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리 총명한 후배가 치매에 걸리다니..
"우리 애를 잃어버렸다네. 이 일을 어찌하면 좋은가?"
"어머님, 그게 무슨 말씀인가요?"
며칠 전 일이다. 친한 후배 어머님이 전화하셨다. 워낙 막역한 사이라 후배의 어머님에게 가끔 안부 전화 드리곤 했다. 그렇지만 어머님이 내게 전화하신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러니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전화번호가 뜨는 순간, 뭔가 안 좋은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전화기 너머로 후배 어머님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들린다. 후배와 함께 병원 다녀오는 길에 후배를 놓쳤다. 같이 나란히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오는 길에 깜빡 졸았는데 옆에 있던 아이가 없어졌다. 아무리 둘러보다 아이가 보이지 않았다. 급한 마음에 다음 정차하는 역에서 내린 후, 발을 동동 구르시다 내게 전화하신 것이다.
이야기는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 후배는 아직 쉰도 되지 않은 나이였다. 처음에는 아무런 느낌이 없이 사소하게 시작했다. 약간의 건망증으로 가끔 기억이 깜빡깜빡했다. 간혹 사람 이름이 기억나지 않은 일도 있었지만, 그거야 나이가 들면 누구나 겪는 현상이라 여겼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겠거니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도 낫기는커녕 하루 전에 들었던 이야기도 잊어버렸다.
그래도 무슨 일이야 있겠느냐 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좀 더 신경을 써서 챙기면 되겠지 생각했다. 그때는 그것이 망각의 늪으로 빠져드는 징조인 걸 몰랐다. 차츰 후배는 물건을 어디 두었는지도 기억하지 못했다. 심지어 방금 한 일도 기억하지 못하고, 뭔가 말을 하고 싶은데 기억 못 하는 일도 잦았다. 기억력이 급속히 떨어지고 심지어 판단력도 저하되는 일이 일어났다.
빠른 속도로 악화하는 젊은 치매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병원으로 갔다. 몸에 이상이 있는가 싶어 병원에 가서 검진받았다.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그리도 총명하고 똑똑한 후배가 치매에 걸릴 거라고 누가 짐작할 수 있겠는가. 그것도 40대 후반에 알츠하이머가 원인이 된 치매 초기 진단을 받았다. 후배와 후배 어머님은 하늘이 무너지는 충격을 받았다. 그때부터 후배의 삶은 뿌리째 흔들리고, 모든 것이 아주 달라졌다.
치매는 노년에만 찾아오는 줄 알았지, 이렇게 젊은 나이에도 치매가 오는 줄 누가 알았겠는가. 더구나 똑똑하고 총명하다고 소문난 그가 치매에 걸릴 줄 상상할 수 없었다. 놀랍게도 알츠하이머가 원인이 된 젊은 치매는 40~50대에 많이 발병한다. 이때 발병한 젊은 치매는 증상이 악화하는 속도가 무척 빠르다. 제대로 관리하지 않으면, 급속도로 상황이 나빠지는 것이 젊은 치매이다. 이런 소식을 들은 나는 무척 안타깝고 마음이 아팠다.
그동안 3개월마다 꼬박꼬박 병원을 어머님과 같이 잘 다녔다. 그러다가 급기야 이런 황망한 일이 일어난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집과 병원은 멀지 않아 지하철역이 그리 많지 않았다. 우리는 병원에서 돌아오는 길의 지하철부터 역 사무실을 한 군데씩 들렀다. 역무원의 도움을 받으며 CCTV를 살폈다. 딱한 사정을 들은 역무원들도 친절하게 도와주었다.
몇 시간쯤 지났을까, 후배 어머님의 전화가 울린다. 중간쯤 되는 곳에 있는 역 근처 파출소 지구대의 연락이다. 후배가 그곳에 있다는 것이다. 너무 반가운 소식에 한달음에 그곳으로 달려갔다. 지구대 의자에는 멀끔한 모습을 한 후배가 의자에 앉아 있었다. 후배 어머님은 걱정과 안도의 한숨을 쉬며 눈물을 훔치셨다.
경찰관들이 지역을 순찰하던 중에 길을 잃고 배회하는 후배를 만났다고 한다. 그를 데리고 지구대에 와서 자초지종을 물어도 대답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다행히 후배가 어머님 이름과 전화번호를 기억해 통화가 된 것이다. 우리는 "휴~~" 하고 안도의 숨을 내쉬며 반갑게 후배의 손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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