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치매로부터 자유로운 나라
'치매로부터 자유로운 나라를 만들겠다.’
‘치매국가책임제’
치매를 극복하려는 정부 의지를 담은 구호다. 말만 들어도 뿌듯하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된 듯한 느낌이 든다. 그동안 지역마다 치매 상담센터가 생기고, 여러 가지 관리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의료비 부담도 줄고, 장기 요양 서비스도 확대되었다. 모든 제도가 그렇듯이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앞으로도 더 나아질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치매 환자를 돌보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또 치매가 어떤 병인 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처음에는 건망증처럼 사람 이름이나 사물을 깜빡깜빡 잊다가 점차 심해지면 기억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인지기능이 크게 저하한다. 말도 어눌하고 시간과 공간 파악 능력도 점차 사라진다. 급기야는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없고, 가족도 몰라보는 상태가 된다.
나이가 들면 각종 질병에 노출된다. 면역체계가 약화하면서 성인병을 피할 수 없고, 각종 암에 걸릴 위험성이 높아진다. 어떤 병이든 걸리면 사람을 힘들게 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 가운데서 치매는 신체 능력은 멀쩡해도 정신을 망가뜨린다. 사물을 제대로 분별하지 못하는 어린 아기로 회귀한다. 중증 치매 환자는 세상과 단절되고 자신만의 정신세계에 갇혀 살아간다.
다 큰 어른이 아기처럼 행동하는 것을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어린아이의 행동은 귀엽다고 여기지만,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그런 행동을 한다면 주위 사람을 고통에 빠뜨린다. 비교적 젊은 나이에 발생하는 조기 치매 환자를 보는 것은 더 견디기 힘든 일이다. 그런 형편임에도 치매 환자를 돌보는 일은 여전히 가족의 몫으로 남는다. 치매 환자는 아무것도 모르고, 간병하는 가족은 고통 속에서 산다.
놀람, 부정, 분노 그리고 받아들임
후배 어머님도 처음에는 “얘가 요즘 좀 건망증이 심해졌나? 체력 보충을 해야겠다”라면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옛날만큼 차분하지 못하고 많이 덤벙대는 것으로만 여겼다. 그러다가 점차 증상이 심해지고 성격과 행동까지 이상해지는 걸 보니 걱정이 되긴 했다. 회사에서도 좋지 않은 소문이 돈다는 말을 듣고 어머님의 마음이 혼란스러웠다.
“우리 아이가 치매라고? “
각별한 사이의 지인이 어머님의 말씀을 듣고 혹시 치매가 아닌지 검사해 보라고 권유한다. 무슨 말 같잖은 소리를 하냐고 한사코 손사래를 쳤다. 후배의 어머님은 처음에는 후배가 치매에 걸렸을 거라고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얄밉기까지 했다.
“우리 애가 왜? 똑똑하고 착실한 아이가 그럴 리가 없어요!”
그러다가 병원에서 치매 진단받고는 놀라 쓰러질 뻔했다. 아무리 인정하려 해도 인정할 수 없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여겼다. 눈앞이 캄캄하고 마음이 찢어질 것 같다. 믿고 싶지 않아 현실을 강하게 부정했다. 아무한테도 말할 수 없는 고통이 밀려왔다.
시간이 지나면서 후배는 기억력이 떨어져 같은 말을 지겹게 반복한다. 심지어 금방 했던 이야기를 묻거나 어머님의 답을 의심하는 일도 부쩍 잦았다. 어머님이 정성껏 돌보는데도 후배가 불만을 드러낸다. 갑자기 욕을 하거나 불같이 화를 내는 일도 벌어진다. 어머님은 매우 놀라고 낙담했다.
날이 갈수록 후배의 치매 증상이 도드라진다. 옛날 같으면 있을 수도 없고, 또 이해할 수도 없는 행동을 한다. 어머님의 몸과 마음이 지쳐간다. 아이를 돌보는 자꾸 힘들어진다. 왜 우리 아이한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내가 무슨 큰 잘못을 했을까. 원망과 함께 모를 분노가 솟구친다. 신이라도 있으면 단단히 따져 묻고 싶은 심정이다.
후배의 증상은 나아지지 않고 반복되거나 조금씩 나빠진다. 원망과 분노의 감정이 수도 없이 오간다. 그러다가 어머님도 점차 후배의 행동에 익숙해지셨다. 어느 순간 체념하고 모든 것을 받아들이셨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치매에 대해 적극적으로 알아보기 시작했다. 치매 서비스 센터에 문의하고 관련 정보를 구했다. 지역 보호 센터를 방문해 도움을 요청했다.
여기까지 오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위대한 모성이 아니면 견딜 수 없는 상황도 많았다. 어려움을 모두 극복하고 후배 어머님은 스스로 아들을 끝까지 지키려고 굳게 결심했다. 차츰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면서 후배를 돌보는 일에 최선을 다하셨다. 후배가 이렇게 된 것이 다 당신 탓이라 여기신다. 세상의 어머니들은 하느님을 대신해 이 땅에 왔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한다.
가족이 건강하다는 것은 큰 축복이다. 사람들의 수명이 늘면서 치매 환자도 증가한다. 나이가 들면 신체는 노화하고 뇌세포도 점차 소멸한다. 최근에는 사회적 스트레스와 유해 환경 탓에 젊은 치매 환자도 증가하는 추세다. 먼 남의 나라 일로 여기기에는 너무 많은 사람이 치매에 걸리고 있다. 아직 우리는 치매로부터 자유로운 나라에 살고 있지 않다. 한 살이라도 젊을 때 각자가 알아서 두뇌를 잘 관리하는 것이 좋다.
'우리 안의 치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왜 후배는 늘 '배가 고프다'고 할까? (0) | 2023.06.16 |
---|---|
절반이 치매 환자인 백세 시대, 축복인가 저주인가? (0) | 2023.06.16 |
"차를 어디 뒀더라?" 증상은 이렇게 시작했다. (0) | 2023.06.16 |
후배의 젊은 치매, 처음에는 별일 아니었다. (0) | 2023.06.16 |
젊은 치매에 걸린 후배 (0) | 2023.06.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