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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채의 미학

비가 오면 도시는 꽃단장한다.

by 전갈 2022. 8. 1.

2022년 8월 1일(월)

우기가 시작된 걸까. 8월의 시작과 함께 이번 주 내내 비 예보가 있다. 근래 보기 드문 긴 우기가 시작됐다. 요 몇 년 사이 여름 장마는 짧아지고 마른 날씨가 여름 한 철을 달궜다. 하긴 기상청 예보가 번번이 엇나가니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래도 모처럼 비 오는 날의 풍경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비 오는 날은 햇빛 밝은 날과 다른 풍경을 본다. 도시는 온통 눈물에 젖고 차들이 지나는 자리엔 물방울이 튄다. 까만 우산들 사이로 드문드문 노랑과 빨강 우산이 춤추듯 걸어간다. 바람이라도 불라치면 빗방울이 흩날린다. 행여 옷이 젖을 새라 우산 든 손에 힘이 들어간다. 

 

빗방울이 화단에 부딪혀 흩어진다. 꽃잎들은 제 세상 만난 양 빗물로 단장한다. 나뭇잎은 내리는 비로 얼굴을 씻는다. 도시의 소음과 먼지로 덕지덕지 낀 때를 말끔히 씻어 낸다. 덕분에 해사해진 초록의 얼굴을 자랑삼아 내민다. 이런 날은 풀잎 자라는 소리도 크게 들린다. 우기는 한여름의 광폭한 더위를 식히고 한숨 돌릴 여유를 준다. 

 

비 오는 날엔 창을 열고 밖을 내다보지 않을 수 없다. 풀잎이 쑥쑥 커는 소리를 듣고, 초록 잎이 배시시 웃는 얼굴도 쳐다본다. 창밖으로 손 내밀어 빗방울을 맞아도 좋다. 다른 한 손에는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들어야 한다. 

 

비 오는 날은 커피 향도 물기에 젖어 묵직하다. 킬리만자로일까 아니면 볼리비아일까? 먼 이국의 깊은 산 속에서 자란 원두가 내 손에 들렸다. 여름 태양이 얼마나 뜨거우면 이리도 깊은 맛과 향을 낼까. 블랙커피의 깊은 맛을 혀끝에 적신다. 어느새 입 안 가득 비에 젖은 짙은 커피 향이 퍼진다. 

 

우기에는 젖은 빨래가 거실에 가득하다. 물 튀는 길을 걷는 번거로움도 만만치 않다. 그래도 우기엔 비다운 비가 왔으면 좋겠다. 선술집 낡은 지붕에서 들려오는 빗소리를 들으며 술을 마셔도 좋다. 파전을 안주 삼아 마시는 막걸리가 부족한 세로토닌을 보충해준다니 어찌 이를 마다할 수 있겠는가. 

 

영화감독 우디 앨런은 “미드 나잇 인 파리”에서 비가 내리면 까무러치게 아름다운 도시가 파리라고 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비에 젖은 파리가 유난히 아름다운 것은 맞는 말이다. 그렇다고 해도 비 내리는 풍경이 아름답지 않은 도시가 어디 있을까. 도시는 내리는 비에 꽃단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