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를 어디 뒀더라?
"차를 어디 뒀더라?"
시작은 대수롭지 않았다. 어젯밤 차를 어디 주차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술을 마신 것도 아닌데 헷갈린다. 지하 주차장을 헤집어 겨우 찾았다. 가벼운 건망증이라 여겼다. 그러다가 가끔 '어제 키를 어디 주차했더라?'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시간이 지나면서 부쩍 이런 말이 잦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젊은 친구가 건망증이 너무 심한 게 아니냐는 핀잔을 듣는 정도였다.
나이가 들면 누구도 노화를 피할 수 없다. 몸도 늙고, 두뇌도 늙는다. 근육은 줄고, 다리의 힘이 약해진다. 그거야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일이라 어쩔 수 없다. 거기다가 기억력 감퇴까지 겹치면 설설 두려움이 밀려온다.
'혹시 이게 치매 증상? 에이, 무슨 그런 재수 없는 생각을!!'
그런 불길한 생각을 애써 마음에서 지운다. 뭐 별일이 있겠느냐는 심정으로 무심하게 지냈다. 후배가 딱 이랬다. 후배의 머릿속에는 소리 없는 배신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걸 알 리 없는 그는 그저 건망증이 심해진다고 여겼다. 끝내 현저히 떨어진 기억력과 인지력이 업무에 지장을 초래했다. 급기야 부서 직원들은 후배의 이상 증세를 눈치채고 말았다.
회사의 요청도 있었지만, 후배도 자기한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궁금했다. 이틀간의 휴가를 내고 대형병원으로 가서 검사받았다. 기억력과 인지력 저하가 우려스러워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했다. 그곳에서 인지력과 기억력 테스트를 받았다. 결과지를 받아 든 전문의 표정이 딱딱히 굳었다. 후배의 마음에는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불길함이 뇌리를 스쳤다. 알츠하이머 치매 초기라는 충격적인 판정을 받았다.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다.
"음.. 알츠하이머가 원인이 된 치매 초기입니다!!"
"네? 무슨 말씀인지?"
전문의는 후배의 마음이 다치지 않게 친절하지만 단호하게 설명했다. 치매는 완치할 수 없고, 단지 진행 속도만 늦출 수 있다. 주위 사람들의 지원과 도움이 없으면 환자의 상태는 급속히 나빠진다. 40~50대 발병하는 젊은 치매는 노인성 치매보다 악화하는 속도가 훨씬 빠르다. 약을 꼬박꼬박 챙겨 먹고 몸과 머리 쓰는 일을 게을리하지 말 것을 당부한다. 안타깝지만, 이 일이 없었던 옛날로는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후배와 그의 어머님이 받은 충격을 말로 할 수 없다. 하늘이 무너진다는 말은 이럴 때 해야 한다. 충격이 이만저만한 게 아니다. 치매가 악화하면, 기억이 사라지고 가족도 몰라보게 된다. 급기야는 자기가 누군지도 망각한 채, 혼자만의 세계에 갇힌다. 그동안 쌓은 삶도 인격도 무너진다. 심지어 화장실 가는 가장 기본적인 생활도 제대로 할 수 없게 하는 것이 치매의 잔혹함이다.
이런저런 걱정에 후배는 눈앞이 캄캄했다. 세상에서 버림받은 기분도 들었다. 기분이 심란하고 만사가 귀찮아졌다. 우울증도 몰려오고 마음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삶의 의욕도 사라지고 일할 기분도 나지 않았다. 회사 갈 일이 죽기보다 힘든 상황이 돼버렸다. 사람들 보기도 민망하고 해서, 끝내 회사를 그만뒀다.
그에게 왜 이런 일이?
너무 갑작스레 일어난 일이라 후배는 갈피를 잡을 수 없다. 처음 알츠하이머 치매 진단을 받고 3주 뒤 후배와 만났다. 그때는 정말 멀쩡했다. 행동하는 것이 예전과 다를 바 없었다. 아마 제대로 약을 챙겨 먹고, 관리를 잘하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같이 차도 마시고 이야기도 나누고 분위기가 훈훈했다. 회사를 관두서 그런지 기분이 약간 다운됐다는 느낌 말고는 특별히 달라진 게 없었다.
그런데 불과 3년 만에 이렇게 상황이 나빠졌다니 너무 놀랐다. 집으로 돌아와 후배 어머님으로부터 그간의 상황을 자세히 들었다. 최근 들어 후배의 상태가 매우 나빠졌다고 말씀하신다. 간단한 계산도 잘 못 하고 어려워한다는 것이다. 물건을 사고 거스름돈을 받지 않거나 카드를 두고 오는 일도 있었다. 그래도 병원만큼은 꼬박 스스로 가고, 처방전을 갖고 약국에 들러 약도 타왔다.
치매 환자가 발생하면 가족들의 놀라움은 이만저만한 일이 아니다. 환자 본인도 큰 일지만, 가족들이 받는 충격과 고통도 크다. 치매 환자는 인지 능력이 점차 낮아져 어린아이처럼 단순하게 행동하는 경우가 많다. 가족들은 번번이 예상하지 못하는 일에 부딪힌다. 그 과정에서 가족 간 갈등이 일어나고, 치매 환자 보호에 어려움을 겪는다. 후배의 상태가 심해지자, 후배 어머님의 수심도 깊어졌다.
어쩌다가 이제 갓 50줄에 접어든 그가 집을 제대로 오지 못하는 지경이 되었을까. 알츠하이머는 도대체 왜 생기는 걸까. 어떤 사람이 조기 치매에 걸리는 걸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의문이 떠오른다. 그런 일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도 있다. 최근 치매 환자가 증가하는 걸 보면 누구든 쉽게 피해 갈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면 갑자기 두려움이 몰려온다.
후배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술과 담배도 거의 하지 않고, 성실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그가 젊은 치매에 걸렸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치매의 원인과 증상을 알아보기로 마음먹었다. 워낙 전문적인 의학 용어가 많다 보니 비전공자가 이해하기 쉬운 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일상생활 속에서 미리 챙겨두면 좋을 것들을 정리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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