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의 위기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는 많은 자금과 연구 인력을 동원하여 신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 덕택으로 이들은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회사로 성장하였다. 이들이 끊임없이 기술혁신을 위해 노력하고 거액의 R&D 비용을 지출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신기술을 개발해서 더 좋은 제품을 만들고, 그것을 시장에 내다 팔아 더 많은 이익을 창출하기 위해서이다. 이들 회사는 돈을 벌 목적으로 만들어진 주식회사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교육기관도 기업처럼 운영하면 어떻게 될까? 세계적 수준의 교육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까? 사기업이 이윤을 목적으로 교육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교육 서비스의 질이 지금보다 나아질까? 새로 태어나는 아이들의 숫자가 격감하면서 모든 교육기관은 학생 유치 문제에 봉착했다. 의무교육 대상이 아닌 대학, 특히 지방 소재 대학은 자칫하면 줄도산이 우려되는 현실이다. 이러한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 대학에 기업 경영 원리를 도입하게 한다면 과연 해결책이 될 것인가 하고 질문해 본다.
국내에서도 대기업이 대학의 법인을 인수하여 운영하는 사례가 있다. 그 결과 대학 교육의 질을 획기적으로 상승시켰는지 여부를 말하기 쉽지 않다. 기대만큼의 효과를 얻지 못했다면 이유가 있을 것이다. 교육부의 규제가 많아서 제대로 된 운영을 할 수 없었다는 볼멘소리가 나올 수 있다. 또 교육 문제는 모든 국민의 관심사라 아무리 대기업이 운영하는 학교법인이라 해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제약도 있을 것이다.
한계 상황에 직면한 대학의 운영을 기업에 맡기는 것이 바람직할까?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 교육 혹은 교육서비스가 자동차나 반도체와 같은 상품과 성격이 같은지, 아니면 다른 특성을 갖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교육 혹은 교육 서비스가 일반 상품과 같은 성격을 갖는다면 굳이 중뿔나게 교육을 우대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교육의 특성이 일반 상품과 달리 공익성을 가진다면 일반 기업이 공급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교육은 공공성을 가지는가?
우리는 정부나 공기업이 제공하는 상품이나 편익, 서비스를 공공재 혹은 준공공재라 부른다. 여기에는 국방이나 경찰치안과 같은 공공 서비스가 대표적이다. 이와는 달리 자신의 구매력을 바탕으로 구입하는 상품 가운데서 타인과 경합하거나 혼자 소비를 독점할 수 있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사적재 혹은 민간재라고 부른다. 빵이나 우유 등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소비하는 많은 상품이 여기에 해당된다.
정부나 혹은 공공기관이 제공하는 공공재나 혹은 준공공재는 민간재나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다. 공공재나 준공공재는 사회 구성원 모두의 이익이나 편익을 증진시키기 때문에, 이윤을 목적으로 생산되는 일반 재화와는 다른 공급원리가 적용되어야 한다. 자신의 소득 수준에 맞게끔 소비를 결정해야 하는 사적재에 비해 공공재는 가능하면 소비로부터 배제되는 사람이 없도록 해야 한다. 따라서 공공재는 수익과는 무관한, 정부나 비영리법인에서 생산하여 공급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교육이나 교육 서비스가 과연 공공재적 성격을 갖느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가 된다. 만일 교육이 공공재라고 한다면 그것을 공급하는 교육기관은 지금처럼 비영리법인의 형태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렇지 않고 교육도 개인의 구매력 수준에 따라 소비가 결정되는 사적재화로 판단되면 굳이 비영리법인만 교육 서비스를 공급하라는 법은 없다. 즉, 일반 주식회사나 개인 회사도 얼마든지 교육기관을 설립하여 운영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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