얕은 물은 쉽게 오염된다. 실개천이나 작은 웅덩이에 이물질이 들어오면 금방 더러워진다. 작은 대야에 잉크 한 방울 떨어뜨리면 온 대야가 잉크색으로 변한다.
사람 생각도 그렇다. 사고의 깊이가 얕을수록 주변의 영향을 쉽게 받는다. 자주 유혹에 흔들리고 남의 말에 귀가 솔깃해진다. 남의 의견에 내 판단이 휘둘리는 잦은 것은 내 생각이 얕은 탓이다. 생각과 사고가 깊다면 남의 말이나 의견에 쉬 흔들리는 법이 없다.
생각이 얕고 지식이 박약하면 생활의 지혜가 부족하고 삶에 대한 통찰력이 떨어진다.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앞날을 내다보는 눈도 없다. 한치 앞만 보고 결정하는 어리석음을 되풀이한다. 겨우 한 수 앞만 계산하는 바둑으로 어찌 대마를 잡을 수 있겠는가.
머리가 복잡하다. 세상을 꿰뚫어 보는 지혜가 모자람을 탓하지만 그런다고 달라지는 게 없다. 열심히 책 잃고 생각을 깊이는 명상을 계속하면 짧은 식견이 채워질 것이다. 욕망이 마음을 흐리게 하고 머리를 어둡게 만들어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없게 만든다. 항상 마음을 정갈하게 비워둔 채 세상 이치를 배워야만 제대로 깨칠 수 있다. 부처님의 말씀이든, 하나님의 말씀이든, 선현들의 말씀이 굴절되지 않고 곧은 채 내 마음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잡스러운 생각으로 가득한 머리를 비워야 한다.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세상이라, 평균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한 발자국만 앞서면 재주가 뛰어난 사람이 된다. 어차피 사람이 법을 만들고 제도를 만들고 음악을 만들고 음식을 만든다. 이들 모든 것이 평균적인 사람이 빚어내는 작품이다. 그 가운데서 한 뼘만 머리가 좋아도 이 모든 것을 쉽게 이해하고 조정할 수 있다. 사람 사는 지식이나 지혜를 그리 출중하지 않아도 그저 조금만 더 이해력이 높아도 제대로 알아챌 수 있다.
생각을 깊게 하려면 사고를 연마해야 한다. 생각과 사고가 다를 바 없다면 같은 말이다. 생각을 깊게 하려면 독서와 명상을 많이 해야 한다. 타인의 지혜를 배우고 묵상을 통해 그것을 내 것으로 만들면 자연 생각과 사고가 깊어진다. 부처의 말씀을 곱씹으며 욕망의 헛됨을 자각하는 것도 좋다. 소크라테스와 아리스토텔레스가 발견한 삶의 지혜도 본받을 만하다. 예수의 말씀은 종교가 없는 사람에게도 마땅히 새겨듣고 따라야 할 것들이다.
따지고 보면 생각은 무엇인가? 신경전달물질의 흐름과 뉴런의 활동으로 인해 생기지만, 그 생각이 또한 신경전달물질의 흐름과 뉴런의 활동에 영향을 끼친다. 생각과 뉴런의 물질 조건이 상호작용함으로써 우리의 생각과 사유의 깊이를 더한다.
생각과 사고가 깊으면 세로토닌이 편안하게 유지되고, 그 결과 우리 마음도 편안해진다.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평정심을 유지하면 흥분을 조절하는 아드레날린도 안정감을 가진다. 생각과 행동도 자연 진중해지면, 남의 감언이설에도 담담하고 심지어 나를 헐뜯는 말조차 가볍게 여길 수 있다.
세로토닌은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물질이다. 명상과 독서, 규칙적 운동은 세로토닌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깊이 얕은 글이나 지나치게 감각적인 행동을 멀리하는 것이 좋다. 스마트폰에서 쏟아지는 정보 가운데 제대로 된 깊이 있는 것을 선별하는 눈이 필요하다. 값싼 정보에 정신을 많이 뺏기나 가십 거리에 몰입하면 생각이 얕은 사람은 영혼이 쉽게 탁해진다. 단발성의 쓰레기 기사를 읽노라면 정신의 맑은 물이 고갈된다. 아직 천착한 영혼의 깊이로는 한 방울의 검은 물에도 검게 물든다.
무릇 좋은 글과 좋은 행동은 즉각적으로 도파민을 분출하지 않으만, 서서히 오랫동안 지피는 군불처럼 시간이 지나서 효과가 발현된다. 구들목을 지피는 불은 오래오래 몸을 따뜻하게 데운다. 잔불 사그라질 때까지 방에 온기를 주는 불같이 명상과 독서는 은근히 도파민과 세로토닌을 고갈하지 않고 분비하게 함으로써 오래도록 마음의 평안을 준다.
세로토닌이 과하지 않고 모자람이 없다면 마음은 늘 평안하다.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그림을 그리고 운동을 하면 몸이 강건해지고, 마음은 늘 천국이 된다. 마음이 편안해지면 생각의 깊음과 영혼의 맑음이 더할 나위 없이 좋아진다.
'느림의 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짧은 여행과 스티븐 킹 이야기 (0) | 2022.03.31 |
---|---|
얀 반 에이크의 초록과 태화산 (0) | 2022.03.31 |
현을 위한 아다지오 (0) | 2022.03.30 |
사랑을 요리하기 (0) | 2022.03.30 |
너무 늦은 때란 없다. 너무 늦은 깨달음만 있다. (0) | 2022.03.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