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너무 높아 불안해!"
딸아이가 겁먹은 목소리라 말한다.
"그럼 차를 돌려 내려갈까?
굳이 올라가자면 못할 것도 없지만 아이를 달래려 물었다.
남양주에 있는 운길산을 초입에서 나눈 대화다. 처음에는 산 중턱에 있는 수종사 주차장에 차를 댈 생각이었다. 산길이 꽤 가파르다. 포장한 산길이라 용감하게 접어들었는데 생각보다 경사가 급하다. 조금 올라가다 딸아이가 차라리 산 입구에 주차하자고 한다. 그 말도 일리가 있다. 좁은 산길에서 차를 돌려 산 입구에 있는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마을 사람들이 차를 세울 요량으로 만든 빈 공터라 포장은 되어 있지 않다. 그래도 그곳에 차를 주차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하다.
산으로 올라가는 길에는 등산로와 차가 다니는 포장길이 있다. 우리는 처음부터 찻길로 들어서는 바람에 가파르게 포장된 길을 걸었다. 차가 오를 수 있도록 도로를 만들다보니 곡선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등산로 갔으면 훨씬 빠르게 산을 올랐을 것이다. 우리가 걷는 길은 자연스레 트래킹이 된 셈이다. 걷기에는 편해도 웬 차가 그리 많이 다니는지 차를 피하느라 정신이 없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오르는 차를 보면서 수종사가 예사 절이 아니구나 하고 짐작했다.

산으로 오르는 길가에 진달래가 예쁘게 피었다.비탈진 언덕에 선 진달래가 핑크빛 꽃망울을 활짝 터트렸다. 구불구불한 포장 도로를 한참이나 걸었다. 산길 모퉁이마다 차가 서있다. 아마 가파른 길을 운전하기 겁난 사람이 차를 세우고 걷기로 했을 것이다. 등산할 생각이라면 수종사 주차장에 차를 세우면 정상 바로 아래라 산을 오른 맛이 나지 않는다. 마을 입구에 차를 주차하길 잘 했다.
4월 중순이 시작되는 첫 날인데 날이 더워지기 시작한다. 9시부터 시작한 산행이라 아직은 그리 덥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한낮에는 섭씨 18도까지 오른다 하니 산에 오르면 더울 것이다. 운길산 정상과 수종사가 갈리는 이정표까지 오르니 한 시간 정도 시간이 흘렀다. 중간에서 차를 돌려 내려갔다 온 터라 시간이 더 걸렸을 것이다. 정상적으로 등산로를 택해 오르면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아 수종사에 도착하리라 짐작한다.
수종사를 들렀다가 다시 운길산 정상으로 길을 잡았다. 여기서부터는 길이 장난이 아니다. 70도가 넘는 가파른 산길이다. 정상 직전까지 계속 올라야 한다. 수종사 갈림길에서 정상까지 약 800m 남짓한데 30분 정도 시간이 걸린다. 산은 늘 그렇다. 정상을 앞두고 가파르지 않는 곳이 없다. 마지막 인내를 시험한다. 있는 힘껏 다리를 뻗는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힘든 고비를 넘겨서야 꼭대기에 오른다.

운길산 정상에서는 한강과 두물머리 그리고 맞은 편의 예봉산과 검단산이 보인다. 이 일대의 산은 한강을 끼고 있어 어느 곳 하나 풍광이 빠지는 산이 없다. 저마다의 관점에서 한강과 두물머리의 풍경을 빚어낸다. 하늘의 바느질 솜씨는 꿰맨 자국이 없다는 천의무봉(天衣無縫)이라는 말이 실감난다. 이 얼마나 매끈하고 유려한 솜씨인가?

운길산 아래쪽 마을에는 벚꽃과 복사꽃이 만개했으나 4월 10일의 산은 아직 꽃이 만개하지 않았다. 군데군데 진달래는 꽃망울을 터트렸지만 산 중턱부터는 이제 한참 움이 트고 있다. 한 주나 두 주가 지나면 산 높은 곳에서도 꽃들의 화려한 옷맴씨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형형색색 빛깔 고운 꽃들의 향연이 기대된다.
오르는 길이 워낙 경사가 급해 내려오는 길이 조심스럽니다. 준비해 간 지팡이를 하나씩 나눠 갖는다. 적당한 높이로 조정한 뒤 지팡이를 짚어면서 내려오니 한결 수월하다. 자칫하면 미끄러워지기 시운 길이라 조슴스레 발을 뗀다. 수종사 갈림길까지 내려오는 길이 여간 까다롭지 않다. 여기까지만 오면 다름부터는 포장길이라 거저 먹기다.
그렇게 허위허위 내려오니 12시가 조금 덜 된 시간이다. 4월의 첫 산행을 이렇게 끝났다.
'느림의 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글은 요리다. (0) | 2022.04.12 |
---|---|
향기 나는 글 (0) | 2022.04.12 |
두물머리의 풍경화 (0) | 2022.04.11 |
초원을 잃어버린 라이언 킹과 남자에게 가혹한 21세기 (0) | 2022.04.08 |
신이시여, 욕망을 주셨으면 재능도 주셨어야죠!! (0) | 2022.04.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