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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의 미학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2

by 전갈 2022. 5. 11.

영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말론 브란도

 

2022년 5월 11일(수)

빛깔 고운 욕망을 버릴 수 있다면

불교 최초의 경전 ‘숫타니파타’는 욕망을 이렇게 말한다.

”욕망은 실로 그 빛깔이 곱고 감미로우며 우리를 즐겁게 한다.

그러나 한편 여러 가지 모양으로 우리 마음을 어지럽힌다.

욕망의 대상에는 이러한 근심 걱정이 있는 것을 알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그렇다고 해서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가 완전히 욕망을 끊고 살 수 없다. ‘무소유’의 삶을 살라 하지만, 아무것도 갖지 않고 오로지 맑은 심성만으로 세상을 사는 건 불가능하다. 모든 것이 분업해서 사는 자본주의 세계에서 돈이 없다면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물품조차 구할 방법이 없다. 사람은 뭔가를 먹어야 하고, 봐야 하고, 읽어야 하고, 마셔야 한다. 그것들을 내가 스스로 자급자족해서 구할 길이 있다면, 완전한 무소유의 삶도 가능하다.

욕망을 완전히 끊어버리고 살 수도 있다. 그러나 냉혹한 현실에서 돈을 벌고자 하는 마음을 없애면 어떻게 될까? 깊은 산에 들어가 자연이 되어 모든 것을 자급자족하면 될 것이다. 그러면 돈이 필요 없고 돈 벌 필요도 없다. 그러나 그게 가능할까? 블랑슈가 꿈꾸던 엘리시안 필드에서나 있을 법한 이야기다.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겐 너무 과하지 않는 욕망과 지나치지 않는 욕심은 필요하다. 물론 과하지 않고 지나치지 않은 경계를 구분하는 일은 무척이나 어렵다. 그래서 ‘무소유’의 철학을 배우고 버림의 미학을 늘 가슴에 새겨야 한다. 세속의 우리는 자신의 위치에서 온 힘을 다하고 노력하고 땀 흘려 일한 대가로 사는 건 결코 지나친 일은 아니다. 지금보다 나은 내일을 꿈꾸며 오늘 열심히 일하는 건 우리가 생활인으로 우리가 갖춰야 할 최소한의 덕목일 것이다.

 

버릴 수 없다면 줄여야...

세계적인 경제학자 사무엘슨(Paul A. Samuelson)은 "행복은 소비를 욕망으로 나누면 행복이다."라고 말했다. 사무엘슨의 말을 수식으로 바꾸면 다음과 같다.

행복=물질적 소비÷욕망

그는 무척 간단한 식으로 행복을 정의한다. 행복하려면 무한의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무한의 소비가 보장되면 된다. 사람들은 사무엘슨의 행복 방정식을 소비를 장려하는 천박한 자본주의적 사고라면서 비판했다. 물질적 소비가 행복을 보장한다면 정신보다 물질을 높이 평가하는 물신주의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방정식을 자세히 뜯어보면 물질적 소비를 늘리지 않고 욕망을 줄이면 행복이 커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무엘슨이 주장한 바는 어차피 소비를 무한대로 늘릴 수 없다면 욕망을 제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욕망을 줄이면 우리가 가진 것만으로도 얼마든지 행복하다는 것이 이 식이 주는 참된 의미다.

욕망을 완전히 없애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지만, 크기를 줄이는 것은 가능한 이야기다. 빛깔 좋은 욕망이 아름답기는 하나 무한정 커지게 놔둘 수는 없다. 내게 주어진 것을 사랑하고, 현재를 사랑하면서 욕망을 다독인다면 행복이 곁에 다가온다. 굳이 누구나 '천국행 욕망 열차'에 동승할 필요가 없다.

누구나 한두 개 비장의 카드를

사람이 각자 좋아하는 것을 한두 가지 갖는 건 물질적 욕망을 통제하는 데 좋은 방법이다. 그림 그리기, 독서하기, 여행하기, 등산하기 등 셀 수 없는 많은 취미 생활이 있다. 이 가운데서 본인에게 적합한 것을 골라 시간 날 때 몰입한다면 과해지기 쉬운 욕망을 생산적 열정으로 바꿀 수 있다.

내 경험는그림 그리기와 독서가 그러하다. 제아무리 비싼 그림 도구나 아무리 책을 많이 산다 해도 명품 백 하나 값보다 싸다. 비싼 붓 수십 자리, 좋은 물감 수십 통, 좋은 팔레트 수십 개, 그 외 그림 그리는 데 필요한 최고급 도구를 장만한다 한들 그 비용이 얼마나 될까? 평소 읽고 싶은 책들을 한번에 수십 권 산들 그리 큰 돈이 들지 않는다. 그것은 욕망이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열정이 갖고자 하는 것들이다. 그걸로 좋은 그림을 그리고 새로운 지식을 익힌다면 행복의 크기가 훌쩍 커질 것이다.

물론 유명 화가의 작품은 수십억 혹은 수백억 심지어 수천억 하는 일도 있다. 그것에는 혼을 다한 화가의 열정과 뛰어난 예술혼이 담긴 아름다운 값어치다. 이들의 작품은 한갓 부유층 여인들이 자기 과시를 위해 쉽게 쓰고 버리는 한낱 유행품이 아니다. 거기에는 그만큼 충분히 보상받아야 할 까닭과 이유가 있다. 명품을 좋아하지 않은 사람들도 좋은 그림을 좋아한다. 아니 세상 사람이면 누구나 훌륭한 그림을 보고 감탄하는 이유는 그것이 주는 감동 때문이다.

욕망을 완전히 없애기는 힘들다. 사람으로 가져야 할 기본적인 욕망은 갖되, 그것이 지나치지 않으면 된다. 부풀어 오르는 욕심을 열정으로 바꾸는 취미 하나씩은 가져야 할 것이다. 내게 있어서 그림을 그리거나 독서하고 글 쓰는 일은 그중에서도 특히 빼어난 취미라 아니 할 수 없다. 에르메스 백의 화려함보다 물감이 주는 색감이 더 좋고 아름다운 글의 색감이 좋다. 채색하며 만들어가는 나만의 세상은 그 어떤 명품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 그런 마음으로 나의 행복 방정식을 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