이 아니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미국 스탠퍼드 대학 심리학 교수를 지낸 루이스 터먼(Lewis Terman)은 어릴 적 IQ 상위 5% 내의 아이들이 장차 사회 발전을 주도하는 인재로 성장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미국 초·중학생 25만 명 중 IQ가 140이 넘는 영재 1,500명을 선발했다. 그리고 그들의 학업성취도, 직업, 승진, 결혼에 이르기까지 인생의 전반을 기록하고 추적했다. 연구를 시작한 지 40년 후 그의 영재 그룹 중 겨우 31명의 남자와 2명의 여자만이 미국 인명사전에 이름을 올렸다.
반면에 머리가 보통이라 판정받아 선발되지 않는 학생인 윌리엄 쇼클리는 하버드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고, 1948년 접합형 트랜지스터를 발명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이 공로를 인정받아 1970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터먼은 또 다른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루이스 알바레스도 IQ가 낮다고 연구 대상으로 받아주지 않았다. 이처럼 어릴 적에는 크게 두각을 나타내지 않았던 아이들이 세계적 발명을 하거나 인류의 삶에 이바지하는 뛰어난 연구 결과물을 내놓은 경우가 많다.
그 후로도 터먼은 계속 어릴 적 IQ가 높은 그들의 삶을 추적했는데 선발한 학생 중 주목할 만한 공헌을 한 사람은 없었다. 특히 두드러지게 탁월한 성과를 거둔 사람은 하나도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에는 터먼도 학생들의 IQ 점수 하나만을 기준으로 천재를 찾아낼 수 없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스콧 배리 카우프만은 『불가능을 이겨낸 아이들』에서 "어린 시절에 신동이었던 많은 사람이 자기 재능과 무관하게 삶의 이후 단계에서 흐지부지하게 변해버리는 것도 어쩌면 강박적 열정 때문일지 모른다."고 말한다. 그는 모든 학생이 조화로운 열정을 가질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 주는 것이 중요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이처럼 어릴 적에는 머리가 나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그 후 자신의 노력으로 보란 듯이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한둘이 아니다. 문제는 어릴 적에 머리가 좋다거나 나쁘다는 판정을 너무 쉽게 내리는 데 있다는 것이다. 실제 아이들의 창의성과 잠재력을 제대로 평가하지 않고 단지 학교 성적이나 IQ 검사 결과로만 낙인찍는 잘못을 범한다.
“너 커서 뭐가 되려고 이러니?”라고 질책해서는 안 된다. “너 커서 뭐가 되고 싶은 거니?”하고 아이의 입장에서 물어야 한다. 그리고 아이가 원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진심으로 격려하고 지원해야 한다. 텃밭의 채소를 키우는 데도 정성과 인내를 보이는 사람들이 정작 아이를 위해서는 왜 그런 것을 보여주지 않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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