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은 어디서 오는가?
아무리 뛰어난 그림도 색이 없다면 느낌이 달라진다. 색칠이 잘된 그림을 보고 감동한다. 자연도 색이 있어 빛이 난다. 4월이면 골목길 어귀 담장 너머로 흐드러지게 핀 새하얀 목련 꽃잎에 눈을 빼앗긴다. 그때쯤이면 “4월이 가장 잔인한 달”이라 했던 T.S 엘리엇도 좋지만,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지 읽노라.’는 시인 박목월 생각이 간절하다. ‘학들은 하늘 높이 구름 위를 날고, 강물은 햇살 위에 금가루를 뿌리’는 김동리의 5월이 그립다. 이럴 때면 어김없이 장미의 붉디붉은 향에 취한다. 벚꽃이 지고, 목련마저 지고 나면 5월은 온통 빨강 나라가 된다.
하얀 목련과 빨간 장미, 아름답고 사람들로부터 많은 사랑받는 꽃이다. 백과 적의 대비가 강렬한 색채감을 뿜어낸다. 우리는 강렬한 백색과 적색의 꽃들을 직접 눈으로 본다는 착각에 빠진다. 사실은 태양 빛이 하얀 목련에 부딪히고, 다른 색의 빛은 목련에 흡수되고 백색 빛만 튕겨 나온다. 우리 눈은 그렇게 반사된 하얀 색을 인식할 뿐이다. 빨간 장미가 튕겨낸 빨간 색도 그렇게 우리 눈으로 들어온다. 우리는 직접 빛을 보는 것이 아니라, 빛의 빨강과 하양 파편을 인식할 따름이다. 빛이 들지 않는 깊은 어둠 속에 있다면, 그래서 반사되는 빛이 없다면 우리는 목련과 장미의 색깔을 알 수 없다. 또 먼지나 공기가 없는 우주 공간의 진공 상태에서는 빛도 보이지 않고 반사된 물체도 우리는 인식할 수 없다.
우리가 아름다운 장미와 목련을 눈으로 보는 것은 빛 때문이다. 빛이 없다면 깜깜한 밤이 있을 뿐이고 모든 사물은 짙은 어둠 속에서 까만색으로만 보인다. 아침에 되면 빛은 사방천지 가득하다. 넓은 창문을 통해 쏟아지는 빛의 화려한 잔치가 시작된다. 그들의 향연으로 우리는 사랑하는 이의 얼굴을 보고 잠자는 아이의 이마에 입맞춤한다.
색은 우리가 사물을 보는 데도 중요하지만, 미술에서 색은 더없이 중요하다. 인간 생활에서 색이 없다면 우리는 하루도 살아갈 수 없다. 빨갛게 타는 불이 색을 잃어버리고 투명하게 보인다면 모든 것을 태워도 우리는 알 수 없다. 자연에서 모든 것들은 고유의 색을 갖고 있기에 색이 없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구별할 수 없게 된다. 인간은 색을 통해 사물을 식별하고 색을 통해 세상을 바라본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색이 어디서 왔을까?
우리가 보는 사과의 붉은 색은 사과에 반사된 빛의 붉은 색을 본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사과에 반사된 빛의 붉은 색 파장을 우리 뇌의 시신경으로 전달한다. 빛이 사과와 부딪히면 사과는 자신과 같은 색을 튕겨내 우리 눈으로 보내고, 나머지 색깔의 빛을 모두 흡수한다. 이렇게 우리 눈으로 전달된 빛은 망막을 통과해서 두뇌 뒤편에 자리한 시신경으로 보낸다. 즉 후두엽이라 불리는 우리 뇌의 시신경들은 사과로부터 반사되어 온 빛의 색깔을 모아 사과 모양을 만들어 전두엽으로 보낸다.
이제 우리 뇌의 종합사령탑인 전두엽은 사과의 모양과 색깔을 보고 다른 뇌의 기억 저장소에 저장된 사과의 추억을 끄집어낸다. 그리면 우리는 붉고 탐스러운 과일을 사과로 인식하고 한번 힘차게 베어먹는다. 사과의 달콤함이 입안 가득히 퍼지고 어느새 우리는 행복감에 젖는다.
색은 빛에서 온다.
태양 빛은 생명의 근원인 에너지를 공급하면서 온 세상에 아름다운 색채를 뿌린다. 빛이 없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볼 수 없고 그저 깊은 암흑 속에서 살아야 한다. 빛이 없다면 애초부터 생명체가 존재할 수 없기에 본다는 것도 그저 사치 넘치는 바람이다. 세상 모든 물상에 반사된 빛이 우리 눈을 지나 후두엽의 시신경에 도달해야 비로소 우리는 볼 수 있다. 나머지 빛의 색깔을 물체가 흡수하지 않는다면 세상은 온통 하얀 빛의 향연이라 눈부셔서 무엇도 쳐다볼 수 없다. 나뭇잎이 초록인 까닭은 나뭇잎이 초록의 빛을 반사하고 나머지 빛의 색깔을 흡수한 덕분이다.
빛이 물체에 부딪혀 색깔이 모두 반사되면 세상은 온통 흰색이고 모든 빛의 색깔이 물체에 흡수되면 세상은 온통 검은색이 된다. 투명한 태양 빛은 하얀색 표면을 만나면 그중 어느 한 색깔의 빛을 반사하는 것이 아니라 원래 투명한 색 그대로 모두 반사한다. 따라서 태양빛이 하얀색 표면에 반사되면 우리는 아무것도 볼 수 없다. 왜냐하면, 하얀색 빛이 그대로 반사되어 우리 눈으로 들어와 구분할 수 없기 때문이다. 7가지 색의 투명한 태양 빛이 그 중 어느 하나만을 반사해야 색을 볼 수 있다. 붉은 상의와 파란 바지의 색을 볼 수 있는 것은 7가지 색을 가진 투명한 빛이 붉은색 상의와 파란색 바지에 부딪혀 그 색만 반사하기에 우리는 그 색을 본다. 따라서 태양 빛이 없다면 색도 없다.
빛은 아무것도 방해하지 않는 진공 상태에서는 빠르게 전파된다. 칠흑 같은 우주 공간에 떠 있는 상태에서, 한 줄기의 빛이 눈앞을 스쳐 지나도 빛을 볼 수 없다. 우리가 보는 태양 빛이나 구름 사이로 비치는 빛의 소나기는 빛이 지나는 경로에 있는 먼지나 미세한 물방울의 흔적이다. 이처럼 공기나 먼지 같은 미세 입자에 빛이 닿으면 빛은 사방팔방으로 흩어진다. 빛을 흩어지게 만드는 무언가가 없다면 빛이 눈앞을 스쳐 지나가도 아무도 알아차릴 수 없다.
하늘은 왜 파랄까? 사람들은 오랜 시간 여기에 궁금증을 가졌다. 하늘이 높아지는 가을이면 온통 파란 물감으로 하늘 수놓는다. 태양을 떠나 지구에 도착한 빛은 대기 중의 공기와 부딪힌다. 아무것도 없는 막막한 우주 공간을 한달음에 달려온 빛은 드디어 대기 중의 물체와 부딪친다. 대기는 투명하지만, 공기 분자는 태양 빛을 미세하게라도 산란시킨다. 크기가 작은 공기 중의 분자는 파장이 짧은 빛을 산란시킨다. 태양 빛 가운데 파장이 짧은 보라색과 파란색 빛이 공중에서 흩어진다.
이처럼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빛(가시광선)은 빨간색에서 보라색이 빛깔이 뒤섞여 있다. 지구의 대기에 도달하게 되면 가시광선보다 파장이 짧은 자외선은 오존층에서 대부분이 흡수된다. 나머지 빛은 대기를 통과해 대기 중의 산소나 질소 등의 입자를 만나면서 사방으로 흩어진다. 공기 중의 산소나 질소 분자와 부딪히면서 색을 뿌리는 산란이 일어난다.
우리는 어느 방향이든 올려다보는 파란색과 보라색 빛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 눈은 보라색보다 파란색 빛을 더 민감하게 보기에 하늘이 푸르게 보인다. 낮에는 짧은 파장의 파란색과 보라색의 가시광선이 많이 산란한다. 그런데 우리 눈은 보라색보다 파란색을 더 예민하게 포착하기에 하늘이 파랗게 보인다. 그리고 남은 빛의 색깔들도 이동하는 동안 공중에서 흩어진다. 남은 긴 파장의 붉은 색이 서쪽 산등성이에서 흩어진다. 말하자면, 긴 파장의 붉은색이 여행을 마치고 서산에 닿을 때쯤 지표면에서 흩어진다.
가시광선은 인간의 눈이 인식할 수 있는 빛이다. 무지개를 생각하면 바로 떠오르는 빨강, 주황, 노랑, 초록, 파랑, 남색, 보라 등의 색을 나타내는 파장이 가시광선이다. 빨강의 파장이 가장 길며 보라의 파장이 가장 짧다. 파장이 짧다는 말은 갖는 에너지가 크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보라색 파장의 에너지가 가장 크며 빨강의 파장이 에너지가 작다. 인간의 눈이 어떤 대상의 색을 인식할 수 있는 건 가시광선 중에서 해당 색의 파장만 반사돼 눈까지 도달하기 때문이다.
파란 하늘과 붉은 노을
인디고블루(Indigo Blue)의 하늘이 푸른 까닭은 빛이 부딪히는 산란의 고통이 하늘에 멍울을 새긴 까닭이다. 태양을 떠날 때 빛은 파랗지 않다. 광폭한 붉은빛이 여전히 기승을 부리는 늦여름의 하늘도 시리도록 푸른 빛을 보이진 않는다. 그러다 본격적으로 바람이 서늘해지면서 하늘은 인디고 파란빛으로 물들어간다. 그러다 본격적으로 가을 찬 바람이 불면 하늘은 코발트 빛으로 변한다. 더 투명하고 더 선명한 파란 빛을 뿜어낸다. 파랑들은 앞다투어 하늘 위에서 부서지고 산란한다. 처연한 그들의 빛깔이 서늘한 파란빛을 연출한다.
이때쯤이면 가을빛 아래 사과도 맹렬하게 향기를 뿜는다. 달콤한 꿀맛을 내기 위해 햇빛에 속을 태운다. 여름 태양에 익고 가을빛 아래 발효하면서 농염한 달콤함이 짙어 간다. 대추도 복숭아도 토마토도 그렇게 속을 태우고 삭히며 단맛을 농축한다. 그들의 몸속에는 그리도 질긴 계절의 시련이 고스란히 녹아 있기에 달기가 꿀과 같다.
은행의 노란 잎이 거리를 풍성하게 만들 때면 가을은 완연하다 못해 처연하다. 하늘은 눈이 아려 제대로 올려보지 못할 만큼 파란색으로 빛난다. 울트라마린(ultramarine)의 파란빛이 가을의 대미를 장식한다. 거리를 지나는 여인들은 옷깃을 여밀 채비를 차린다. 그녀들의 희고 고운 종아리 끝만 남기고 코트 깃을 내린다. 후드득 둑 한 줄기 빗방울에 금방이라도 울음 울 것 같은 단풍잎이 애처롭다.
한낮의 태양은 수직으로 땅 위로 내려오지만, 해뜰 무렵이나 해질녘 태양은 지평선 가까이 내게로 온다. 한낮의 태양보다 해가 뜨거나 질 무렵의 태양은 한낮의 태양보다 거리를 지난다. 이때 파장이 짧은 파란색은 대기권에 진입하면서 공기 중 분자와 입자에 부딪쳐 산란하여 곧 바로 허공에 흩어진다. 파장이 긴 빛은 대기 중의 공기 분자와 잘 부딪치지 않아 잘 흩어지지 않고 긴 거리를 지난다. 한낮의 하늘이 유난히 파란 까닭은 파장이 짧은 파란색의 빛이 공에서 일찍 산란하기 때문이다.
해질녘의 태양처럼 먼 거리를 달려와 지평선 가까이 내려앉을 때쯤이면 파란색이나 보라색은 이미 먼 하늘에서 흩어지고 붉은빛 노을만 남는다. 산란이 잘 일어나지 않는 파장이 긴 빨간색 빛)도 먼 거리를 지나면 결국 흩어지게 마련이다. 허공에서 흩어지지 않고 끝까지 살아남은 긴 파장의 붉은색이 서산을 붉게 물들인다. 남도의 먼 길을 걷는 나그네를 맞는 술 익는 마을의 ‘저녁놀’은 뉘엿뉘엿 저무는 태양 빛이다. ‘구름에 달 가듯’ 태양 빛은 긴 여행을 마치고 서산 노을로 진다. 저녁놀은 끝까지 살아남은 붉은 빛의 향연이다.
새해 아침이 되면 사람들은 동해의 일출을 보러 떠난다. 수십만 대의 차량이 동해 가는 고속도를 가득 메운다. 어느 아침인들 해가 뜨지 않는 날이 없는데 사람들은 새해 첫날 떠오르는 해를 보며 한해의 안녕을 빈다. 날씨가 좋아 태양이 유난히 붉은 색깔을 띠며 바다에서 솟구치면 사람들은 올해는 좋은 일이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는다. 아침의 빛도 긴 대기층을 통과하는 긴 파장의 붉은색이 도달한 것이다. 새해 아침 동해의 붉은 해도 공중에서 산란하지 않고 땅위에서 흩어지는 붉은 색의 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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