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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의 미학

존스 홉킨스의 다음 이야기

by 전갈 2022. 4. 3.

2009년 10월의 이야기

아들 아이의 전화를 받았다. AP 성적 원부가 제출되지 않아 존스 홉킨스에서 선수학점을 인정받으려면 AP Number를 알려야 한다. 기초 과목을 AP로 인정받고 나머지 사회과목 가운데서 경제학이나 경영학을 들을 계획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이미 미시경제학과 거시경제학, 그리고 경제학 원론을 공부했으니 경제학은 그만하면 된다고 말했다. 대신 경영학 과목을 집중적으로 들을 것을 권유했다. 무엇을 하든 앞으로는business mind를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아이와 함께 학교생활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첫 학기인데 학점을 되도록 많이 취득할 요량으로 과목을 많이 신청했다고 한다. 화학, 물리학, 수학은 이론 공부와 실험을 동시에 수행 한다. 실험이 끝나고 실험일지를 작성해야 하는데 한국에서는 해본 적이 없다. 그래서 처음에는 애를 먹은 모양이다. 이젠 익숙해져서 한결 편해졌다고 한다.

홉킨스에서는 의학대학원(medical school) 진학 준비(pre-medical school)를 위한 필수과목으로 영작문을 들어야 한다. 그것도 영문학과의 essay와 시․소설 창작을 들어야 한다고 하니 미국 아이들과 비교하면 쉽지 않은 일이다. 영문과에 가서 essay writing을 듣고 있는데, 읽어야 할 책과 과제가 많아 꽤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미국 아이들이야 essay를 금방 작성하고 내용도 꽤나 알찬가 보다. 가기 전에 writing을 공부했어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아이는 홉킨스의 BME(Bio Medical Engineering)에서 공부하는 것을 좋아한다. 학교에서도 BME를 육성하고 있고, 투자도 제일 많이 하고 있다. 최신 건물 5층 전체를 BME에서 사용할 정도로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다. 1층과 과 2층은 교수 연구실이고 3~5층까지는 실험실로 이뤄졌다. 대부분 과목이 이론과 실험을 동시에 공부해야 하기에 힘들지만 재미있다고 말한다. BME만의 독창적인 프로그램으로 실험 과목이 있는데 오랜 시간 준비하고 충실하게 과제를 수행해야 한다. 심지어 과제가 해결되지 않을 때는 주말 오후 늦게까지도 실험을 한다. BME에 대한 학교의 대우가 각별하다 보니, 다른 학과 아이들이 은근히 시기하는 모양이다.

얼마 전 홍콩에서 온 뇌 과학을 공부하러 온 아이가 BME 학생들은 건방져 보인다는 것이다. 어쩌면 자부심이 넘치다 보니 다른 과 학생들에게는 그리 보일 수 있겠다. 아이가 그렇지 않다고 해명했지만 아쉬움은 남을 것이다. BME에는 4명이 한 조가 되어 졸업할 때까지 공동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프로그램이 있다. 이과나 의과대학, 공과대학의 실험과 연구는 단독으로 진행하기는 힘들다. 그래서 대학이 학생들이 공동으로 실험하고 연구하도록 한 것이다. 아예 신입생부터 그런 훈련을 시키고 있다고 한다. 아이와 팀이 된 학생은 미국 아이 2명과 인도에서 온 친구라고 한다.

미국 아이들은 창의적이고 인도 아이는 머리가 매우 비상하다고 한다. 그런 아이들과 어울려 공부한다는 것이 무척 신나는 일이라고 한다. 얼마전 처음으로 시험을 본 모양이다. 시험 기간 내 도서관에서 늦게까지 공부하느라 룸메이트인 이태리 학생과 볼 시간도 없었다고 한다. 시험이 끝나고 나니 외국 아이들이 ‘동면에서 깨어났느냐“면서 우스갯소리를 했다고 한다.

외국 아이들은 한국 아이들만큼 집중적으로 공부하는 습관이 덜 하다고 한다. 아마 대학 오기 전에 충분히 놀고 운동을 많이 한 습관이 남아 있을 것이다. 공부하는 양이 많지만 1학년 때는 주로 Fail or Pass 과목이라 어려운 과목을 많이 신청했다고 한다. 성적으로 평가되지 않기 때문에 마음에 부담이 상대적으로 덜 할 것이다. 그래도 화학 시험은 98점으로 꽤 잘 보았다. BME 평균이 70점대라고하니, 나름대로 열심히 한 보람이 있다. 수학은 수업 내용은 어려웠지만, 시험은 비교적 쉽게 나왔다고 한다. 대신에 물리학이 수업에 비하면 시험이 매우 어렵게 나왔다고 한다.

아이는 그곳 생활에 만족한다. 기숙사 룸메이트인 이태리 아이도 마음이 따뜻하다고 한다. 먹을 것을 주거나, 자신이 직접 요리해서 아이에게 주기도 한다. 또 비교적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방도 정결하게 사용한다고 해서 흡족한 모양이다. 여러 나라에서 유학 온 아이들과 교류하면서 자신이 하고픈 공부를 하는 아이의 모습이 대견하다. 그렇게 아이의 홉킨스 BME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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