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 들개가 된 유기견
제주도에는 최근 몇 년간 들개 무리가 많이 늘었다. 이들은 소와 닭 등 가축은 물론 노루 등 야생동물을 잡아먹을 정도로 난폭하다. 들개들은 축사를 습격해 소와 송아지를 공격하고, 심지어 덩치 큰 말들을 물어 죽였다. 제주 한라산 둘레길과 올레길, 중산간에 위치한 오름과 들판, 심지어 골프장까지 들개가 자주 나타난다. 제주도 산간 지역 일대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을 정도로 들개 떼가 설친다.
들개가 늘어난 까닭은 사람 탓이다. 반려견을 키우는 가정이 늘면서 유기견도 함께 증가했다. 개를 키우다가 이런저런 이유로 내다 버리는 일이 잦다. 버려진 개들은 생존을 위해 무리 지어 생활하며 공동 사냥을 나섰다. 여기다가 시골 마을에서 목줄 없이 키우던 개들이 유기견과 떼를 이루며 다니다가 야생화한다. 굶주린 개들은 가축과 다른 야생 동물을 물어 죽인다.
개의 직접 조상은 늑대가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 개의 조상이 늑대의 조상과 많이 닮았지만 그렇다고 늑대는 아니다. 개의 조상 가운데 성격이 온순한 무리가 인간의 손에 길러졌다. 오랫동안 인간과 함께 생활하면서 인간에게 충성하는 개로 품종이 바뀌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이렇게 가축화한 개의 핏속에 어떻게 늑대의 공격 본능이 있을까. 이 비밀을 풀기 위해서는 사람이 개를 가축화하는 과정에 어떻게 품종을 개량했는지 알아야 한다.
미국 국립보건원(NIH) 산하 국립의학도서관(National Libary of Medicine)에 2020년 10월 29일 등재된 논문(주 1)을 읽어 보자. 이 논문에서 연구진은 27개의 고대 개 게놈을 분석했고, 개는 현재의 늑대와 구별되는 공통 조상을 공유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 논문에서 흥미로운 점은 가축화 이후에도 늑대와 개 사이의 유전적 흐름이 발견된다는 주장이다. 인간은 개를 가축으로 삼은 뒤에도 끊임없이 늑대와 교배를 시켰다는 것이다.
시베리아허스키와 몰티즈의 분화

개 품종 중 하나인 시베리아허스키의 모습을 보면 늑대와 많이 닮았다. 적어도 시베리아허스키의 조상은 늑대와 유전자 교류를 많이 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덩치가 크고 힘이 센 개는 인간의 사냥을 돕고, 집을 지키는 데 제격이다. 이런 개들을 늑대와 교배시켜 더 나은 견종을 개발했다. 시베리아허스키가 늑대를 닮은 데는 이런 이유가 있을 것이다.
반면에 몰티즈 같은 개는 늑대와 전혀 닮지 않았다. 작은 개들은 인간이 애완견으로 기를 목적으로 다른 작은 개와 교배를 시켰다. 앙증맞고 귀여운 개를 원하는 사람이 많아지자 비슷한 품종의 개를 교배하는 일도 흔해졌다. 이처럼 인간은 개들과 오랫동안 함께 살며 계속 품종을 개량했다. 그 결과 오늘날 세계 각국에는 약 모습과 혈통이 다른 다양한 종류의 개들이 살고 있다.

벨기에에 본부를 둔 세계애견연맹(Fédération Cynologique Internationale, FCI)은 개의 종류를 10개 그룹으로 나눈다. 가축과 양을 감시하고 축사로 이동하는 일을 돕는 캐틀 도그 그룹, 가축을 지키는 슈나우저 그룹, 동물을 사냥하는 테리어 그룹, 뛰어난 후각을 발휘하여 사냥감을 추적하는 하운드 사냥개 그룹, 토이라 불리는 몰티즈와 푸들이 속한 반려견 그룹 등이 그것이다. 이들 견종은 모습과 혈통 그리고 개를 기르는 목적에 따라 그룹이 나뉜다. 이렇게 분류한 개의 종류만 해도 현재 400여 종이 된다.
개는 주인이 생존에 필요한 먹이를 제공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학습해 익힌다. 동시에 주인은 거친 자연환경에 노출되지 않도록 보금자리를 준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주인 덕분에 개는 늑대나 멧돼지 같은 상위 포식자의 위협에 노출되지 않고 산다. 개에게 사회성을 교육할 때 간식이나 먹을거리를 갖고 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개는 자기에게 먹이를 주는 주인에게 복종하고 충성한다.
유기견 무리가 늑대의 행동을 보이는 것은 유전자 교환의 결과이다. 일부 덩치 큰 개의 핏속에는 늑대의 유전자가 흐른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사람에게 복종하고 충성을 다하고, 그 대가로 먹이와 보금자리를 얻는다. 이런 학습한 결과 그들은 순한 개가 되었다. 그들을 버리고 함부로 대했다간 늑대의 야성과 맹수의 본능을 일깨우게 된다. 덩치가 산만 한 들개들이 무리 짓고, 우두머리가 달빛 아래 포효하면 늑대나 다름없다. 그러니 반려견을 기르려면 끝까지 사랑으로 보살피고 끝까지 책임져야 하지 않을까.
주 1: Origins and genetic legacy of prehistoric dogs.
(https://www.science.org/doi/10.1126/science.aba9572)
'견문학 산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속 2000rpm, 강아지 키키의 꼬리펠러 속도 (1) | 2023.06.16 |
---|---|
까칠한 강아지 키키가 아빠 말을 다 알아듣는다고? (0) | 2023.06.16 |
귀여운 강아지 키키의 조상은 회색늑대가 아니다. (0) | 2023.06.16 |
언제 인간과 개의 우정이 시작되었을까? (1) | 2023.06.16 |
<가족관계증명서 : 몰티즈, 페르시안 고양이, 나> (1) | 2023.06.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