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1월 7일(일)
검단산(黔丹山)은 경기도 하남시와 광주시에 걸쳐 있는 높이 657m의 산이다. 서울 근교에 위치해 있고 교통이 편리하다. 한자로 본 검단산의 이름이 특이하다. 검을 '검(黔)'을 쓰는 검단산은 백제 시대 검단선사(黔丹禪師)가 산에 은거했다 해서 검단산(黔丹山)으로 부르게 되었다는 설이 하나 있다. 단군왕금이 통지하던 고조선 때 '검(黔)'은 신성하다는 뜻을 지녔고, ‘단(丹)’은 제사를 지내는 신성한 ‘제단’이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검단산은 왕이 산에 올라 제사를 지내는 신성한 산이라는 뜻에서 유래되었다는 또 다른 설이 있다.
이름에 든 신성함을 보존하느라 보기보다 산세가 가파르다. 지난주 갔던 두 개의 봉우리를 안고 있는 철마산에는 못 미친다 해도 까탈스러운 게 예사가 아니다. 하긴 어느 산인들 만만하게 오를 곳이 없고 쉽게 품을 내주지 않는다.
산 초입은 작년 가을 내린 낙엽으로 양탄자를 만들었다. 발바닥으로 전해오는 푹신함 촉감이 발걸음을 가볍게 만든다. 서서히 오르는 길에는 멍석일 깔려 있어 걷기가 한결 수월하다. 그것도 잠시 고도가 높아지면서 숨이 차오른다. 웃고 떠들며 산을 오르는 사람들의 호흡이 거칠어지면서 말수가 현저히 줄었다.
힘에 부칠 때쯤에 유길준 묘를 만났다. 개회기의 학자로서 ‘서유견문(西遊見聞)’을 저술한 당대의 석학이었다. 유길준(兪吉濬, 1856~1914)은 19세기 말 최초로 일본과 미국에 국비로 유학을 하였으며 유럽과 동남아 등을 두루 돌아본 국제통이었다. 그가 유학 생활을 마치고 조선에 귀국하자마자 유길준은 김옥균, 박영효 등 갑신정변의 주모자들과의 친분으로 인해 바로 체포되었다.
그 후 7년간 연금 생활을 하면서 유학 생활과 유럽 탐방기, 자시의 경제와 정치적 식견을 담은 서유견문을 집필하였다. 그는 행동하는 개혁파와는 달리 사상가에 가까운 삶을 살았다. 그러나 김옥균 등과는 약간의 결이 달랐지만 그가 꿈꾸던 세상도 새로운 조선이었다. 그러나 백 년 전 그의 이상은 자신의 몸과 함께 이 자리에 묻혔다. 그리고 무수한 애한을 담고 도도히 흐르는 한강을 따라 역사도 흘렀다.
유길준의 꿈을 뒤에 두고 가파른 경사면을 오르니 왼쪽으로 한강이 내려다보인다. 이 고개만 오르면 정상이 보일까 하마나 가슴 조이는 산길이다. 수직으로 내려보는 바위 계단이 나타났다. 한 발 두 발 오직 앞만 보는 길이다. 좌우를 돌아볼 여유가 없다. 아차 하면 미끄러져 넘어질 판이라 조심스레 계단을 오른다. 본격적으로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른다. 그렇다고 올라가는 길밖에 다른 수가 없다. 제법 긴 계단을 오르니 능선이 나타난다. 좌우 나무 사이로 언뜻언뜻 한강과 서울 시내가 멀리 보인다. 가끔 지난 가을 올랐던 단풍나무가 무척 예뻤든 예봉산을 곁눈질하며 높이를 가늠해본다.
제법 푹신한 산길이 오래가지 않고 이내 돌계단이 나타났다. 그냥 이를 앙다물고 오른다. 가파른 길에 미끄러지는 사고를 방지하게 쳐놓은 줄을 잡는다. 힘껏 당기며 수직에 가까운 계단을 오른다.
“그래 산은 이런 면이 있어야 오를 맛이 나지. 밋밋해서야 어찌 산에 오른달 할 수 있겠니?”
“그렇죠. 이런 고통을 겪고 정상에 서야 뿌듯함을 느낄 수 있는 것 같아”
다운이와 이렇게 서로를 격려하면 힘차게 발을 뻗는다. ‘혼자 가면 빨리 갈 수 있고, 둘이 가면 멀리 갈 수 있다’ 말이 이럴 때 어울린다. 말없이 그냥 산을 오르기만 한다면 금방 정상에 도달할 것이다. 그러나 등반 시합을 하는 게 아니라면 조금은 느리게 산 주변을 돌아보는 여유가 좋다. 검단산의 단풍은 이미 말라비틀어져 조락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예봉산의 단풍을 그리 예쁜데 왜 검단산의 단풍을 예쁘지 않을까? 아마 우리가 오르는 등산로가 북쪽으로 나 있어 햇빛을 받지 못한 탓이라는 추측도 해본다. 이런저런 생각과 상상으로 산을 오르는 즐거움을 누린다.
두 번째 계단 길을 오르니 정상이 한결 가까워졌다. 1.03km 남짓한 길이다. 금방 800m를 알리는 이정표가 보인다. 이럴 수가? 완만한 산등선을 따라 몇 걸음 옮겼는데 800m 남았다니 거리야 불과 200m 차이지만, 1.03km와 800m는 정상에 확연히 가까워진 느낌을 준다. 착시 현상이지만 힘이 솟아 좋다. 여기서부터 정상까지는 생각보다 싱거운 산길이다. 철마산은 정상 끝까지 모든 힘을 지어짜야 를 수 있는 가파른 길이다. 거기에 비하니 철마산은 친절하다. 다운이 말처럼 참 ‘friedly’한 산이다.
검단산 정상은 산이며 광주산맥의 지맥으로서 남한산맥과 연결되는 산줄기이다. 한강과 인접해 있어 산세의 막힘이 없이 탁 트여 사방을 살필 수 있다. 특히 북쪽으로 고개를 드니 남한강, 북한강과 팔당댐이 한눈에 쏙 들어온다. 저 멀리 아스라이 두물머리가 보인다. 사진작가들이 좋아하는 곳이라 그림 소재도 풍부하다.
“그래 바로 이 맛이야!! 검단산에 오르면 저 멀리 북한강과 팔당댐, 두물머리와 남한강까지 한눈에 볼 수 있다. 파란 하늘과 흰 구름 아래 색깔 고운 그림을 보는 행복한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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