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밭의 딸기를 본 순간 저는 넋을 잃었어요. 봄이 끝나갈 무렵에 엄마가 아버지 상에만 한두 번 올리는 하얀 접시 위의 붉은 딸기. 그 예쁘고도 귀한 딸기가 무나 배추처럼 밭고랑에 줄을 맞춰 지천으로 열려 있다니 믿을 수 없을 정도였죠. 톱니처럼 끝이 뾰족뾰족한 딸기는 정말 예뻤습니다. 더러 흙이 묻은 것도 있었지만, 통통하고 붉은 딸기의 살을 처음 이로 콱 깨물었을 때의 그 한없이 부드럽고 탱탱한 과즙의 감촉, 달고도 시고도 어느 틈에 녹아 없어져 버리는 황홀한 맛, 꿀 같기도 한 진하디진한 향기... 저는 바구니 가득 담긴 딸기를 정신없이 먹기 시작했지요.”
- 은희경의 소설집 『상속』 중 <딸기 도둑>에서
우리 눈은 딸기를 보지 못한다. 우리가 흔히 눈이라 말하는 시각 기관은 망막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우리 눈의 망막에는 대략 1조 3천억 개의 원추세포와 간상세포가 있다. 이들은 매우 빠른 속도로 시각 정보를 처리한다. 망막에 비친 시각 정보가 망막 뒤에 있는 시신경 조직을 통하여 뇌의 뒷부분인 후두엽의 시각 신경이 모여 있는 시각피질로 전달된다. 사물에 반사되어 눈에 들어온 빛은 망막에 비치는 순간 전기 자극을 일으킨다. 망막 세포에 연결된 그물 모양의 신경 섬유 다발(시신경 세포 덩어리)은 전기 자극을 뇌의 뒷부분(후두엽)의 시각 피질(후두엽 피질 내에 있는 시신경 다발)로 전달한다.
시각피질에서는 망막의 시신경을 통해 전달된 정보를 입체화해서 두뇌의 종합 판단 부위인 전전두엽으로 전달한다. 전전두엽은 시각피질로부터 받은 정보와 뇌의 여러 곳에 분산되어 저장된 사물과 관련된 정보를 소환해서 최종적으로 이 물체에 대한 모양과 특징 등을 판정한다. 이처럼 전전두엽은 시각피질이 보내온 물체의 외형과 그것과 관련된 감정과 기억을 결합함으로써 비로소 우리는 물체를 인식, 즉 생각을 떠올리는 것이다.
눈앞에 빨갛게 잘 익은 딸기가 있다. 우리 뇌는 딸기를 보는 순간 그것이 딸기임을 안다. 우리의 뇌 속에는 ‘빨간색’, ‘삼각뿔 모양’, ‘올록볼록한 작은 홈이 있는 표면’ 같은 딸기의 특징이 저장되어 있다. 그래서 딸기를 보는 순간, 전전두엽은 시각피질이 보내온 딸기 모양과 딸기의 향기, 색깔, 맛 등의 특징을 무의식적이며 순간적으로 결합한다. 이렇게 우리가 순간적으로 딸기를 인식하는 능력은 경험을 통해 익힌 직관을 의미하고, 수십 혹은 수백만 개의 신경세포가 연합해서 딸기를 인식하는 작업을 수행한다.
그러나 사실 우리 눈은 딸기를 직접적으로 인식하는 것은 아니다. 눈은 망막과 시신경 세포를 통해 딸기 표면에 반사한 빛을 통과시키는 일만 한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딸기를 딸기로 인식하지 못하고, 다만 딸기 모양만 입체적으로 그려낼 뿐이다. 우리의 뇌는 처음부터 완전한 딸기를 보는 것이 아니라 마치 패턴디자이너가 작업하듯 선에서 선분으로, 그리고 형태를 잡았다가 완전한 딸기의 형태를 그려낸다. 그리고 그것이 딸기인지 아닌지, 혹은 그 맛이 어떤지, 달콤한지 쓴지 등을 인식하는 것은 우리의 눈과 시신경 피질이 아니라 전전두엽이다.
우리 눈의 망막에는 대략 1조 3천억 개의 원추세포와 간상세포가 있다. 이들은 매우 빠른 속도로 시각 정보를 처리한다. 한 번에 무려 1조 비트에 달하는 정보를 처리한다. 이 방대한 데이터는 시신경을 거쳐 외측슬상핵(무릅핵)을 거쳐 뇌 뒤쪽의 후두엽으로 보내지고 그곳에 있는 시각 피질이 이들을 세밀하게 분석한다. 시작피질에서 분석된 정보가 전두 피질로 전송되면, 전두엽은 이와 연관된 기억을 불러낸다. 그렇게 되면 이 물체에 대한 외형과 그와 관련된 감정이 결합하여 비로소 우리는 무언가를 본다는 인식이 싹튼다. 이처럼 우리가 무언가를 본다는 것은 초당 수백만 비트의 정보가 전송되면서, 그 정보를 해석하고 처리하기 위해 많은 뉴런이 동시에 활성화된다.
이처럼 우리 뇌는 딸기를 완성 형태로 통째로 인식하고 저장하지 않는다. 우리 뇌의 약 1,000억 개에 달하는 뉴런 어디에도 그것을 온전하게 통째로 보관하는 장소가 없다. 우리 뇌는 딸기의 모양과 특징을 쪼개서 각각의 패턴으로 기억한다. 이 패턴도 한 곳에 저장되지 않고 뇌의 여러 곳에서 분산되어 저장된다. 우리의 뇌 일부가 손상되면 그 부분의 패턴을 제외한 다른 장소에 저장된 나머지 패턴들은 남는다. 이것은 우리 두뇌의 일부가 손상되더라도 남은 패턴을 통해서 정보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우리 눈의 동공과 렌즈는 딸기 표면에서 반사한 빛의 파편들을 망막의 뒷부분에 있는 시신경으로 보내고, 망막의 시신경은 이 빛의 조각들은 전기 신호로 변환시킨다. 이렇게 변환된 전기 신호는 두뇌의 외측슬상핵을 통과하여 후두엽의 시각 피질로 전달된다. 후두엽의 시각피질에는 분화된 기능을 가진 V1(1차 시각피질), V2(2차 시각피질), V3(3차 시각피질), V4(4차 시각피질), V5(5차 시각피질)이 층을 이루고 있다. 이들 시각 피질은 각각의 영역에서 사물의 윤곽, 선, 면, 입체, 크기, 거리 색깔 등을 각각 인지하여 최종 사물의 형태를 완성한다. 이들 시각 피질은 사물의 전체 모습을 보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피질이 윤곡, 선, 면 등에서 각자에게 부여된 한 가지만을 식별한다. 이렇게 식별된 ‘작은 영상들’이 모여 하나가 됨으로써 놀랍도록 상세하고 아름다운 딸기 영상을 완성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상은 해마로 보내진다. 기억을 저장하는 해마는 완성된 딸기 형상을 여러 기억 저장소로 보낸다. 과거의 자료와 비교해서 어떤 물건인지 성격을 파악하고 종합한다. 맛을 기억하는 곳에서는 상큼한 딸기의 과즙을 떠올리고, 색깔을 저장하는 곳에서는 빨간색 딸기를 떠올린다. 이렇게 딸기 형상과 그와 관련된 과거 기억 정보를 모두 합해 전두엽으로 전달한다. 이제 전두엽은 이 종합정보를 바탕으로 그건 맛있는 딸기니 ‘얼른 먹어라’고 하는 운동 명령을 보낸다. 눈의 망막을 통해 딸기에 반사된 빛이 통과한 후 딸기를 먹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무척 짧다. 마치 딸기를 보는 순간 딸기에 손이 가지만 그 사이에 이런 정보 전달 메커니즘이 작동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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