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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의 미학

책에도 야생(野生)의 삶이 있다.

by 전갈 2022. 4. 20.

2020년 4월 20일(수)

책과 야생(野生)의 삶

북극의 거친 얼음 계곡은 사람이 살기 힘든 야생이다. 아프리카 오지의 사바나도 거친 야생이다. 파푸아뉴기니의 깊은 정글에서도 사람이 살기가 쉽지 않다. 문명으로부터 몇 발 떨어진 곳들이다. 원시 그대로의 삶이 유지된다. 물밑에서 숲속에서 얼음 밭에서 오늘도 생존을 둘러싼 치열한 삶이 전개된다.

사하라 사막을 가야만 야생을 보는 건 아니다. 히말라야 높은 산자락 마을에 가야 거친 자연을 만나는 건 아니다. 책속에서도 얼마든지 만날 수 있다. 새 책의 첫 장을 넘기는 순간 그곳에서 날 것 그대로의 삶을 만난다. 책을 읽는다는 것도 야생에서 사는 것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이해하고 노력하고 뜻을 이어가야 하는 과제가 주어진다.

머릿속은 온통 글자의 정글에서 자란 거친 동물과 식물 천지다.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뜻을 놓치고 글자는 달아난다. 다시 그것을 잡으려면 또 몇 시간이고 수고를 아끼지 않아야 한다.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고 사라지는 문맥의 외모는 힘센 야생 동물과 닮았다. 따지고 보면 책을 읽는 행동은 끊임없이 기억에서 멀어지려는 글자를 붙잡고 뜻을 동여매야 하는 것이다.

도끼와 나침판

오늘도 많은 사람이 책속의 야생에서 온몸으로 부딪친다. 졸음이 짓누를 때 눈을 부릅뜬다. 쏟아지는 잠을 멀리하고 한발 더 글자 속으로 들어간다. 그 속에서 햇빛에 은빛 비늘을 번쩍이는 큰 물고기를 만난다. 바람 소리 일으키며 달리는 사자도 본다. 공중 높이 나는 독수의 우아한 유형을 부러운 눈초리로 쳐다본다. 순백의 강도 보고 하얀 설산도 만난다. 그 속에서 살아가는 순박한 사람들의 큰 눈망울도 본다. 한마디로 책속은 별천지다. 어찌 가까이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책은 도끼이자 나침판이다. 카프가 말한 것처럼, 책은 우리 내면의 꽁꽁 언 이성을 깨는 도끼다. 또 책은 야성의 들판에서 길을 안내하는 나침판이다. 도끼와 나침판이 있으면 엄혹한 세상을 살아가기에 큰 힘이 될 것이다. 더 지혜롭게 더 슬기롭게 살아갈 수 있다면 무지로 인한 어리석은 행동을 줄일 수 있다.

굳이 먼 길 떠나지 않아도 책 속에서 만나는 자연도 아름답기 그지없다. 늘 감탄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자맥질한다. 오늘도 사람들은 망설임 없이 책으로 뛰어든다. 그 속에서 만나는 야생의 날 것들과 어울리며 살아 있음을 느낀다. 그들의 말에 귀 기울이고 속삭임을 들을 때 행복함을 느낀다. 삶이 그렇게 아름다운 까닭은 책 속에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무릉도원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우리 손 안에 있음을 진즉에 알았으면 좋았을 것이다. 하나 지금이라도 알아차리면 남은 시간은 더 행복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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