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4월 18일(월)
부벽루에서 통곡한 시인
고려의 대시인 김황원(金黃元, 1045년 ~ 1117년)은 대동강변의 부벽루 정자에서 밤새 통곡했다. 해동 제일의 문장가라 칭송 받던 그는 시에 관한한 따를 사람이 없는 천하의 문장가였다. 그런 그가 대동강변의 아름다운 경관을 읊을 시상이 떠오르지 않아 밤새 통곡했다.
어느 날 그는 부벽루에 올라 절경에 넋을 잃었다. 이곳을 다녀간 많은 시인들이 써놓은 시를 모두 불태웠다. 그의 마음에 드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는 종이를 펼치고는 일필휘지(一筆揮之)로 시를 쓰기 시작했다.
"長城一面溶溶水, 大野東頭點點山(장성일면용용수 대야동두점점산)"
긴 성곽의 한 쪽에는 강물이 넘치고, 너른 들 동쪽 끝으로 점점이 산이로구나.
시작은 좋았다. 문제는 거기서 그의 붓이 멈추고는 한발도 더 나가지 못했다. 나머지 두 줄을 채워야 부벽루와 강변의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있는데 그게 되지 않는 것이다. 그는 감동을 되살리려 부벽루 난간에서 강변의 경치를 바라보았다가 붓을 잡았다. 그러나 여전히 시상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게 부벽루 난간 앞으로 나아가 바라보기를 몇 시간째 반복했다. 안타깝게도 새하얀 여백 앞에서 붓을 잡은 그의 손은 떨기만 했다. 해는 지고 아름답던 풍경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더 이상 시상이 떠오르지 않자 김황원은 부벽루 기둥을 잡고 한참이나 통곡했다.
주금산에서 할 말을 잃었다.
날이 너무 덥거나 춥지 않은 봄과 가을의 주말이면 딸아이와 경기도 일대의 산을 찾는다. 지난주는 올해 첫 산행이라 가벼운 코스로 운길산과 수종사를 다녀왔다. 어제는 남양주시와 가평 그리고 포천에 걸쳐있는 주금산(鑄錦山, 813m)을 올랐다. 얼마나 풍광이 하려하면 비단산이라고도 불렸을까? 그만큼 산과 계곡이 아름답다.
자동차로 남양주 시내를 통과해서 한참을 더 달렸다. 남양주의 상동리와 수동리 경계에 있는 불기고개 마루에서 차를 세웠다. 이곳은 등산객과 전통 차를 파는 고객을 위한 간이 주차장이다. 기껏해야 대여섯 대 안팎의 차를 세울 수 있는 비포장도로다. 낙석을 방지하기 위해 만든 철망 방벽 사이에 틈을 내어 만든 입구다. 한 사람이 겨우 지날 수 있는 곳이라 지리에 밝지 않으면 등산로 입구를 지나치기 십상이다. 딸아이가 다행히 사전에 조사를 잘해온 덕에 산 입구를 찾았다.
경기도 일대의 산을 몇 군데 다녀봤는데 그 중에서 가장 사람이 한산했다. 우리가 올랐던 불기고객 등산로는 더욱 사람이 다니지 않는 길이다. 산길에 낙엽이 켜켜이 쌓여 웬만한 양탄자보다 훨씬 두껍다. 사람 발길이 닿지 않아 고랑에는 발목이 빠질 정도로 낙엽의 천지다. 정상 직전에 몇 군데 등산로가 합쳐지기 전까지 사람이라고는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바스락 낙엽 밟는 소리만 깊은 산골에 울린다.
산을 오르는 길은 어디나 가파르다. 불기고객 입구의 등산로는 초입부터 수직의 경사를 자랑한다. 산중턱에 오를 때까지 곧장 올라야 하기에 숨이 막힌다. 그렇다고 계속 오르기만 하지 않는 것이 사이라 진달래꽃이 군락을 이루는 능선을 따라 걸었다. 이제 겨우 움트는 나무들이 즐비한 것으로 봐서 햇빛이 잘 들지 않는 경사면의 등산로다.
경치 좋은 곳에서 사진을 찍느라 몇 차례나 멈췄다. 산 정상을 500m미터 못 미치는 곳에 비경이 자리하고 있다. 높다란 바위에 걸터앉아 점점산(點點山)을 바라본다. 산은 산으로 이어지고 들은 들로 이어진다. 아스라이 멀리 남양주시가 보이고 지붕 낮은 집들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주금산의 절경을 보고도 어찌 표현할 바가 없다.
천하의 문장가인 김황원은 절경을 표현할 수 없는 안타까움에 통곡했다. 하물며 재주 없는 보통 사람이야 어찌 그것을 서러워할 수 있을까? 그런 호사도 누릴 수 있는 사람이 따로 있을 것이다. 그저 절경을 뒤로 한 채 허위허위 발길을 재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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