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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의 미학

스톡홀름에서 경성까지 7,549km

by 전갈 2022. 4. 5.

2011년 5월 

스웨덴에서 조선으로 탐험온 동물학자 스텐 베리만

조선에서 탐사 중인 스텐 베리만 사진 출처 : https://www.mk.co.kr/premium/special-report/view/2014/05/5979/

EBS에서 2011515일과 172부작으로 방영한 스웨덴의 동물학자 스텐 베리만의 이야기를 시청했다. 그는 스웨덴 사람으로 1935년 한국의 조류를 조사하기 위해 일제 강점기에 있던 우리 땅을 밟은 사람이다. EBS 기자들이 스웨덴의 어느 서점에서 우연히 스텐 베리만이 쓴 Wild lifes and Villages of Korea라는 책을 발견하고 취재를 시작했다.

 

이국의 이름 모를 거리 책방에서 75년 전 이 땅의 풍경 사진이 담진 이야기책을 발견했을 때 그들이 얼마나 감동했을까? 온몸에 전율이 일었을 것이다. 당시는 일제 식민지 아래라 주권마저 상실된 상태였다. 그러다 보니 그 시대 우리의 생활상이나 생태계를 전하는 자료가 거의 남아 있는 것이 없다. 이런 형편에 우리와 아무 상관 없는 스웨덴 왕실이 자연사박물관에 필요한 표본을 채취하기 위해 스텐 베리만을 파견한 것이다. 그것도 스웨덴에서 무려 7,549km나 떨어진 먼 이국으로 말이다.

 

19352, 스텐 베리만은 스웨덴 구스타프 국왕의 든든한 후원을 받아 육로로 경성을 향해 출발했다. 그는 시베리아 횡단 열차 등을 갈아타며 13일 만에 지금의 서울인 경성에 도착했다. 함경북도 주을 지역을 거점으로 스웨덴 자연사 박물관에 기증할 새와 동물들 수집했다. 스텐 베리만이 이 땅에 와서 조류를 조사하고 생태계 사진을 찍은 시간이 거의 1년에 가깝다.

 

그는 진지하고 열성적으로 함경북도 일대를 조사했고 백두산에도 오르기도 했다. 그는 조사한 자료에 일일이 사진을 붙이고 꼼꼼히 설명했다. 당신만 해도 모든 것을 손으로 해야 하는 작업이라 대단히 수고로운 일이다. 먼 타국에서 물설고 낯선 곳의 생활이 여간 불편하지 않았을 텐데도 그는 열정적으로 조사 활동을 이어갔다.

 

그의 탐사는 남한보다 지금의 북한 지방에 집중되었다. 압록강에서 두만강, 묘향산, 백두산 등 우리로서는 지금 갈 수 없는 지역을 모두 다녔다. 사진으로나마 그 당시의 풍경을 보는 것도 의미가 깊다. 그는 남쪽으로는 지리산을 거쳐 제주도까지 다 돌아보았다고 한다.

 

보통 부지런하지 않고서는 탐험을 하면서 일일이 기록하는 일이 쉽지 않다. 물론 서양에서는 일찍부터 기록과 글쓰기의 중요성을 가르친 탓에 우리보다 힘들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낯선 땅을 탐험하면서 꼼꼼히 기록하는 일은 여간 정성이 필요한 게 아닐 것이다. 베리만은 조선 땅을 탐험했을 뿐 아니라, 캄차카반도에서는 3년간 체류하였고, 뉴기니를 세 번씩이나 방문하였다. 지금도 캄차카지방이나 뉴기니 지방은 일상적으로 방문하기 힘든 지역이라 당시에는 훨씬 더 열악한 환경이었을 것이다.

두고 입에 쓴 그의 말 

스텐 베리만에게 아쉬운 점은 우리 조상들의 본 모습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단편적인 모습만 보았다는 사실이다. 그는 한국의 야생동물지(1938)에서 한국인과 풍속을 언급한 다음의 글은 본질과 현상을 구분하지 못한 서구인들의 한계를 드러낸 것이다. 그가 더 깊이 조선의 역사와 당시 시대적 상황을 알았다면 좋았으리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의 이야기를 읽는 내내 입맛이 쓰다.

"한국인은 정력과 힘, 투쟁 정신, 집단행동 능력이 결여되었다. 유구한 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갖고 있지만 힘든 일을 하려 하지 않고 앉아서 긴 담뱃대를 물고 담소하기를 좋아한다. 나라가 혼란한 상태가 되어 돌아볼 수 없는 상황이었으므로 일본이 아니더라도 러시아나 중국이 합병했을 것이다"고 하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남겼다.(자료 출처: 매경프리미엄https://www.mk.co.kr/premium/special-report/view/2014/05/5979/

 

무릇 글을 잘 쓰고 좋은 자료를 남기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노력이 필요함을 새삼 느꼈다. 스텐 베리만은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꼼꼼히 기록하여 책으로 남겼다. 그 가운데서 1950~60년대 스웨덴에서 매우 큰 인기를 끈 책이 아버지가 식인종이면 어때라는 책이 있다. 뉴기니를 방문했을 때, 식인종 마을의 촌장이 그를 양자로 삼았다고 한다. 그래서 책 제목을 그렇게 했는데, 당시 유럽에서는 매우 이국적으로 보였을 것이다. .

 

그렇다. 좋은 책은 남다른 관찰과 기록, 풍부한 이론적 배경을 담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책의 깊이가 있고 읽을수록 좋은 맛이 우려 난다. 마치 깊고 맛난 음식은 곱씹을수록 향과 맛이 더하는 것과 같을 것이다. 깊이 있는 책, 깊이 있는 자료, 깊이 있는 내용이 되려면 깊이 있는 지식과 지혜로움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생활에서 일어나는 작은 이야기들을 기록하는 습관이 중요하다. 흔히 만나는 일상의 작은 것이라도 놓치지 않고 기록해두면 언젠가는 좋은 글감이 된다. 좋은 글감이 많은 글은 찰지고 윤기가 흐른다. 자연에서 구한 천연 조미료가 맛과 향을 깊게 하듯, 생활에서 찾아내는 에피소드나 소재들이 글의 맛과 향을 깊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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