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깨끗한 물이라도 오래 놓아두면 때가 낀다. 흐르지 않은 물이 청정할 수 없다. 시간의 흔적인지 아니면 오래된 물속에서 불순물이 생기는지는 알 수 없다. 깊은 계곡에서 떠온 청정한 물조차 흐르고 바뀌고 순환하지 않으면 때가 끼는 법이다. 하물며 변하지 않는 세상 모든 것은 덕지덕지 때가 묻기 쉬운 법이다.
오래 사용한 기계도 자주 청소하고 관리하지 않으면 녹이 슬고 묻은 때가 낀다. 틈새마다 기름 찌기가 쌓이고 낀 것을 늘 깨끗하게 닦는 게 좋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기계도 금방 낡고 망가진다. 단단하기 비할 데 없는 기계도 정성 들여 보살피고 관찰하지 않으면 곧 때어 절어버린다.
사람들이 모여 사는 사회는 더 그렇다. 사람은 물만큼 청정하지 않고 기계처럼 단단하지 않다. 온통 허점투성이에다 모자란 점이 많은 것이 사람이다. 사람마다 한둘 흠결 없는 사람이 없고 다들 조금씩 오점을 가지고 있다. 그런 사람들이 모인 사회는 여차하면 오염되고 타락할 소지가 많다. 조직이 부패하기 쉽고 쉬 상하기 쉬운 까닭은 그것을 이루는 사람들의 본성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법이 아무리 추상같다 한들 완벽할 수 없다. 더구나 그것을 집행하는 사람들이 엄격하고 도덕적이지 않다면 법이 스스로 오염될 수 있다. 아니 법이 오염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집행하는 부도덕한 사람들 때문에 집행이 잘못될 수 있다. 사람들은 법은 공명하고 정대할 것을 기대하지만 늘 그런 기대라 빗나간다. 인간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언제든지 법을 왜곡해서 휘두를 수 있다. 누군가 법을 공정하고 집행하는지 감시하고 감독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도 법이 완전해진다는 보장은 전혀 없다. 감시하고 감독하는 것도 사람의 일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 말한다. 아주 오래전부터 공자님 같은 성현들이 권력의 억압 아래 고통받는 백성들을 위로하기 위해 자주 하신 말씀이다. 성현들께서는 과연 인간 세상이 항상 정의가 이기고 모든 일이 바름으로 돌아간다고 확신했을까? 어쩌면 인간 사회에서 꼭 정의가 승리한다는 믿음은 없었던 것이 아닐까? 공자 자신도 천하를 주유(周遊)하면서 도덕 정치를 설파했지만 돌아오는 건 싸늘한 냉소뿐. 그도 진심으로 도덕과 인의 정치를 실현하고자 했지만, 이 세상에서 실현되지 않는 이상임을 뼈저리게 간파했을 것이다. 자신이 사는 당대에서는 ‘사필귀정’을 보지 못한 것이다.
그렇다면 스스로 자신을 지킬 힘을 기르는 게 현명하다. 법과 가까이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나아가 법이 자신에게 유리하게 적용되도록 지위와 권력을 갖는 게 더 좋다. 법과 제도는 돈과 권력 앞에서는 맥없이 휘어진다. 아니 법과 제도는 강건하다 해도 그것을 실행하는 사람이 휘게 만든다. 안타깝지만 사필귀정은 요원하고 아득한 말이다. 내가 힘이 있어야만 하는 일이 정(正)으로 돌아온다. 그것도 내가 생각하는 정으로 온다.
'느림의 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철마산 등산기 (0) | 2022.03.29 |
---|---|
검단산 등산기 (0) | 2022.03.29 |
만나면 헤어지고, 헤어지면 만난다. (0) | 2022.03.29 |
야생마와 사찰 여행 (0) | 2022.03.28 |
진고개 너머 월정사 (0) | 2022.03.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