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5월 6일(금)
파리는 비가 올 때 제일 예쁘다.
“이 도시가 비를 맞으면 까무러치게 예쁜 거 그려져? 20년대의 이곳, 20년대의 파리를 상상해봐. 비가 오고 화가며 작가며...”
“왜 모든 도시에는 비가 와야 해? 비에 젖으면 뭐가 좋아?”
영화 ‘미드 나잇 인 파리'(Midnight in Paris)에서 낭만의 도시 파리를 사랑하는 길(오언 윌슨)과 욕망의 도시 로스엔젤레스를 사랑하는 이네즈(레이첼 맥아담스)의 대화 내용이다. 2011년 우디 알렌이 감독한 이 영화는시작 후 약 3분30초 동안 아무런 말도 없다. 카메라는 개선문, 샹제리제 거리, 몽마르트 언덕에서 내려다 본 파리, 루브르, 노천카페, 모퉁이의 예쁜 꽃집 등을 보여준다. 비에 젖은 파리의 아름다운 거리 풍경, 밤의 에펠탑 등등 파리의 아름다운 구석을 빼놓지 않는다.
영화의 화면으로 파리가 얼마나 아름다운 도시인지, 도시 천체가 하나의 거대한 예술품이라는 것을 백 마디 말보다 더 실감나게 말한다. 게다가 오프닝의 OST로 1952년 발표된 시드니 베셋(Sidney Bechet)의 'Si Tu Vois Ma Mere'이 이방인의 향수를 자극하는 파리의 낭만적인 분위기에 너무 잘 어울린다. 렘벨(Stephane Wrembel)의 집시 제즈풍의 경쾌하면서도 아련한 고독을 자극하는 'Bistro Fada'도 빼놓을 수 없다. 영화 내내 흐르는 음악 가운데 어느 하나도 놓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장면과 어우러진다.
허리우드에서 성공한 영화 시나리오 작가 길은 소설 쓰는 일에 전념하려 한다. 허리우드의 고용된 일꾼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소설 쓰기를 원한다. 그런 그를 약혼녀 이네즈는 불안한 눈으로 쳐다본다. 사업가인 이네즈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프랑스 기업과 합병을 마무리짓기 위해 파리로 출장을 떠난다. 길이 이들과 함께 파리에 오면서 일은 벌어진다. 이네즈의 부모는 어딘가 모르게 덜떨어진 몽상가인 길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다. 화려한 욕망의 도시 로스엔젤레스에서는 꼭꼭 봉해졌던 길과 이네즈의 갈등이 아름다운 낭만의 도시 파리에서 터져 나온다.
이네즈 부모님과 파리의 최고급 레스토랑의 식사 자리에서 길은 요령 없는 이야기로 예비 장인과 가벼운 언쟁을 벌인다. 낭만적이고 문학적인 그의 이야기가 도시적이며 물욕적인 이들에게 먹힐 리 없다. 갑자기 분위기가 싸늘해지는 순간, 이네즈의 대학 친구 캐롤과 그녀의 애인인 폴(마이클 신)을 우연히 레스토랑에서 만난다. 이들의 우연한 출현으로 어색한 분위기는 그럭저럭 흘러간다. 격한 반가움을 표현한 끝에 길 커플과 폴 커플 네 사람은 함께 파리를 여행하기로 한다.
박식하고 모르는 게 없는 현학적인 남자 폴이 파리 이곳저곳을 자세하게 소개한다. 낭만적이고 세상 물정 모르는 길에 비해 세련되고 도회풍의 폴은 이네즈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사실 폴은 박식한 체하지만, 미술의 전문가가 아니라는 것을 눈치챈다. 길은 잘난 척하는 폴을 못 마땅해하고 그런 길을 이네즈는 비난한다. 그렇게 해서 봉인해둔 두 사람의 갈등이 밖으로 들어난다. 서서히 틀어지기 시작한 두 사람 사이에 폴과 캐롤이 끼어들면서 길은 따로 놀기 시작한다.
1920년대 낭만의 파리로 간다.
아네즈의 아버지가 초대한 와인 시음회에서 와인을 즐긴다. 약간의 취기가 오르자 길을 제외한 세 사람은 춤추러 가려 한다. 길은 춤보다 파리 거리를 혼자 걷고 싶어 한다. 이렇게 해서 길은 혼자 밤늦은 파리를 걷기 시작한다. 다리가 아파 잠시 계단에서 쉬고 있는데 밤 12시를 알리는 종소리가 들린다. 그때 클래식한 자동차 한 대가 길의 앞에 서더니 그 안의 신사들이 길에게 타라고 손짓한다. 그들이 하도 간곡하게 권유하기에 길은 마지못하게 차에 탄다. 그때부터 동화같은 일이 벌어진다.
길은 그들과 함께 처음 도착한 무도회장에서 오래전에 죽은 세계적인 음악가와 소설가를 만난다. 처음에는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유명 작곡가 콜 포터(1891~1964)를 만나고, 뒤어어 <위대한 게츠비>의 작가 스콧 피츠제랄드(1896~1940)와 그의 아내 젤다를 만난다. 길은 2010년대의 사람이니 이들이 죽은 지도 한참이나 시간이 흘렀기에 처음에는 동명이인이 등장하는 코믹한 상황으로 여겼다.
그러다가 다음 장소에서 어네스트 헤밍웨이(1899~1961)을 만나 넋을 잃고 만다. 자신이 평소 존경하고 사랑하는 작가를 직접 눈으로 보는 게 믿기지 않는다. 그때서야 길은 자신이 시간을 거꾸로 되돌려 그토록 갈망하던 1920년대의 파리에 왔다는 것을 깨닫고는 흥분을 멈추지 못한다. 길은 헤밍웨이에게 자신이 쓰고 있는 소설을 이야기하고 읽어 봐줄 수 있느냐고 묻는다. 헤밍웨이는 같은 소설가의 경쟁의식 때문인지 거절한다. 대신 당시 파리에 거주하는 예술가들의 후원자인 미국 여류 작가 거트루드 스타인(1874~1946)에게 부탁해주겠노라고 약속한다.
길은 뛸 듯이 기뻐하고 내일 밤에 원고를 가져오겠다면 레스토랑을 나선다. 레스토랑을 나온 길은 헤밍웨이와 만날 장소를 약속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급히 뒤를 돌아 레스토랑으로 갔다. 그러나 장면은 이미 2010년대로 되돌아왔고, 헤밍웨이와 예술가들이 담소를 나누던 레스토랑 자리에는 동전 빨래방이 덩그러니 놓여 있다. 1920년대의 낭만이 2010년의 현실로 바뀐 쓸쓸함을 보여준다.
아침에 길은 이네즈에게 새벽에 자신에게 일어났던 동화같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기쁨에 들떠 1920년 파리를 이야기하는 길에게 이네즈는 정신 차리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외출 준비나 서둘러라고 채근한다. 마지못해 이네즈와 예비 장모를 따라나서 길은 그녀들의 가구 쇼핑에 지쳐간다. 쇼핑을 마치고 나오는데 비가 온다. 비를 맞고 걷자는 길의 제안을 두 사람은 단번에 거절하고 택시를 타고 호텔로 돌아온다. 역시 낮 시간의 길은 영 어울리지 못하는 신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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