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은 나의 힘
‘승률이 14%’면 말 그대로 참패다. 가까이 사는 대기업에 다니는 후배와 3년째 스크린 골프 게임의 승률이다. 가끔 필도도 나가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아 주로 주말 한두 게임 스크린으로 만족한다. ‘어점김’(어차피 점심은 김)이라는 별명을 내가 스스로 붙일 만큼 승률이 좋지 않다. 아주 가끔 유난히 몸이 부드러운 날 몇 번 이긴 것을 제외하면 매번 진다. 최근 승률이 오르기는커녕 더 낮아진다.
“형님은 매번 지면서도 무얼 무슨 근거로 이긴다고 그리 큰소리칩니까?”하고 후배가 묻는다.
“왠지 다음에는 꼭 이길 것 같은 기분이 들어”라고 나는 천연덕스레 대답한다.
나도 곰곰이 생각해 봤다. 무엇 때문에 그런 생각이 들까? 우연히 골프 신이 강림한 날 몇 번 이긴 짜릿함이 뇌리에 각인된 것 같다. 문제는 그분이 자주 오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분을 숭배하는 내 마음이 부른 ‘긍정의 배신’일 것이다. 나의 처참한 승률에는 ‘긍정의 효과’와 ‘긍정의 배신’이 함께 들어 있다.
마틴 셸리그만(Martin Seligman)의 『긍정 심리학』은 긍정적인 심리가 개인을 행복하게 해주는 좋은 효과를 잘 설명한다. 긍정적 정서인 자신감, 희망, 신뢰 등은 불행이나 시련이 닥쳤을 때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 많은 사람이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불행하다 생각한다. 실제로 불행해서 그렇게 느끼는 것이 아니라 행복해지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그는 행복은 거창하고 큰 것이 아니라 일, 사랑, 자녀양육, 여가 활동 등 생활 속 어디든지 널려 있다고 말한다. 자신의 장점과 미덕을 알고 더 크게 개발하면 그것들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나는 주말 후배와의 게임에 져도 유쾌한 만남을 즐긴다.
낙관적이고 긍정적인 사람은 자신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들은 어려움을 만나도 쉽게 낙담하지 않고 자신이 잘 대처하면 능히 극복할 수 있는 일시적인 상황으로 본다. 그들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집중하고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찾아본다. 이런 노력은 결국 성과를 보이고 문제를 해결한다. 낙관적인 사람을 자신의 장점을 믿고 늘 행복한 마음을 갖고 살아간다는 것이 긍정 심리학의 주장이다.
긍정의 배신
극단적인 긍정주의에 빠지는 것은 그리 좋지 않다는 주장도 있다. 바버라 에런 라이크(Barbara Ehrenreich)는 자신의 책 『긍정의 배신』에서 긍정이 자주 사람을 배신한다고 말한다. 지나친 낙관주의, 추상적인 긍정심리는 오히려 현재 당면하고 있는 잘못과 모순에서 눈을 돌려버리게 한다면서 지나친 긍정주의를 경계한다. 더욱이 극단적인 긍정적인 생각은 사람을 더 문제를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그녀의 주장이다. 내 실력을 똑바로 보지 않는 지나친 긍정이 후배와의 경기에서 연패를 불러온 것이다.
그녀가 긍정적인 마음이 행복감을 느끼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다만 지나친 긍정은 현실의 문제점을 외면함으로써 실제로 개선하는 방안을 차단하는 위험을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뼈아픈 실천을 동반하지 않는 극단적 긍정은 끝내 사람에게 더 큰 상처를 준다. 결과적으로 긍정이 사람을 배신하는 결과가 초래된다는 것이 바버라 에런 라이크가 말하는 요점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된다.‘는 말도 매우 현실적이다. 불가능은 엄연히 존재하고 ’세상일이 뜻대로 되는 건 아니다.‘는 말도 상식이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이 말에 매몰되어 매사를 부정적으로 볼 일은 아니다. 제대로 방향을 잡지 못한 채 노력만 한다고 모든 일이 뜻대로 풀리기를 기대하지 말하는 의미다. 처음부터 제대로 된 방향을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면 일을 이룰 확률은 높아진다.
어쩌면 나는 과잉 긍정의 배신 속에서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긍정이 제일이라고 말하는 그 순간만큼은 마음의 위안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다. 마치 아편처럼 달콤하다. 매번 지면서도 다음에는 이길 거라는 근거 없는 낙관이 나를 즐겁게 만든다. 사실 온몸을 긍정으로 무장해도 경기의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긍정적인 자주 나를 배신한다. 그렇지만 노력하지 않는 긍정의 배신이라 딱히 불만스럽지는 않다.
이성으로 비관하고 의지로 낙관하라.
그렇다고 긍정적인 마음을 버려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긍정적인 마음과 낙관주의가 주는 심리적 위안과 노력을 위한 동기부여를 외면할 일은 아니다. 분명 온 힘을 다하도록 에너지를 한곳에 모으게 하고 동기를 부여하는 도파민을 샘솟게 하는 힘도 긍정심리에서 나온다.
다만 오직 긍정에만 의존하고 근거 없는 낙관에 빠져 문제의 해결 방향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내게 닥친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고 그것을 풀어가기 위해 뼈를 깎는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사실 후배와의 게임에서 이기려면 열심히 연습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는 당연한 패배다. 따지고 보면 노력 없는 긍정이라 딱히 배신이라 할 것도 없다. 그렇지만 그런 긍정이 있기에 즐거운 마음으로 다음 주 게임에도 흔쾌히 참여할 것이다.
“이성으로 비관하더라도, 의지로 낙관하라!!”는 이탈리아의 사상가 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의 말이 새삼 크게 다가온다. 모름지기 현실을 날카롭게 살펴보고 낙관적인 의지로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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