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빡깜빡하다가 버럭 화를 낸다.
‘엄마, 내 돈 누가 훔쳤어?"
"배고파, 밥 줘!! 왜 밥 안 주고 혼자만 먹냐?"
치매의 사전적 의미는 알고 있었지만, 뜻밖에 우리 곁에 있음을 알고 놀랐다. 가까운 사람이 서서히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보는 건 견디기 쉽지 않다. 젊은 치매에 걸린 후배를 지켜보는 것은 너무 가슴 아프다. 치매는 한 번 걸리면 나을 수 없다는 사실은 안다. 생각보다 빠르게 나빠지는 그의 모습은 안타깝기 그지없다.
후배가 자꾸 깜빡깜빡하다. 뜬금없는 말을 하며 화를 버럭 낸다. 누가 돈을 가져가지 않았고, 밥은 조금 전에 먹었다. 어느 날부터인가 황당한 상황이 시작됐다. 달래고 설득하고 했지만, 한 번씩 억지를 부리면 막무가내다. 어머님이 야단을 치거나 달래기도 했다. 그렇지만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고 속만 상하는 날이 늘어간다. 일부러 사람을 힘들게 하려고 그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이제부터가 진짜 중요하다. 후배의 머릿속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부터 해야 한다. 그걸 알지 못하고 환자를 다그친다고 될 일이 아니다. 치매 환자는 전반적인 뇌 기능 저하로 인해 수치심을 느끼지 못한다. 어린아이처럼 본능에 따라 행동하고, 욕구만 충족하려고 한다. 그런 사람에게 고함을 지르거나 큰 소리로 야단하면 심리적으로 더 위축되고 상황이 더 나빠진다.
현재 알려진 치매의 원인은 50가지가 넘는다. 치매는 뇌신경 세포가 소멸해 나타나는 질병이다. 한 번 손상된 뇌신경 세포는 극히 일부분을 제외하고는 재생이 불가능하다. 신경세포는 소멸하면서 그곳의 신경망을 끊어버린다. 그렇게 되면 신경세포 사이에는 정보가 흐르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누가 무슨 말을 해도 알아듣지 못하고, 주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도 알아채지 못한다.
뇌가 쪼그라든다니...

"시간이 흐를수록 빈 구멍이 점점 더 커집니다."
"그게 무슨 뜻인지?"
"뇌에 구멍이 뚫리고 뇌가 쪼그라들면 인지 능력과 기억력이 떨어진다는 뜻입니다."
"아이고 큰일 났네. 이 일을 어쩌죠?"
담당 의사 선생님이 알츠하이머 치매의 진행 과정을 설명하셨다. 위의 사진 제일 왼쪽 정상인의 뇌는 밀도가 촘촘하고 빈 곳이 없다. 중간 정도 치매가 진행된 사람의 뇌는 듬성듬성 구멍이 커졌다. 마지막 제일 오른쪽의 중증 치매 환자의 뇌는 크기도 확연히 작아졌고, 신경세포가 사라진 빈 곳이 너무 많다. 이 정도 되면 인지 능력과 기억력이 상당히 떨어진 상태라 혼자서 생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우리의 대뇌 피질은 겉으로 봤을 때, 4개의 부위로 나뉜다. 영역의 위치에 따라 뇌의 앞부분인 전두엽, 옆부분인 측두엽, 윗부분인 두정엽, 뒷부분인 후두엽으로 분류한다. 어느 부위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게 없지만, 인지 능력과 관련해서는 전두엽의 기능 유지가 제일 중요하다. 우리도 건강을 자신하지 말고,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뇌를 잘 관리해야 한다. 이제부터라도 노력하지 않으면 뇌가 쪼그라들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까.
측두엽이 손상되면 말이 어눌하고 듣는 기능이 떨어진다. 때로는 길을 잃어버리고, 집을 찾아오지 못하는 것은 두정엽의 기능 상실 탓이다. 시각 기능을 담당하는 후두엽의 뇌신경 세포가 상실하면 물체와 색감을 잘 구분하지 못한다. 일상생활이 불편하고, 타인과 교감하기가 어려워진다. 그러다가 결국 뇌의 전두엽이 손상되고, 인지 능력과 판단력이 어린아이 수준으로 되돌아간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백치 상태가 된다.
치매 환자는 자주 '배가 고프다'라고 말한다. 이성과 판단을 관리하는 뇌의 전두엽, 특히 전전두엽의 손상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전두엽을 연결하는 신경회로망이 끊어지는 바람에 제대도 된 정보가 흐르지 않는다. 이 정도가 되면 성격도 변하고, 말이 횡설수설해진다. 대화 자체가 힘들어지는 끔찍한 일이 벌어진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그저 참고 들어주는 수밖에 없다. 치매 환자가 말하는 것을 마음에 담아 둘 일이 아니다. 가족들은 치매 환자의 두뇌 신경회로가 끊어졌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환자가 뭐라고 하더라도 화를 내거나 반박해서는 안 된다. 환자는 자기가 화를 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무슨 말을 했는지도 돌아서면 잊어버린다. 그러니 힘이 들겠지만, 다그치지 말고, 또 저러는구나 하고 들어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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