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5월 11일(수)

천국행 욕망 열차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타고, 중간에 묘지 행으로 가는 전차로 갈아타야 한다고 했어요. 그리고 거기서 다시 여섯 구역을 지난 다음 천국(Elysian Fields)이라는 역에서 내리랬어요."
블랑쉬 드부아(Blanche Dubois)가 고향을 떠나 뉴올리언스에 이제 막 도착하자 한 말이다. 그녀는 1947년 테네시 윌리엄스가 쓴 희곡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A Streetcar Named Desire)'의 여주인공이다. 이 작품은 제목 자체가 워낙 강렬해서 듣기만 해도 사람들의 뇌리에 강하게 꽂힌다.
당시 해수면보다 지대가 낮아 뉴올리언스는 늘 습기로 가득 찬 끈적한 도시였다. 그에 어울리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는 도시 한복판을 달린 전철의 실제 이름이다. 이 열차의 이름을 작품 제목으로 단 것이다. '욕망'이라는 단어가 주는 강력한 느낌 덕분인지 연극은 큰 인기를 끌었다.
이 작품은 1948년 퓰리처상을 받았고,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1947년 12월부터 1949년 12월까지 공연되었다. 1951년 영화로도 제작되어 세계적으로 크게 히트했다. 영화의 성공을 계기로 비비언 리(Vivien Leigh)는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주인공인 스칼렛 오하라 역을 맡았고, 말론 브란도(Marlon Brando)는 영화 ‘대부’에서 주인공인 돈 콜레오 역을 맡게 되었다. 물론 이들이 주연한 영화가 어느 정도 성공했느냐는 것은 새삼 말하지 않아도 안다. 이들은 제대로 된 '천국행 욕망 열차'에 탑승했고, 그 결과 세계적인 스타가 되고자 하는 ‘욕망’을 이뤘다.
몰락한 욕망의 비극
한때 돈을 펑펑 쓰며 부족한 것 모르고 잘나갔지만, 몰락한 지주의 딸 블랑쉬가 욕망 때문에 파멸하는 비극적인 이야기다. 그녀는 한때 미국 남부에서 매우 큰 농장을 소유한 지주 집안 출신이다. 그러다 시대가 변하면서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자신의 집이 파멸한다. 천성적으로 화려함을 좋아하고, 매우 섬세한 성격의 그녀는 파멸한 자신의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늘 과거의 환상에 사로잡혀 살며, 자신의 욕망을 절제하지 못해 방탕한 생활을 일삼았다. 결국 그녀는 자신을 둘러싼 냉혹한 현실을 극복하지 못하고 산산이 부서지고 만다.
블랑쉬는 퇴락한 뉴올리언스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화려한 차림새를 하고 이 도시에 왔다. 자신이 한때 잘났다는 사실을 은연중에 과시하면서 여동생 스텔라(Stella)의 좁고 허름한 아파트를 찾아온 것이다. 스텔라의 남편 스탠리(Stanley)는 다혈질에 술과 도박을 즐기는 거칠고 불량한 사람이다. 블랑쉬는 그런 그를 무시하였다. 스탠리는 쥐뿔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건방을 떨며 자신을 무시하는 블랑쉬를 고깝게 생각했다. 타락하고 불량한 스탠리와 현실을 모르고 잘난 체하는 블랑쉬 사이에는 팽팽한 적대감이 높아진다.
그 와중에 스탠리의 친구인 미치(Mitch)가 블랑쉬를 좋아하게 되고, 그녀와 결혼할 마음먹는다. 하지만 스탠리가 블랑쉬의 아름답지 않은 과거를 폭로해 버림으로써 미치는 블랑쉬를 버린다. 사실 그녀는 겉모습으론 정숙하고 도도한 척하지만, 도덕적으로 타락한 여자였다. 과거 그녀는 집안의 몰락, 남편의 자살에 따른 죄책감과 깊은 상처 때문에 불나방처럼 여러 남자의 품을 전전했다.
미치와 결혼해서 그에게 의지하고 정착하려던 그녀의 꿈은 산산조각이 났다. 꿈이 좌절될수록 현실에서 도피하려 한 블랑쉬는 마침내 현실과 환상을 구분하지 못하고 방황한다. 스텔라가 아이를 출산하러 병원에 간 사이에 최악의 사건이 일어났다. 난폭한 스탠리가 강제로 블랑쉬를 겁탈한다. 가뜩이나 환상에 빠져 살던 그녀는 이 사건으로 큰 충격을 받는다. 새로운 도시에서 정착하지 못하고 끝내는 정신병원으로 끌려가던 그녀가 마지막으로 말한다.
"당신이 누군지 모르겠지만, 저는 항상 낯선 사람들의 친절에 의지하며 살았어요.“
(Whoever you are, I have always depended on the kindness of strangers.)
그녀가 말한 엘리시안 필드는 고대 그리스인이 생각한 천국을 말한다. 엘리시안 필드(Elysian Fields) 또는 엘리시움(Elysium)이라 불리는 이곳은 완벽한 행복을 누리는 지하 세계의 아름다운 초원을 말한다. 블랑쉬는 자신의 처지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여전히 화려한 욕망의 세계를 꿈꾸며 천국을 찾았다. 비극은 거기서부터 싹이 자랐다. 이 이야기는 어쩌면 꿈과 욕망과 현실 사이를 헤매는 우리의 모습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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