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귀한 이상도 경제가 받쳐 주지 않으면
국가 전체가 100% 공평하고 공정하다면 달라지겠지만. 현실에서는 어떤 혁명 정부도 그런 국가를 만들지 못했다. 정치나 제도가 아무리 잘 정비된다 해도 경제적 발전이 받쳐 주지 않으면 도루묵이다. 모든 사람이 원하는 만큼 원하는 물건을 가질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것을 만들어 내는 자원은 근본적으로 제한적이다. 무한정의 공평함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누구는 갖고 누구는 갖지 못하다면, 바로 그 지점이 혁명의 빛이 바래지는 약한 연결고리가 된다.
자원은 부족하고, 경제 성장의 과실은 늘 충분하지 않다. 불공정한 배분의 문제는 자본주의 국가뿐만 아니라 어떤 혁명 정부도 피할 수 없다. 이상적인 혁명 국가라 해도 가장 근본적인 자원의 희소성과 욕망의 무한성 사이에 충돌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을 해결하려면 경제가 성장해야 하고, 이를 위해 경제적 효율성을 보장해야 한다. 어떤 체제가 더 나은 경제 성장을 보장할 것이냐는 각자의 생각이 다를 수 있다. 그렇지만, 경제적 효율성과 분배의 두 가지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체제가 아직은 없다.
대개 혁명 국가는 더불어 사는 사회에 높은 가치를 둔다. 효율보다는 공평을 우선시하는 정책은 그들의 몫이라 탓할 바는 아니다. 그렇지만 기대만큼의 과실을 얻을 수 없을 때 이를 어떻게 분배할 것이냐의 문제는 남는다. 그마저도 제대로 나누지 않고 권력자들에게 많이 가진다면 그들의 이상은 헛된 구호에 불과하다. 혁명의 영웅이 부패한 권력자로 바뀌는 순간이 된다. 많은 혁명 정부가 또 독립을 쟁취한 정부가 봉착하는 쓰라린 경험이다.
혁명의 문제이자 그것을 수행하는 인간의 문제다. 어차피 무한정한 욕망을 충족할 만한 자원이 없는 이상, 완전한 공정과 정의를 실현하기는 힘들다. 그렇다고 경제가 발전한다 해도, 극단적인 빈부의 격차가 용인되고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사람 사이의 삶의 질이 극단적으로 차이가 나는 그런 사회가 결코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많은 혁명 국가는 경제가 발전하지도 못하고, 작은 과실조차 권력자들이 독차지하는 더 심각한 문제가 생긴다.
아무리 훌륭한 제도나 시스템이라 해도 그것을 운영하는 것은 사람이다. 사람은 권력화하고 부패하고 현실의 삶에 발목 잡힐 수 있다. 가슴 뛰던 혁명의 구호는 퇴색하고 이상의 빛은 바래고 스멀스멀 욕심이 피어난다. 아무리 좋은 시스템이라 해도 마지막 지점에 가면 사람을 만나게 된다. 사람이 좋아야 한다. 그런데 좋은 사람만 있는 세상은 없다는 것이 아픈 현실이다.
1980년대를 이 땅에서 보낸 많은 사람의 가슴엔 혁명의 이상이 살아 펄펄 끓었다. 다 나은 사회와 더불어 행복한 사회를 만들고자 거리를 메운 그 많은 혁명가의 꿈이 이루어졌나? 그들의 순수한 열망을 담보로 권력을 잡은 이들의 야망을 실현한 도구가 된 걸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들 중 일부는 이 모를 수많은 사람의 순결한 열망을 디딤돌로 출세의 길에 들어섰다. 스스로 욕망에 손을 담그고 오욕의 화신이 된 사람도 많을 것이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
두 개는 서로가 양립할 수 없다. 이를 달리 말하면 양립할 수 없는 두 개의 개념이 병립하는 헤겔의 모순 개념이다. 헤겔은 서로 대립하는 두 개가 존재한다면, 다음 단계에 서로 좋은 점을 취해 발전한다고 주장했다. 헤겔의 그 유명한 변증법 논리가 여기서 나온 것이다. 사회나 조직 속에 서로 대립하는 상황이 공존한다면 아직 그것들은 이상적인 상황이 아니다. 서로의 장점을 취한 후, 더 나은 사회나 조직으로 발전한다는 것이 헤겔의 말이다.
영웅으로 죽는 것과 살아남아 악당이 되는 것은 서로가 양립할 수 없는 말이다. 이 두 개의 개념도 동시에 참일 수 없다. 하나가 되면 다른 하나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 같은 모순을 없애려면 두 개의 장점을 취해 영웅으로 오래 살아남으면 된다. 정치가 지양해야 할 점은 정치가가 초심을 잊지 않는 영웅으로 오래 살아남는 것이다. 모든 정치 지도자가 국민을 위하는 처음의 영웅적 마음을 오래 간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현실은 여전히 모순이 넘친다. 영웅이나 정치인은 ’개똥밭에 굴러도 살아 있는 게 좋다.‘는 소신을 지닌 것 같다. 아무리 욕을 먹어도 권력을 놓지 않으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그들은 아침마다 거울을 보며 나만 한 사람이 없다는 착각에 빠져 산다. 그리고 아주 가끔 국민을 위해 ’악어의 눈물‘이나 한 방울 떨어뜨린다. 그것도 선거철에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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