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월 11일(일)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곳...
이른 아침 유난히 코끝이 싸한 겨울바람을 안고 달린다. 아파트에서 인천공원묘지까지 달려오면 50분 남짓 걸린다. 수많은 죽음이 누워 있는 곳이라기보다 현대식으로 깔끔하게 단장을 해서 숲이 아늑한 말 그대로 공원이다. 그래서 주말이면 산책 삼아 이곳으로 달려온다. 인천에는 공단이 많아 시내의 공기가 탁해서 조금만 걸어도 목이 아프다. 그렇지만 이곳에 들어서면 공기가 신선해서 참 좋다. 삶과 죽음이 자연스레 어우러지는 곳이라 마음이 차분해진다.
그곳으로 가기 위해 가끔 낙엽이 지천으로 깔린 만불산을 넘었다. 높지 않은 산이 동네 어귀에 있기에 주말이면 사람들로 야단법석이다. 원래 야단법석(野壇法席)이라는 말은 원래 부처님이 대중들에게 설법을 베풀기 위해 야외에 설치한 단상을 말한다. 본래의 뜻에는 경건함과 엄숙함이 담겨 있다. 그렇지만 우리가 아는 야단법석은 시끄럽게 떠드는 ‘야단(‘惹端)’이라는 한자와 우리말 ‘법석’이 결합된 말이다. 형형색색의 등산복을 차려입은 등산객들의 웃고 떠드는 소리는 부처님의 설법을 위한 경건함과는 거리가 멀다.
만불산을 넘어가면 곧바로 만수산 초입의 도롱뇽 마을이 나온다. 맑은 실개천에 도롱뇽이 많이 서식하기에 이곳을 보호구역으로 지정해서 관리하고 있다. 물가로 내려가지 못하게 장벽을 설치한 탓에 먼발치에서 내려 보면 물위에 산 그림자만 드리워져 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만수산 허리를 가로지르면 공원묘지의 정상에 오른다. 겨울 햇살 곱게 내리는 산 아래 넓은 자리에 비석들이 줄지어 서 있다. 직사각형의 묘비에 하얀 대리석 갓을 씌운 비석들이 촘촘히 자리하고 있다. 이른 아침 어떤 이의 가족이 조문하고 갔나 보다. 비석 앞에서는 국화 한 다발이 다소곳이 놓여 있다. 간간이 조문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없다면 온통 고즈넉한 침묵만 흐른다.
지금은 다들 반 평도 채 되지 않는 공간에 이렇게들 누웠지만 살아서 얼마나 많은 사연들이 있었을까? 천년도 더 살 것 같이 아등바등 그렇게 살았을까? 아니면 학처럼 우아하고 고고한 삶을 살다 갔을까? 따지고 보면 삶이라는 것이 누구에게도 항상 기쁨만 주지 않을 터이고 보면 다들 고만고만한 상처들을 간직하며 살았을 것이다. 우리 삶도 그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숙연해진다.
토스카니니의 ‘현을 위한 아다지오’
갈수록 삶이 팍팍해지고 신산해서일까? 문득 사무엘 바버의 '현을 위한 아다지오'의 애잔한 선율이 생각나서 음악을 듣는다. 이 곡은 미국 근대 작곡가인 사무엘 바버(Samuel Barber)가 1936년에 곡을 만든 후, 당시 미국 NBC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이면서 세계 최고의 명성을 가진 토스카니니에게 초연을 부탁했다. 그런데 아무런 대꾸도 없이 악보만 바버에게 되돌아 와서 매우 실망하였다. 그런데 토스카니니는 악보를 외웠으니 필요 없다고 하면서 미국 전역으로 방송되는 뉴욕연주에서 연주를 했다. 그후 토스카니니는 1940년 남미 순회공연에서 이 곡을 항상 연주함으로써 관객들의 찬사를 받았다고 한다.
토스카니니는 지독한 근시로 태어나서 연주 중에 악보를 잘 볼 수 없었다. 뛰어난 음악적 재능을 가진 그는 첼로 연주자로 활동하면서 아예 악보를 통째로 외워 연주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의 오케스트라가 해외 공연을 할 때 예정된 지휘자가 지휘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했다. 그때 악보를 통째로 외우고 있던 그가 지휘봉을 잡게 되었다. 그날 토스카니니의 천재성이 찬란하게 빛을 발하였고, 세계 최고의 지휘자로 탄생하는 순간이되었다. 이때가 그의 나이가 불과 19살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얼마나 천재적인 음악가인지 알 수 있다. 위인의 탄생 이면에는 그의 재능과 더불어 갑작스런 행운도 따르는 법인가 보다. 하긴 그런 기회도 재능이 있어야 잡는 것이고 보면 운과 함께 하는 재능을 누구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토스카니니는 음악적 천재성 못지않게 불굴의 의지로 당시 오케스트라 세계의 병폐를 과감하게 개혁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당시까지 전해오던 음악회의 잘 못된 관습을 철폐하고, 공연의 질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리고 유능한 연주자와 신인 가수들을 발굴하는 일에도 열성을 쏟았다. 연주가 완벽해질 수 있도록 모든 단원의 재능을 최고로 끌어내는 능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토스카니니는 무솔리니의 독재정권에서 음악 활동을 하였다. 어느 날 무솔리니가 직접 그의 공연을 보러 왔는데, 이때 파시스트의 찬가를 공연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그러자 그는 단호히 지시를 거부하고 공연장을 뛰쳐나갔다. 또 히틀러 앞의 공연을 거부하여 박해를 당하자 미국으로 망명해 버렸다. 한마디로 그는 신념과 지조, 그리고 음악에 대한 완벽을 추구하는 예술가로도 유명하다.
그런 토스카니니가 1938년 뉴욕에서 바버의 ‘현을 위한 아다지오’를 성공적으로 공연하여 큰 찬사를 받았다. 그 이후 토스카니니는 1940년에 남미 공연을 하는 내내 이 곡을 연주했다고 한다. 이때까지만 토스카니니가 미국 작곡가의 곡을 연주한 적이 없고 바버의 곡이 처음이라고 한다. 이때 그의 나이가 75세였지만 여전히 왕성한 지휘활동을 하였다. 80살이 되었을 때 파티에참석한 젊은이들에게 60대 후반의 사람들을 가리키면서 "저 늙은이들이 다 가고 나면 우리끼리 신나게 놀아보자" 라고 말할 정도로 열정적인 삶을 살았다. 그런데 열정이 주는 아픔이 고통이 된다는 것을 토스카니니는 몸소 체험하였다.
“신이시여!! 나이가 80인 노인인 제게 어찌 17세 소년의 열정을 주시나이까?”라고 토스카니니는 탄식했다고 한다.
영화 플래툰(platoon)의 주제 음악
‘현을 위한 아다지오’가 클래식 애호가와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려진 계기는 1986년 상영된 올리버 스톤 감독의 풀래툰(platoon)이란 영화의 주제가가 된 일이다. 이 영화는 59회 아카데미 작품상과 골든 글로브, 그리고 베를린국제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하였다. 당시 전쟁영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받을 정도로 명작이었다. 감독 자신이 직접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경험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이다.
그는 전쟁이 선과 악에 대한 사람의 판단이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 극한 상황에서 어디까지 잔인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주인공 크리스는 전쟁광인 번즈 중사와 인간을 사랑하는 엘리어스 중사의 대결을 통해 전쟁의 가치관을 둘러싼 충돌을 목격한다. 두 사람 다 플래툰, 즉 자신의 소대를 살리고 동료를 살기기위해 처절하게 노력하지만, 접근 방법이 근본적으로 달랐기 때문에 사사건건 충돌한다. 두 사람의 극한 대립은 끝내 번즈 중사가 엘리어스 중사를 죽게 만들고, 번즈 중사는 자신의 방식대로 플래툰을 지휘한다.
크리스는 번즈가 전쟁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피도 눈물도 잔혹한 군인이 되었음을 알았다. 또 그는 엘리어스가 번즈와 달리 인간성과 도덕성을 갖춘 리더라는 것을 알고 있다. 크리스는 번즈로 인해 엘리어스가 죽게 된 것을 알고 전투 중에 부상을 입은 번즈를 사살한다. 그러면서 크리스는 두 사람의 리더십에는 차이가 있지만, 그들이 원하는 것은 소대의 생존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크리스는 영화의 끝 장면에서 “돌이켜보면 우린 적군과 싸우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우리끼리 싸우고 있었습니다. 결국 적은 자신의 내부에 있었던 것이었습니다”라고 독백한다. 한때 인기를 끈 ‘미생’이란 드라마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 “회사가 전쟁터라고? 밖은 지옥이다”. 정부도, 기업도, 회사도, 대학도, 오직 처절한 생존의 논리만 존재하는 현실에서 플래툰의 전쟁과 별반 다를 게 없다.
토스카니니가 연주한 ‘현을 위한 아다지오’는 강렬하면서 애수 어린 곡이라 우아하면서 애틋한 비장미가 마음을 울린다. 두 개의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콘트라베이스의 묵직하면서도 애잔한 선율이 끊어질 듯 흐른다. 사실 이 곡은 아인슈타인, 루즈벨트, 존 F 케네디, 그레이스 켈리 등등 셀 수 없는 위인들의 추도곡으로 사용될 정도이니 그 애잔함이야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삶, 그 존재의 무거움이 이 음악을 생각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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