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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의 미학

향기 나는 글

by 전갈 2022. 4. 12.

2022년 4월 12일(화)
글에도 다양한 맛과 향이 있다. 어떤 글에는 상큼한 과일 맛이 난다. 가을 햇살에 잘 익은 그윽한 사과향이 퍼지는 글을 만날 때면 기분도 달콤해진다. 꼭 사과 맛이 아니래도 홍시 맛도 좋고 키위 맛도 좋고 포도 맛도 좋다. 온갖 종류의 농익은 과일 맛이 난다. 좋은 시를 읽을 때, 소설 속 아름다운 문장을 만날 때의 향기 좋은 과일의 뒤끝만큼이나 오래간다.

봄 미나리 맛 나는 상쾌한 글은 어떨까? 대개 경쾌하고 소담한 수필을 읽을 때 그런 기분을 느낀다. 텃밭에서 키운 청정한 무를 쑥 뽑아 옷에 썩썩 문질러 한 잎 깨문다. 그때 입안 가득히 퍼지는 자연의 향을 품은 수필도 좋다.

텃밭에서 고운 햇살 온몸으로 받으며 잘 자란 파나 고추의 매콤한 맛이 잃어버린 입맛을 돌아오게 한다. 그렇듯 톡 쏘듯 예상치 못한 결말을 이야기하는 글은 읽는 이의 마음에 신선함을 새삼 느끼게 한다. 작가가 몇 날을 잠 못 이루며 쓴 반전 넘치는 글을 읽을 때면 아마 코끝이 얼얼한 청량고추 맛이 날 것이다.

갓 구워낸 빵과 같이 부드럽고 고소한 맛을 내는 글도 있다. 버터와 잼을 발라 치즈와 함께 먹으면 멀리 프랑스의 어느 카페 거리가 눈앞에 아른거린다. 혀끝에 감기는 그 맛에 입맛을 다시다 보면 어느새 배가 그득하니 만족감이 밀려온다. 짧은 이야기이든, 긴 세월을 담은 이야기이든, 소설을 읽을 때면 그런 느낌이 든다. 신선한 통밀로 만든 빵을 먹노라면 손이 멈출 줄 모르듯 재미있는 소설을 읽다보면 밤을 꼬박 새운다.

 

 

식탁 위의 프리지아와 안개꽃

 

곰곰이 생각해 보니 어떤 이의 글에서는 봄꽃 향기가 난다. 남쪽 지방에서 불어오는 봄바람의 향기를 전해주는 그런 꽃향기 말이다. 시인의 상큼한 언어와 소설가의 유려한 문장을 읽노라면, 마치 개나리, 목련, 벚꽃, 라일락이 지천으로 핀 봄날의 꽃길을 걷는 기분이 된다. 때깔 고운 언어로 잘 빛은 시에서는 노란 꽃망울의 프리지어 (freesia)와 안개꽃 한 다발의 향기가 난다. 시나 소설에서 만나는 언어의 발랄함은 온몸에 생기를 넣어주고 화사함을 전해준다.

외투를 벗어던지고 화사하게 옷단장하게 해주는 봄꽃이 반가운 계절이다. 아름다운 글 속에는 봄꽃 가지에 망울이 터지고 새순이 움트는 생명의 소리가 들린다. 그런 글을 만날 때면 봄날의 고소함이 입 끝에 감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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