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멀고도 가까운 경제학

뒷담화의 경제학

by 전갈 2022. 3. 28.

2019년 3월 29일(금)

 

뒷담화, 소통의 수단

사진 출처 : https://kormedi.com/1221630/%EB%92%B7%EB%8B%B4%ED%99%94-%EB%82%98%EB%88%84%EB%A9%B4-%EA%B1%B4%EA%B0%95%EC%97%90-%EC%A2%8B%EB%8B%A4%EC%97%B0%EA%B5%AC/


뒷담화는 ‘담화(談話)와 우리말의 뒤(後)가 합쳐져 생긴 말로서 보통 남을 헐뜯거나, 듣기 좋게 꾸며 말한 뒤 뒤에서 하는 대화, 또는 그 말을 뜻한다.

뒷담화를 네이버에서 지식 검색하면 나온다. 살아가면서 뒷담화를 하지 않고 사는 사람은 없다. 어지간한 성인과 군자가 아니면 누구나 뒷담화의 즐거움을 멀리하기 어렵다. 여러 사람이 모여 누군가 한 사람을 대상으로 그의 잘못된 행동이나 마음에 들지 않는 언행을 비판하는 일은 은밀한 즐거움이다. 타인에게 치명적인 해가 되지 않는다면 적절한 뒷담화는 함께 즐기는 사람 사이를 가깝게 만든다. 심지어 동지라는 생각을 들게 할 정도로 매력적인 대화의 소재가 된다.

안타까운 사실은 해가 되지 않는 뒷담화는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다. 화제의 주인공이 실제로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질렀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뒷담화의 주인공이 되는 순간 그 사람의 인격이나 능력이 폄하되기 마련이다. 흔히 구설수에 오른다 말하지만, 그 정도가 심해지면 당사자에게 치명적인 피해가 발생하기도 한다. 뒷담화를 나누다 보면 서로 경쟁적으로 마음을 담아 이야기하기 일쑤고 그러다 보면 자연히 이야기는 실제보다 과장되기 일쑤다. 이때부터 딋담화는 담화의 수준을 넘어 뒤에서 한 그 사람을 공격하는 일이 된다. 치명적인 해가 발생하기도 하고 공직에서 낙마하는 일도 벌어진다. 지인들 사이에서 단순히 수다를 즐기는 수준의 뒷담화가 아니라 사람을 해하는 암수(暗數)로 변한다.

남의 이야기를 아예 하지 않는다면 이런 일은 없다. 사람들이 모여 사는 사회에서 함께 일하다 보면 반드시 대화를 나눠야 한다. 일이란 그 자리에 있는 사람과 엮이는 경우가 많다. 그 자리에 없는 사람과도 엮이는 경우도 많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자리에 없는 사람의 이야기를 하게 되고, 그 순간 뒷담화가 시작된다. 그저 칭찬만 하고 좋은 이야기만 하고 나쁜 이야기를 일절 언급하지 않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있는 사람들끼리는 격론을 벌이더라도 없는 사람에 대해서만큼은 최대한 예의를 차린다면 뒷담화는 아무 탈도 없을 것이다. 오히려 뒷담화를 권장하고 장려할 수도 있다. 사람들은 당사자가 있는 자리에서는 마지못해 칭찬하거나 아무 말 않다가도 막상 그 사람이 없을 때는 신랄하게 비판한다.

오늘날처럼 사람과 사람의 대화를 연결하는 미디어가 발달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876년 2월 14일에 벨이 전화에 대한 특허를 신청했고 다음 해인 1877년 벨 전화회사가 설립되었다. 고작 140여 년 전에 사람들인 직접 만나지 않고 전화를 통해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됐다. 그전까지 사람들은 직접 만나거나 아니면 편지를 써서 서로 소통했다. 편지로 정보를 교환하는 것인 도저히 만날 상황이 안 될 때 하는 방법이다. 실제 소통 수단은 사람들이 만나서 하는 대화였다. 인류는 진화의 오랜 세월 동안 직접 만나 대화하고 소통하는 것을 좋아했고, 다른 사람들이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자신이 참석할 수 없는 자리의 이야기를 다른 사람을 통해 듣는 것이다. 그렇다 보면 자연스레 뒷담화가 끼어들게 마련이다. 그 자리에 없는 사람에 대해 좋은 이야기도 하지만 나쁜 이야기도 많이 하게 된다.

사람들이 남 이야기를 할 때 좋은 이야기만 하고 나쁜 이야기를 아예 언급하지 않는다면 뒷담화는 아름다운 것이다. 불행하게도 사람들의 뇌는 남의 늘 좋게 이야기하도록 그렇게 프로그래밍 되지 못했다. 인류는 진화의 긴 과정에서 늘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심초사했다. 한정된 자원의 효율적 사용은 우리 모두의 숙제이면서 나와 가족의 생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일은 풀어야 할 숙제였다.

뒷담화, 먹는 것을 둘러싼 싸움
산업혁명 이전까지 인간은 배고픔을 완전히 해결하는 기술 진보를 달성한 적이 없다. 늘 소수의 배부른 지배자와 다수의 배고픈 사람들이 존재했다. 소수의 배부른 지배자들은 자신들의 곡식을 뺏기지 않고 더 부풀리기 위해 고민했고 배고픈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남들보다 배불리 먹을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했다. 방법은 경쟁자를 물리치는 것이다. 경쟁자가 적을수록 자신이 먹을 수 있는 양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사람은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을 경쟁에서 탈락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AHE다른 사람은 식량이나 지위를 둘러싼 자신의 경쟁자들이기 때문에 이들을 탈락시키기 위해 머리를 짜내었다. 그 결과 사람은 자리에 없는 사람에 대해 좋은 말을 하기 힘든 구조가 된 것이다.

우리의 뇌와 DNA가 수백만 년 동안 타인을 물리치도록 프로그램화되어 있어 뒷담화의 매력을 벗어나기 힘들다. 더구나 뒷담화를 통해 타인을 물리치는 즐거움을 맛본 우리 뇌는 도파민에 중독되었다. 자리에 없는 사람을 공격하고 씹는 즐거움이 주는 매력을 버리기 어렵게 되었다. 더구나 진화의 긴 시간 동안 제대로 된 엔터테인먼트를 구경할 수 없었던 인류의 유일한 낙은 호롱불 아래 모여앉아 타인을 씹는 쫄깃함이었을 것이다. 그때 우리 뇌에서 솟아 나는 도파민의 쾌락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이것이 우리가 뒷담화를 끊기 힘든 이유 일 것이다.

뒷담화가 왜 생겨났는지, 그리고 왜 없어지지 않는지 어렴풋이나마 그 이유를 알았다. 경쟁이 존재하는 한 뒷담화의 날카로운 비수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일은 피할 수 없다. 그건 한정된 자원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인류의 숙명이자 고뇌일 것이다. 물론 인간이 욕망을 버리고 평등을 위해 양보한다면 살아남고자 하는 경쟁적 본능이 타인에 대한 배려와 이해심으로 바뀔지는 모른다. 설혹 그것이 맞다 해도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욕심을 버릴 동인이 없다. 왜 자신의 욕망을 줄이고 타인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머리로는 이해할 수 있겠지만 실제 행동으로 옮기기 어렵다. 사회가 경쟁을 요구하고 그것이 존재하는 이상은 욕망을 버릴 수 없다. 마찬가지로 뒷담화가 주는 매력을 포기할 수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