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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채의 미학

어느 개인 날 아침 갑자기(Par Un Beau Matin D'ete)

by 전갈 2022. 6. 16.

2022년 6월 16일(목)

어느 개인 날 아침 갑자기(Par Un Beau Matin D'ete)

바다나 땅이 따듯해지면 물은 증발해서 수증기가 된다. 가벼워진 수증기는 하늘로 올라가고 높은 고도에서는 수증기 온도가 내려가서 서로 뭉친다. 이렇게 뭉쳐진 물 덩어리가 오르락내리락 상승과 하강을 반복한다. 그러다 차츰 무거워진 작은 물 알갱이가 땅으로 떨어지며 비를 뿌린다.

비 내리는 날이면 사람들은 종종걸음으로 길을 떠난다. 거리에는 형형색색의 우산이 물결을 이룬다. 연구실 앞 화단의 풀들은 제 세상을 만난 양 내리는 비를 맞으며 즐거워한다. 6월의 비는 모든 생명에 왕성한 자양분을 준다. 그래서 그런지 오늘은 풀들이 자라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린다. 초록은 더 짙어져 풀잎에 손을 대면 초록 물감이 배어들 것 같다.

비 오는 날 우리 머릿속의 세로토닌(serotonin)에도 변화가 생긴다. 세로토닌은 평온한 기분을 갖게 해준다. 세로토닌이 부족하면, 기분이 처지고 센티멘탈해 진다. 내리는 빗방울을 바라보며 우울한 상념에 빠지는 까닭은 비 오는 날에는 세로토닌이 부족해지기 때문이다.

비 오는 날 들리는 빗소리는 평소에 들리던 소리에서 멀어지게 한다. 주변과 단절돼 고립된 듯한 느낌을 준다. 들리는 건 오직 내리는 빗방울 소리뿐이다. 그런 날이면 사람들은 부쩍 외롭다거나 혼자라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비 오는 날 막걸리에 파전이 생각나는 것은 사람이 그리워서 일 것이다. 낮은 세로토니의 우울함과 빗소리의 고독감을 떨치기 위해서라면, 사람과 벗하며 나누는 술잔만한 것이 없다. 더구나 문밖으로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정다운 사람과 함께하는 술맛이야 어찌 빼어나지 않겠는가.

비 갠 날의 상쾌함

비 갠 날은 기분이 좋아진다. 세로토닌이 다시 정상으로 돌아온다. 화단의 나뭇가지에서 지저귀는 새소리가 크게 들린다. 멀리 지나는 자동차 소리도 들리고 옆방에서 문을 여는 소리도 들린다. 비의 고독에서 벗어나 일상으로 돌아온다.

비 갠 날 아침이면 50년도 더 된 프랑스 영화가 생각난다. '어느 개인 날 아침 갑자기'이라는 제목의 영화다. 당시에는 꽤 파격적인 주제였지만, 지금으로 봐서는 낡은 이야기다. 스토리보다 배경과 음악이 더 좋은 영화다.

프란시스와 모니크는 남부 프랑스의 해변 마을에서 중년 신사들을 유혹하여 돈을 뜯어먹고 산다. 그들은 크게 한몫 챙길 목적으로 미국인 백만장자의 딸을 납치한다. 프란시스는 부잣집 딸을 외딴 오두막에 감금한다. 그러다가 프란시스가 그녀를 사랑하게 되고, 그의 여동생 모니크가 둘 사이를 질투한다. 한몫 단단히 챙기려던 그들의 계획은 온데간데없고 끝내 애틋한 이별만 남는다.

주인공인 프란시스 역을 맡은 장 폴 벨몽도(Jean-Paul Belmondo)는당시 알랭 들롱(Alain Delon)이라는 세기적 미남 배우 때문에 이름이 가려졌지만, 프랑스의 국민 배우로 이름을 날렸다. 물론 세계적으로도 널리 이름이 알려진 배우였다. 재밌는 사실은 백만장자의 딸로 나오는 배우는 세계 최고의 희극배우였던 찰리 채플린의 딸이었다.

영화 자체는 호불호가 엇갈린다. 지금 본다면 촌발 펄펄 날리는 그런 영화일 것이다. 그러나 주제 음악만큼은 빠지지 않는다. 애절한 기타 선율과 휘파람 소리 그리고 이어지는 트럼펫 소리가 사랑하는 여인을 떠나보내야 하는 프란시스의 아픈 마음을 잘 대변한다. 비에 흠뻑 젖은 도시를 떠올리며 우수에 적은 음악을 듣는 것도 좋다.

비가 내린 다음 날이면 늘 이 음악이 생각난다. 아마도 영화 제목 때문일 것이다. ‘어느 개인 날 아침 갑자기’라는 제목이 비 그친 아침의 풍경이 그림처럼 떠오른다. 사실은 범죄 영화이지만 애틋한 이별을 담은 영화라 제목을 그렇게 부쳤을 것이다. 비 갠 날 아침이면 어김없이 이 노래가 듣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