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4월 24일(일)
구월(九月)의 동네에 있는 반야월(半夜月)이라는 이름의 가게에 들렀다. 그곳에서 정읍을 고향으로 둔 사람을 만났다. 자연스레 우리는 정읍의 옛 노래인 정읍사(井邑詞)를 떠올렸다. 1,500년도 더 된 단 하나의 백제의 노래를 읊었다.
"달하 노피곰 도다샤
어긔야 머리곰 비취오시라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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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읍사에는 높은 달이 뜬다. 먼 길 떠난 남편의 안녕을 기리는 여인의 애절한 마음이 담겼다. 반복되는 후렴구는 지금 불러도 어색하지 않다. 입에 착 감기는 맛이 백제 여인의 세련된 음감을 일러준다.
반야(半夜)는 원래 깊은 밤을 말하고, 반야월은 깊은 밤에 달이 뜬 마을이다. 반야월이라는 독특한 이름은 백제와의 인연에서 유래 되었다. 이야기는 고려의 왕건과 후백제 견훤의 팔공산 전투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려 왕건은 지금의 팔공산 일대에서 후백제의 견훤과 치열한 전투를 벌인다. 공산전투(公山戰鬪)에서 크게 패배한 왕건은 황급히 도망을 쳤다. 한밤중(半夜) 달이 휘영청 밝은 어느 마을에 당도해서야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부터 마을 이름을 ‘반야월’이라 불렀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달의 동네에서 한밤중에 뜬 달의 가게에서 백제의 노래를 읊조렸다. 하얀 술잔 속에는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술잔에 비친 그이의 눈동자에는 정읍의 둥근 달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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