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2월 12일(금)
2008년 12월 미국 존스 홉킨스병원에 간호과 학생들의 인턴십이 가능한지 협의하러 미국으로 출장을 갔다. 뉴욕에서 일을 보고 12월 12일 볼티모어로 넘어갔다. 뉴욕에는 전날 종일 비가 내렸고, 도시는 잔뜩 겨울비에 젖었다.
세계 경제의 중심지이며 문화와 예술을 선도하는 도시답게 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사람들의 활력이 넘친다. 높다란 회색 빌딩의 젖은 머리에서 후드득 빗물이 떨어졌다. 다음날 아침 뉴욕의 하늘이 찌뿌둥한 것을 보니 금방이라도 비를 뿌릴 것 같다. 비 그친 도시의 민낯은 창백하고 쌀쌀맞다. 두꺼운 외투자락을 단단히 여미고 볼티모어로 가는 비행기를 타러 뉴왁 공항으로 향한다.
볼티모어에 도착하니 다행히 비는 그쳤으나 차가운 바닷바람이 살을 엔다. 보스톤, 뉴욕, 볼티모어는 대서양과 태평양을 건너온 이민자들이 첫 받을 디딘 항구도시로 유명하다. 볼티모어는 뉴욕이나 보스톤에 비해 발전하지 못하고 과거의 영광을 간직한 낡은 도시로 전락했다.
존스 홉킨스병원에 근무하는 수간호사인 김 선생님께서 공항까지 픽업을 나오셨다. 존스 홉킨스로 가는 길에 볼티모어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한때 미국에서도 알아주던 위험스러운 도시에서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고 한다. 덕분에 곳곳에 남아 있는 유적과 도시의 어제와 오늘을 많이 알게 되었다.
김 선생님의 친절한 안내로 존스 홉킨스병원 이곳저곳을 열심히 보았다. 병원 곳곳에서 만나는 의사들과 간호사들을 소개시켜준다. 다들 밝고 경쾌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넨다. 이곳 병원 내에서 김 선생님의 위치가 탄탄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간호과 학생들의 인턴십 프로그램이 실행 가능한지 대화를 나눴다. 중간 중간 들리는 곳을 자세히 설명해주는 배려도 잊지 않는다. 김선생님의 안내가 없었다면 세계 최고의 병원 내부를 어떻게 구경할 수 있었겠는가. 새삼 소중한 인연을 감사히 여긴다. 홉킨스 병원은 여러 블록으로 병동이 나눠져 있다. 각 병동마다 나름의 전통과 남다른 역사가 남아 있다. 병원 복도에 걸려 있는 의사들의 사진이 연이어 반갑게 맞아준다. 그들의 면면이 바로 현대 의학의 역사라고 한다. 복도를 지나는 것만으로도 현대 의학이 어떻게 발전했는지 알 수 있다. 세계 최초로 수술에 성공한 사례가 한두 개가 아니다.
쿠싱 증후군(Cushing's syndrome) 치료, 샴쌍둥이분리수술, 자신의 몸을 실험도구로 삼았다가 죽어간 의사 이야기도 들었다. 얼마 전 'Something the lord made'라는 영화를 재밌게 봤다. 흑인차별이 극심했던 1930년대 대학 문턱에도 가보지 못한 흑인이 타고난 손재주와 명석함으로 의사의 꿈을 이룬 닥터 비비엔 토마스(Dr. Vivien Thomas)의 실제 이야기다. 그들의 모습을 병원 복도에서 만나니 감동적이다.

1930년 미국 내쉬빌(Nashville)의 재능 있는 흑인 목수인 비비엔 토마스(Vivien Thomas, 모스 데프 分)는 의사가 되려는 꿈을 위해 의대 진학에 필요한 등록금을 몇 년에 걸쳐서 열심히 모았다. 그러다 목수직에서 일자리를 잃자 백인의사 알프레드 블레이락 박사(Dr. Alfred Blalock, 알란 릭맨 分)의 사무실에서 실험용 개 우리 청소 일과 잡무를 맡았다. 비비엔이 의학 서적을 읽는 것을 눈여겨 본 블레이락 박사는 비비엔에게 비범한 손재주가 있음을 알았다. 알프레드 블레이락 박사는 그에게 하얀 가운을 주며 동물 연구 조수 역할을 맡긴다.
1943년에 비비엔은 존스 홉킨스병원으로 자리를 옮긴 블레이락 박사를 따라 볼티모어로 온다. 그곳에서 비비엔은 블레이락의 의학 연구와 수술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사람이 된다. 그러나 흑인은 뒷문으로 출입하고 화장실도 따로 써야했던 엄혹한 시절이라 비비엔은 뛰어난 재능과 헌신에도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한다. 결국 자신이 3급 노동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비비엔은 연구실을 뛰쳐나간다. 그 후로도 흑인을 차별하는 시대적 상황과 특히 세계 최고인 존스존스 홉킨스병원에서 그를 바라보는 시선에 절망한 그는 두 차례나 더 연구실을 뛰쳐나가 방황한다.
닥터 블레이락은 인종차별이 심했던 상황에서도 비비엔을 수술에 동반시키는 배려를 아까지 않았다. 또 비비엔이 연구실을 나가 방황할 때고 그를 설득하고 그의 재능을 아껴주었다. 백인 의사와 흑인 조교는 끊임없이 언쟁하고 갈등하면서 평생 떨어질 수 없는 동반자가 된다.
'심장은 손대지 않는다.'
두 사람은 당시 극심한 반대에도 치사율 100퍼센트였던 청색증 아기(blue baby) 환자를 수술을 통해 살려냈다. 마침내 신의 영역으로만 여겨졌던 심장 수술의 길을 연 것이다. 하지만 모든 영광은 백인 의사인 블레이락 박사에게 돌아가고 비비엔은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는 자신의 초라한 처지에 크게 상처를 받았지만 좌절하지 않고 연구를 계속한다. 이러한 그의 노력은 의학 발전에 큰 공을 남긴다. 그 후 대학졸업장도 없는 비비엔은 존스 홉킨스 의과대학으로부터 명예 의학박사학위를 받는다. 지금은 비비엔의 초상화는 블라록 박사의 초상화와 나란히 의과대학 본관 로비에 걸려 있다.
영화 제목 ‘Something the Lord Made’(신이 만든 거야)는 이들의 이야기를 실은 잡지 기사의 제목 “Like Something the Lord Made”에서 따왔다. 이 기사는 1989년 잡지 여기자인 캐티(Katie McCabe)가 '워싱토니안(Washingtonian)'에 쓴 것이다. 알프레드 블레이락이 비비엔 토마스의 외과적 손재주를 일컬어 <마치 신이 만든 것과 같다>라고 감탄했다는 것에 착안한 제목이다.
존스 홉킨스 병원이 최초로 설립한 건물 1층에 예수 상이 있다.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고 하는 유명한 성경 구절이 적혀 있다. 김 선생님은 오래 전에 홉킨스 병원의 의사들이 예수 상 주위를 빙글빙글 돌면서 토론하고 의학적 의견을 나눈 것에서 '회진'이란 말이 나왔다고 설명한다.
그렇게 존스 존스 홉킨스병원과 의과대학 구경을 마쳤다. 1년 뒤 우리 아이가 이곳의 BME(Bio Medical Engineering)로 공부하러 올지 그때는 전혀 몰랐다. 아니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인연이란 참 묘하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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