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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채의 미학

비를 맞으면 까무러치게 아름다운 도시 파리 2(미드나잇 인 파리)

by 전갈 2022. 5. 7.

헤밍웨이의 사랑학
파리에 어둠이 내리자 길은 이네즈를 데리고 어제 그 장소로 간다. 마지못해 따라나선 그녀는 기다리다 지쳐 계단에 앉는다. 한참이나 시간이 지나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급기야 그녀는 지쳤다면서 짜증을 내고 택시를 타고 호텔로 돌아간다.

길도 당황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는 왜 차가 오지 않는지 혼란스럽다. 이윽고 밤 12시를 알리는 종소리가 들리고 클래식 차가 도착한다. 차에는 헤밍웨이가 타고 있다. 그는 길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있느냐고 묻고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진정한 사랑은 죽음마저 잊게 만든다네. 두려운 건 사랑하지 않거나 제대로 사랑하지 않아서야. 용감하고 진실한 사람이 죽음과 맞설 수 있는 건 열정적인 사랑 때문이라네. 죽음을 마음속에서 몰아내기 때문이지. 물론 두려움은 언젠가 돌아오지. 그럼 또 뜨거운 사랑을 해야 하고.”

길은 헤밍웨이의 사랑학 강의를 들으며 거트루드 스타인의 집에 도착한다. 그곳에는 스타인이 파블로 피카소(1881~1973)의 새로운 그림이 그의 연인 아드리아나(마리옹 코티야르)를 제대로 담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스타인은 보편성은 있지만 객관성은 없고, 사랑스런 그녀를 소민적인 쾌락의 대상으로 바꿨다고 비판한다. 피카소는 아드리아나를 정확히 묘사했다 반박하지만, 헤밍웨이도 피카소가 왜 객관성을 잃었는지 알겠다면서 논쟁에 가세했다.

영화 속의 작품 <아드리아느>


영화 속 <아드리아느>의 초상화는 피카소의 작품인 <공과 노는 여인들>(1928)을 패러디한 것이다. 영화의 스토리를 위해 특별히 제작한 그림이다. 그림의 모델로 나오는 아드리아는 모딜리아니, 마티스와 사겼다. 그리고 영화에서는 피카소의 연인으로 나온다. 심지어 헤밍웨이까지 그녀를 사모할 만큼 그녀는 1920년대 예술가들의 뮤즈로 묘사된다. 실존 인물은 아니지만 시간 여행자인 길과 사랑에 빠진다.

&lt; 공과 노는 여인들 &gt;(1928) - 파블로 피카소


그림 이야기를 마친 스타인은 길에게 작품이 뭐냐고 물어면서 길의 원고를 받아든다. 그러면서 도입부를 읽기 시작한다.


“한 세대에게는 세속적이고 상스럽기까지 한 것들이 단지 시간이 흐르면서 마법같은 흥미로운 존재로 변했다." 스타인이 모두 들을 수 있게 큰 소리로 읽었다.

“너무 좋은데요. 벌써 빠졌어요”하고 피카소의 연인인 아드리아나가 황홀한 표정으로 감탄한다.

"정말 도입부가 좋은가요?"하고 길이 아드리아나에게 묻는다.
"과거는 나한테 늘 큰 마력이죠!"하고 그녀가 답한다.
"저도요! 과거는 나한테도 큰 마력이죠. 내가 늘 너무 늦게 태어났다고 생각하죠"하고 길이 말했다.
"그래요. 나는 '아름다운 시대'가 늘 최고였다고 생각해요"고 그녀가 말한다.

그녀가 말한 아름다운 시대는 1920년대가 아니라 1871년~1914의 유럽의 전성기인 벨에포크(Belle Epoque)다. 길은 자신과 이야기가 잘 통하는 그녀에게 빠진다. 자신의 작품에 호감을 보이는 그녀의 말에 길은 기분이 좋아 어쩔 줄 모른다. 그는 미국인으로 파리에 잠시 들렀다고 말한다.

“여기 남으세요. 난 이미 당신의 책과 사랑에 빠졌거든요.”라고 아드리아나가 말한다. 사랑스런 그녀의 말을 들은 길은 심장이 터질 듯하다. 낮의 연인인 이네즈와 달리 밤의 연인 아드리아나는 길을 이해하고 길의 글을 사랑해준다.


화려한 밤과 초라한 낮
화려한 밤은 끝나고 이제 초라한 낮의 시간이다. 길은 여전히 일행에 속하지 못하고 걷돈다. 이네즈와 예비 장모가 물건을 보러 가게로 들어선다. 밖에 혼자 남은 길은 밤에 만난 콜 포터의 노래가 들리는 곳으로 간다. 오래된 물건들을 파는 벼룩시장의 레코드 가게다.

“콜 포터 좋아하세요?”하고 레코드 가게의 여자 점원이 말을 건넨다.
“네 정말 좋아하는 가수죠. 빅 펜이죠”하고 길이 대답한다.

레코드 가게 점원의 이름은 가브리엘이다. 길과 대화가 통하고 좋은 음악도 같다. 둘은 짧지만 대화하는 동안 눈에서 생기가 돌았다. 한밤중의 아드리아나처럼 낮에는 가브리엘과 말이 통했다. 물론 이때까지만 해도 길은 그녀의 이름을 모르고 그저 스쳐 지나는 인연이다.

쇼핑을 마친 이네즈는 길과 함께 폴과 캐롤을 만나러 미술관을 간다. 그곳에서 폴은 여전히 잘난 척하며 모네의 그림을 설명한다. 그러자 길이 폴의 잘 못 알고 있는 점을 말하려 하자 이네즈가 가로막는다. "지금 폴 얘기 듣고 있잖아"하고 이네즈가 짜증낸다. 머쓱해진 길은 풀이 죽은 채 이들의 뒤를 따라간다.

영화 속의 작품 &lt;아드리아느&gt;


피카소의 그림 앞에 선 폴이 "최상의 피카소 작품이군!"하면서 설명을 시작한다. 그러면서 이 그림의 모델인 당시 20대이자 피카소의 정부인 매들린의 초상화라는 말을 덧붙였다. 몇 시간 전 피카소와 스타인 그리고 헤밍웨이가 열띤 토론을 벌였던 문제의 그 그림이 아닌가? 폴은 이 그림이 아드리아나를 모델로 했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길이 끼어든다.

"폴, 이 작품의 다른 견해를 말하는 하는 게 좋겠어"라고 길이 말을 시작한다.
"길, 그냥 주목하고 뭐 좀 배워가!"라고 이네즈가 길을 말을 끊어려 했다.

아랑곳하지 않고 길은 그녀가 파리에 패션 공부를 하러 왔고, 모디리아니의 연인이 었다가 피카소의 연인이 되었노라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그림이 아드리아나의 미모 속의 미묘함을 제대로 포착하지 못한 실패한 추상화라는 말을 덧붙인다. 길은 이 그림이 피카소의 최고 작품이 아니라 실패한 작품이라며 폴과 전혀 다른 결론을 내린다.

"대마초라도 했니?"라고 이네즈가 말했다. 그녀는 폴과 상반된 견해를 제시하는 길에게 약에 취했냐고 막말을 뱉았다.

밤에는 1920년대 최고의 소설과와 예술가들과 함께하지만, 정직 현실의 낮에는 어디에도 길이 낄 자리가 없다. 그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어줄 사람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낮의 시간을 지루해 하고 1920년대로 돌아가는 한밤중을 기다린다. 길에게 황금시대는 현실이 아니라 지나버린 그 옛날 1920년대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