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4월 6일(수)
많은 사람이 오늘보다 내일이 나아지리라는 희망을 안고 하루하루 견디며 살아간다. 사는 것은 언제 올지 모를 행운을 기다리는 일인지 모른다. 우리가 간절히 희망하는 일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아무리 기다려도 감감무소식이라 사람의 애를 태운다. 오죽하면 희망만큼 잔인한 고문이 없다는 말이 있을까. 이런 사정에 비하면 딸아이는 복이 많다. 사표 내는 날짜를 며칠 미루는 바람에 자신이 원하는 일이 일어 난 것이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아이는 2018년 12월 31일자로 미국계 게임회사인 B사를 퇴사했을 것이다. 워낙 세계적으로 알려진 회사라 유명세는 두말 할 것이 없다. 그 회사에서 아이는 PR 업무를 담당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PR 계획을 미국 본사에서 결정하기에 한국에서는 주도적으로 추진할 일이 없었다. 아이는 자기주도적 일에 어울리는 성격이라 업무 적응에 힘들어했다. 오죽하면 이름만 대면 알만한 회사를 그만 두려 했을까? 그만큼 본인은 견디기 힘들었다는 뜻이다. 그래서 며칠 간의 가족회의 끝에 아이의 뜻을 존중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퇴사하고 배낭여행을 하면서 몸과 마음을 추스르는 계획을 세웠다.
오늘 아니면 내일하고 사표 제출할 낼 날짜를 세었다. 그러던 중 회사에서 2019년 1월 초 구조조정(안)을 발표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구조조정을 통해 새로운 시스템으로 개편되고, 아이에게 맞는 업무가 배정된다면 좋은 일이다. 그렇다면 굳이 사퇴할 이유가 없는 셈이다. 뭔가 좋은 일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고 회사의 최종 구조조정 계획을 기다렸다.
이미 퇴사 계획을 세운 터라 서울에서 사촌과 함께 기거하던 집을 재계약하지 않았다. 며칠만 인천에서 다니면서 상황을 지켜보기로 한 것이다. 인천에서 강남 한복판까지 출퇴근하는 일이 그리 만만치 않았다. 그렇게 기다리다 보니 사표 내기로 한 날로부터 한 달이 후딱 흘렀다. 시간은 이미 2월 중순으로 넘어가는 중이었다. 그 사이에 발표된 회사의 구종조정 내용이 아이의 생각과 다른 것이 확인되었다. 미련을 둘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고 2월 28일자로 명예퇴직하는 것으로 결심을 굳혔다.
바로 그 순간 예기치 않은 일이 일어났다. 원하는 일이 이루어지기 전에는 인내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이 맞는 것일까? 기다림에 지치고 인내심이 바닥들 드러낸 그 순간 행운이 찾아온 것이다.
“아빠! 어젯밤에 신기한 꿈을 꿨어.”
“그래? 어떤 꿈인지 말해 줄 수 있니?”
“응, 잠을 자는데 꿈에 호랑이 세 마리가 내 품으로 다가오는 거야. 신기하지 않아?”
“그래? 정말 신기하다. 호랑이 꿈이면 예사롭지 않은데, 그럼 우리 복권 사자!!”
“그럴까?”
“대신 호랑이 한 마리 꿈은 내가 사자~~”
“좋아!!”
2월도 하순으로 접어드는어느날, 지하철역으로 아이를 바래다 주러 가는 길에 나눈 대화이다. 사실 꿈 이야기가 신기하긴 하지만 그게 실제로 어떤 좋은 일을 예견하리라는 믿음은 썩 가지 않았다. 그저 복권이나 한 장 살 핑곗거리를 만들자는 것이 내 속내였다. 그날 아이와 나는 바빠서 복권을 사지 않았다. 애초부터 그리 꿈 이야기를 깊게 생각하지 않은 탓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게 얼마나 다행한 일인 줄은 나중에 알았다. 물론 일이 잘 풀리니까 그렇게 해석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일이 있은 다음날 국내 최대 IT 플랫폼 회사 K사의 K게임즈와 딸아이의 면접이 주선되었다. 퇴근 후 부랴부랴 이력서를 다듬어 제출하였다. 그리고 다음날 바로 K게임즈로 가서 면접을 봤다. 이틀 사이에 일이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었다. 면접 본 이후 곧바로 면접을 무척 잘 봤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K게임즈에서 아이를 보고 크게 기뻐한다는 더할 나위 없는 반가운 이야기가 함께 들려왔다.
아 이렇게 일이 풀리는 경우가 있을까? 우리 가족은 어안이 벙벙하고 놀랄 따름이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꿈속 호랑이 중 한 마리는 B사에서 퇴직하고 K게임즈로 이직하는 것을 말하는 것인가? 호랑이 꿈을 꾸고 곧바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다. 그것도 자진 퇴사가 아니라 명예퇴직을 하고 원하는 업무를 할 수 있는 새 회사로 옮긴 것이다.
아이는 K게임즈가 도입을 추진 중인 뉴질랜드 게임사와의 업무 협약을 진행했다. 아이는 입사 후 곧바로 미국과 뉴질랜드로 출장을 갔다. 약 3개월간에 걸친 게임 도입 업무를 순조롭게 마무리했다. 다행히 이렇게 도입한 게임 프로그램이 대박을 터트린 것이다. 딸 아이가 옮긴 회사의 새 멤버와 함께 추진한 첫 번째 프로젝트가 대성공을 거둔 것이다. 무엇보다 좋은 일은 아이가 맡은 업무가 아이의 적성에 맞다는 것이다.
그로부터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에 아이는 더 발전하고 성장했다. 업무가 적성에 맞아 열심히 노력한 결과임에는 분명하다. 그 후로도 아이의 일이 잘 풀리는 것을 보면서 호랑이의 꿈이 이것을 암시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더구나 호랑이해인 올해 아이는 더 발전하고 있고, 꿈 이야기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건 다음에 기회가 되면 이야기할 것이다.
일이 잘 풀리니까 꿈을 그렇게 해석하는 것일 수도 있다. 어쩌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사후확증편향’에 빠진 것인지도 모른다. 호랑이 꿈을 꾸고 다음날부터 며칠 사이에 일어난 일이라 신기하다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누구에게든 그런 행운이 찾아올 것이다. 그러니 참고 인내하고 노력하면서 기다려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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