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8월 22일(일)
천국행 욕망 열차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타고, 중간에 묘지 행으로 가는 전차로 갈아타야 한다고 했어요. 그리고 거기서 다시 여섯 구역을 지난 다음 천국(Elysian Fields)이라는 역에서 내리랬어요."
1947년 테네시 윌리엄스가 쓴 희곡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A Streetcar Named Desire)'의 여주인공 블랑쉬 드부아(Blanche Dubois)가 뉴올리언스에 처음 도착했을 때 한 말이다. 당시 해수면보다 지대가 낮아 뉴올리언스는 늘 습기로 가득 찬 끈적한 도시였다. 그에 어울리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는 도시 한복판을 달린 전철의 실제 이름이다.
이 작품은 제목 자체가 워낙 강렬해서 듣기만 해도 사람들의 뇌리에 강하게 꽂힌다. 1948년 퓰리처상을 받았는데,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1947년 12월부터 1949년 12월까지 공연되었다. 이 작품은 1951년 영화로도 제작되어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이 영화의 성공을 계기로 비비언 리(Vivien Leigh)는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주인공인 스칼렛 오하라 역을 맡았고, 말론 브란도(Marlon Brando)는 영화 ‘대부’에서 주인공인 돈 콜레오 역을 맡게 되었다. 재밌게도 세계적인 스타가 되고자 하는 이들의 ‘욕망’을 충족시켜준 것이 바로 이 작품이다.
한때 돈을 펑펑 쓰며 부족한 것 모르고 잘나갔지만, 지금은 몰락한 지주의 딸 블랑쉬가 욕망으로 인해 파멸해가는 비극적인 이야기다. 그녀는 한때 미국 남부에서 어마하게 큰 농장을 소유한 지주 집안 출신이다. 천성적으로 화려함을 좋아하고, 성격적으로 매우 섬세한 그녀는 파멸한 자신의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늘 과거의 환상에 사로잡혀 살며, 자신의 욕망을 절제하지 못해 방탕한 생활을 일삼았다. 그녀는 자신을 둘러싼 냉혹한 현실을 극복하지 못하고 산산이 부서지고 만다.
블랑쉬는 퇴락한 뉴올리언스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차림새를 하고 이 도시에 왔다. 자신이 한때 잘났다는 사실을 은연중에 과시하면서 여동생 스텔라(Stella)의 좁고 허름한 아파트를 찾아온 것이다. 스텔라의 남편 스탠리(Stanley)는 다혈질에 술과 도박을 즐기는 거칠고 불량한 사람이다. 블랑쉬는 그런 그를 무시하였다. 스탠리는 쥐뿔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건방을 떨며 자신을 무시하는 블랑쉬를 고깝게 생각했다. 타락하고 불량한 스탠리와 현실을 모르고 잘난 체하는 블랑쉬 사이에는 팽팽한 적대감이 높아진다.
그 와중에 스탠리의 친구인 미치(Mitch)가 블랑쉬를 좋아하게 되고, 그녀와 결혼할 마음 먹는다. 하지만 스탠리가 블랑쉬의 아름답지 않은 과거를 폭로해 버림으로써 미치는 블랑쉬를 버린다. 사실 그녀는 겉모습으론 정숙하고 도도한 척하지만, 도덕적으로 타락한 여자였다. 과거 그녀는 집안의 몰락, 남편의 자살에 따른 죄책감과 깊은 상처로 인해 불나방처럼 여러 남자의 품을 전전했다.
미치와 결혼해서 그에게 의지하고 정착하려던 그녀의 꿈은 산산조각이 났다. 꿈이 좌절될수록 현실에서 도피하려 한 블랑쉬는 마침내 현실과 환상을 구분하지 못하고 방황한다. 스텔라가 아이를 출산하러 병원에 간 사이에 최악의 사건이 일어났다. 난폭한 스탠리가 강제로 블랑쉬를 겁탈한다. 가뜩이나 환상에 빠져 살던 그녀는 이 사건으로 큰 충격을 받는다. 새로운 도시에서 정착하지 못하고 끝내는 정신병원으로 끌려가던 그녀가 마지막으로 말한다.
"당신이 누군지 모르겠지만, 저는 항상 낯선 사람들의 친절에 의지하며 살았어요.“
(Whoever you are, I have always depended on the kindness of strangers.)
그녀가 말한 엘리시안 필드는 고대 그리스인이 생각한 천국을 말한다. 엘리시안 필드(Elysian Fields) 또는 엘리시움(Elysium)이라 불리는 이곳은 완벽한 행복을 누리는 지하 세계의 아름다운 초원을 말한다. 블랑쉬는 자신의 처지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여전히 화려한 욕망의 세계를 꿈꾸며 천국을 찾았다. 비극은 거기서부터 싹이 자랐다. 이 이야기는 어쩌면 꿈과 욕망과 현실 사이를 헤매는 우리의 모습일지 모른다.
빛깔 고운 욕망을 버릴 수 있다면
불교 최초의 경전 ‘숫타니파타’는 욕망을 이렇게 말한다.
”욕망은 실로 그 빛깔이 곱고 감미로우며 우리를 즐겁게 한다.
그러나 한편 여러 가지 모양으로 우리 마음을 어지럽힌다.
욕망의 대상에는 이러한 근심 걱정이 있는 것을 알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그렇다고 해서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가 완전히 욕망을 끊고 살 수 없다. ‘무소유’의 삶을 살라 하지만, 아무것도 갖지 않고 오로지 맑은 심성만으로 세상을 사는 건 불가능하다. 모든 것이 분업해서 사는 자본주의 세계에서 돈이 없다면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물품조차 구할 방법이 없다. 사람은 뭔가를 먹어야 하고, 봐야 하고, 읽어야 하고, 마셔야 한다. 그것들을 내가 스스로 자급자족해서 구할 길이 있다면, 완전한 무소유의 삶도 가능하다. 욕망을 완전히 끊어버리고 사는 일도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러나 냉혹한 현실에서 돈을 벌고자 하는 마음을 완전히 없애기란, 블랑슈가 꿈꾸던 엘리시안 필드에서나 있을 법한 이야기다.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겐 너무 과하지 않는 욕망과 지나치지 않는 욕심은 필요하다. 물론 과하지 않고 지나치지 않은 경계를 구분하는 일은 무척이나 어렵다. 그래서 ‘무소유’의 철학을 배우고 버림의 미학을 늘 가슴에 새겨야 한다. 세속의 우리는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 노력하고 땀 흘려 일한 대가로 사는 건 결코 지나친 일은 아니다. 지금보다 나은 내일을 꿈꾸며 오늘 열심히 일하는 건 우리가 생활인으로 우리가 갖춰야 할 최소한의 덕목일 것이다.
그림 그리는 일은 과해지기 쉬운 욕망을 열정으로 바꾸는 좋은 방법이다. 제아무리 비싼 그림 도구를 산다 해도 에르메스 버킨백 하나 값보다 턱없이 싸다. 바다악어 가죽으로 만든 에르메스 백 하나가 3억 원을 호가한다니 제어하지 못한 욕망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낸다. 거기에 비한다면, 비싼 붓 수십 자리, 좋은 물감 수십 통, 좋은 팔레트 수십 개, 그 외 그림 그리는 데 필요한 최고급 도구를 장만한다 한들 그 비용이 얼마나 될까? 그것은 욕망이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열정이 갖고자 하는 것들이다. 그걸로 좋은 그림을 그린다는 생각만으로도 행복해진다.
물론 유명 화가의 작품은 수십억 혹은 수백억 심지어 수천억 하는 일도 있다. 그것에는 혼을 다한 화가의 열정과 뛰어난 예술혼이 담긴 아름다운 값어치다. 이들의 작품은 한갓 부유층 여인들이 자기 과시를 위해 쉽게 쓰고 버리는 한낱 유행품이 아니다. 거기에는 그만큼 충분히 보상받아야 할 까닭과 이유가 있다. 명품을 좋아하지 않은 사람들도 좋은 그림을 좋아한다. 아니 세상 사람이면 누구나 훌륭한 그림을 보고 감탄하는 이유는 그것이 주는 감동 때문이다.
욕망을 완전히 없애기는 힘들다. 사람으로 가져야 할 기본적인 욕망은 갖되, 그것이 지나치지 않으면 된다. 부풀어 오르는 욕심을 열정으로 바꾸는 취미 하나씩은 가져야 할 것이다. 그림 그리는 일은 그중에서도 특히 빼어난 취미라 아니 할 수 없다. 에르메스 백의 화려함보다 물감이 주는 색감이 더 좋다. 채색하며 만들어가는 나만의 세상은 그 어떤 명품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 더 많은 사람이 그림을 그린다면, 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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