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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의 미학

신이시여, 욕망을 주셨으면 재능도 주셨어야죠!!

by 전갈 2022. 4. 8.

2022년 4월 8일(금)


천재를 시기한 2인자의 광기인가?
“신이시여, 욕망을 주셨으면 재능도 주셨어야죠” 얼굴에는 검버섯과 주름이 가득한 노인이 절규한다. 정신병원에 갇혀 죽을 날만을 기다리는 안토니오 살리에리는 오늘도 신을 원망한다. 천재를 따라갈 수 없는 2인자의 처절한 몸부림에 사람들은 미움보다 측은함을 느낀다. 1인자가 되지 못하는 사람의 심정을 절절하게 대변했다. 영화 아마데우스(Amadeus)는 모차르트를 질투하는 살리에리의 회고로부터 시작한다.

살리에리의 비애가 절절히 묻어나는 애통한 대사는 사실은 영화 감독의 상상력의 결과물이다.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모차르트를 향항 질투심과 광기를 가장 극적으로 들어낸 이 말을 정작 살리에리는 한 적이 없다. 영화의 극적 재미를 더하기 위해 만들어 낸 것이다. 감독의 의도는 제대로 먹혔고 사람들은 그의 절규에 감정을 이입했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사람들은 긴장하면서 살리에리의 행동에 몰입했다.

영화 아마데우스의 원작은 푸시킨의 희곡 <모차르트와 살리에리>에서 출발한다. 푸시킨은 아마데우스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 1756∼1791)가 죽고 난 후 시중에서 떠돌던 소문을 자신의 작품에 담았다. 당시 사람들 사이에는 모차르트의 둘러싸고 말들이 많았다. 그중에는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를 독살했다는 소문도 나돌았다.

푸시킨은 당대 최고의 음악가인 모차르트와 살리에리의 관계에다 자신의 문학적 상상력을 가미해 드라마틱하게 각색했다. 니콜라이 림스키 코르사코프는 1898년 푸시킨의 희곡을 오페라로 만들었다. 여기에 영감을 얻은 극작가 피터 셰퍼가 1979년 ‘신이 가장 사랑한 사람’이란 뜻의 희곡 “아마데우스 Amadeus”를 브로드웨이 극장 무대에 올렸다. 1984년 영화감독 밀로스 포먼이 이것을 다시 영화 “아마데우스”를 만들어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영화에서 모차르트의 천재적 재능을 시기한 살리에리는 모차르트를 죽음에 이르게 한다. 이 영화를 통해 사람들은 모차르트가 어릴 적부터 뛰어난 작곡 실력과 피아노 연주실력을 갖춘 불세출의 음악의 천재로 기억하게 되었다. 그 후 많은 사람이 자료 조사를 통해 모차르트의 어릴적 음악적 천재성이 과도하게 부풀려졌다고 지적한다. 특히 살리에리를 아주 비겁하고 살인자에 가깝게 묘사한 것은 희곡과 영화의 재미를 위해 것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모차르트는 3세부터 뛰어난 피아노 연주실력을 보였고, 어린 나이에 아름다운 음악을 작곡했다. 6세부터 8세에 걸쳐 유럽 곳곳에 연주 여행을 다니면서 귀족 후원자들부터 많은 돈과 명성을 얻었다. 두꺼운 천으로 손과 건반을 가린 채 건반 악기를 연주하고 주어진 테마에 따라 즉석에서 곡을 만들었다. 그는 여섯 살 때 미뉴에트를 작곡하고, 아홉 살에 교향곡, 열한 살에 오라토리오, 열두 살에 오페라를 썼다. 이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모차르트의 모습이다.

타고난 천재인가? 노력한 천재인가?
연구자들은 세상 사람이 아는 이같은 모차르트의 이미지가 상당 부분은 왜곡되었다고 말한다. 데이비드 셍크(『우리 안의 천재성』)와 앤더스 엑릭손(K. Anders Ericsson) 등(『The Cambridge Handbook of Expretise and Expert Performance』)의 책에서 모차르트가 어릴 적에 작곡한 작품을 상세히 분석한 내용이 나온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모차르트의 실력이 나이에 비해 높은 수준인 건 맞지만 솜씨 있는 성인에 비할 바는 아니라는 것이다. 당시에는 모차르트 같은 어린 연주자가 드물었던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은 훨씬 많은 아이가 당시의 어린 모차르트와 같은 실력이나 오히려 더 높은 수준의 악기 연주를 한다는 것이다.

데이비드 셍크는 ‘11세부터 16세까지 작곡한 초기 일곱 개의 피아노 콘체르토 작품들은 독창성이 거의 없고, 심지어 모차르트가 썼다고 하기도 민망한 수준이다’.고 말한다. 모차르트는 악보에 옮기기 전 머리에서 곡 전체를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모차르트가 단숨에 작곡했다는 소문과 달리 그의 초고에는 고친 흔적이 많다. 게다가 어릴 적 그의 작품 멜로디의 80% 정도가 당대의 다른 작곡가를 모방한 것이다. 그러나 이들도 모차르트가 본격적으로 활동하던 시절의 작품들은 천재의 반열에 오를 만큼 뛰어나다는 사실도 인정한다.

셍크와 엑릭손 등도 모차르트에게 천재성이 있었던 것은 동의한다. 모차르트는 자신의 천재성을 꽃피우기 위해 엄청나게 노력했다. 아버지 레오폴트 모차르트의 혹독한 조기교육에 따라 오랫동안 자신의 실력을 연마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모차르트의 천재성 여부가 아니라 그가 기울인 음악을 위한 노력과 열정이다. 영화와 희곡에서 살리에리는 모차르트를 질투한 나머지 살해하는 것으로 나온다.

그러나 당시 상황을 보면,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를 살해했다는 어떤 증거도 없고 그럴 이유도 없었다. 당시 살리에리는 사르트르보다 훨씬 명성이 높았고 경제적 상황도 좋았다. 살리에리는 오스트리아의 궁정 악장이자 전속 작곡가로 부유한 형편이었는데, 모차르트는 뛰어난 작품성에도 불구하고 괴팍한 성격으로 안정된 자리를 못 잡았다. 살리에리는 1788년부터 36년 동안 궁정 악장으로 일하면서 다수의 오페라를 작곡하는 등 인기가 높았다. 그런 살리에리가 굳이 모차르트를 질투하고 독살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영화 아마데우스가 없었다면 우리는 살리에리가 누군지 몰랐을 것이다. 클래식 전문가가 아닌 다음에야 당시 궁정 악장인 살리에리를 기억해 낼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영화에서 워낙 비극적인 인물로 묘사된 탓에 사람들의 뇌리에 박혔다. 지금까지 알려진 그의 유명세는 그를 그렇게 묘사한 희곡과 영화 덕분이다. 살리에리를 사실 그대로 묘사했다면, 사람들에게 기억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의 이미지가 왜곡되는 바람에 세인의 관심을 받게 된 것이다. 살리에리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런 상황이 얼마나 역설적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